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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행복을 학문적으로 다룬 <행복의 기원>이란 책에 나오는 주장이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 것처럼 행복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지"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저자 서은교 교수는 행복의 나라에는 안타깝게도 냉장고가 없다고 단언한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리는 행복

 서은국 저 <행복의 기원>
 서은국 저 <행복의 기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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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만 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삶이 펼쳐질 것 같다. 그래서 성공을 좇으며 현실을 인내하며 산다. 그런데 정말 그러했던가? 아마도 대부분 원하는 성공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대답하기 힘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성공이나 성취들을 돌아보자. 합격, 승진, 새차 구입 등. 얼마나 오래 행복했던가. 

대학만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합격의 기쁨은 봄꽃보다 오래 가지 않는다. 또 입사는 어떤가.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고생문에 들어섰음을 절감한다. 승진은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으로 끝난다. 새 차의 기쁨은 곧 접촉 사고의 괴로움으로 대체되곤 한다.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는 책의 인용구처럼 돌아보면 성취의 기쁨은 순간 짜릿했지만 이내 무덤덤해지면서 새로운 목표를 향해 신발끈을 다시 묶고 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마치 쳇바퀴 같다.

'적응'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이든 적응해내는 능력이 있기에 초기의 놀라움도 이내 곧 무덤덤해지는 것이란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는 노래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니 "그 후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행복해지려면 인생의 거창한 것을 좇지 말라고 한다.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대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라고 말한다. "대학 가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며 애들을 다그치는 것은 거짓말인 셈이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

행복한 삶에 필요한 자원들이 많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돈, 건강, 외모, 명예 등인데 행복을 위해 이것들을 소유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 또한 행복에 대해 일반인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이란다.

건강과 외모를 놓고 본다면 운동 선수나 연예인들은 늘 행복해야하지만, 그렇지 않을 뿐더러 자살도 한다. 서은국 교수는 돈도 어느 정도 이상 되면 행복의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을 제시한다. 미국 일리노이 주의 복권 당첨자 21명의 1년 뒤 주변 이웃과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별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결과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행복을 위해 추구하는 삶의 조건들은 삶을 덜 불행하게 할 뿐이다. 그런데 덜 불행해진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목이 마를 때 물이 없으면 매우 고통스럽지만, 갈증이 해소되면 물을 더 마신다고 행복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돈이 없으면 힘들지만 돈이 더 많다고 그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 행복 심리학의 주장이다. 결국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들은 삶을 불행하지 않게 만드는 것뿐이지 행복해지는 것과는 별개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린 불행하지 않기 위해 불행할 정도로 애쓰며 사는 셈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얻기 위해선 행복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행복을 삶의 목적이라고 여기는 건 비과학적 사고란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을 뿐이다. 행복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산물임이 이 책이 설명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은 피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 대표적 메커니즘이 쾌와 불쾌 또는 행복감과 공포감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대상이나 상황엔 불쾌감 더 나아가서는 공포를 느끼며 피하게 되어 있다. 반대가 행복감이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할 때 행복감을 느껴서 본능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유인한다. 대표적으로 먹어야 생존하고 섹스해야 번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행위에서 쾌감을 느낀다.

우리가 성취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성취의 고단한 길을 나서게 하는 보상 시스템이다. 또 한 번만 먹어도 영원한 쾌감을 느끼면 안 되기에 '적응'이란 시스템을 만들어 계속 먹도록 장려한다. 행복은 이런 쾌락의 빈도에 좌우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에게 더욱 뚜렷한 진화적 특징이 있다. 인간이 유독 행복을 크게 느끼는 활동이 있는데,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반대로 외로울 때는 굶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책 속에서 사례로 나오는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

왜 이토록 사람이 중요한 걸까? 무리를 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야생에서 모든 동물은 무리를 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인간은 무리를 넘어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다.

책에 소개된 던바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사회적 뇌라고 한다.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가 정글에서 10명 정도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던 인간이 초원으로 나와 150명 정도로 커진 때라는 것.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하며 이들의 마음 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해지면서 뇌가 급격히 켜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면 행복에 대한 매우 소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이라는 책의 주장에 "아 그래서 친구들과 술자리가 그렇게 즐겁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아마 허구한 날 술 마신다고 비난받는 남편이라면 이런 내용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푸드 포르노그래피'라고 할 만큼 음식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인기를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린 '먹방'이라는 말을 세계적인 단어로 만들어 낸 만큼 행복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이해한 셈이다. 한국 드라마에는 사람들 사이에 '정'이 있어 즐겨본다는 외국인들이 많다. 한국 사회가 '정'을 중시한 까닭도 그러하리라.

먹는 것을 즐기고, 온정주의에 이런 저런 연으로 얽매여 있는 연고주의의 한국사회이니 한국인들의 삶은 매우 행복해야 한다. 행복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따르면 말이다.

그런데 '헬조선'에서 행복이라니, 의구심이 솟는다. 한국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모든 조사결과가 말해주는 바 아닌가. 이 책 믿어도 되는 거야. 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중요한 행복의 원천이지만 또한 고통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썩은 음식은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행복을 주지만 그만큼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회의 문화에 따른다. 문화는 크게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로 나뉜다. 핵심은 개인과 집단의 뜻이 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의 차이다.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사회다. 행복도가 높게 나오는 덴마크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사회가 여기에 속한다.

반면 집단주의는 집단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하는 사회다. 경제적 수준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행복도가 낮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같은 행복부진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집단의 평가를 늘 의식해야 하는 피곤한 삶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한국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때 흔히 덧붙이는 말이다. 연예인들이 결혼 발표를 할 때도 비슷한 말을 한다. 예쁘게 잘 살 테니 지켜봐 달라고.

저자가 한국인들이 얼마나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한 내용이다. 이것이 집단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내가 좋은 것보다는 타인의, 집단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 관심을 달라는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결혼 생활마저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보기에 좋게 살아야 한다는 긴장이 있는 셈이다. 누군가 지켜볼 때, 그리고 그 사실을 늘 의식할 때 피곤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프로듀스 101>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101명의 걸그룹 지망자들이 최종 11명에 들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참가자들은 과제를 수행하고 101등까지 줄 세운 평가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한국인들의 삶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산다는 것 자체가 오디션이기 때문이다.

대입 수능이 아니라도 전국민 오디션이 벌어지는 명절을 생각하면 그렇다. "대학은, 취업은, 결혼은, 애는"이라는 과제에 답해야 한다. 그래서 명절은 일가친지 간에 정을 느끼기 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피곤한 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다. 행복의 원천인 인간관계가 평가와 증명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듀스 101>을 보면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 부른다. 시청자는 참가자들로부터 허리를 90도 숙인 인사를 받는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심사의 권한을 수행한다.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평가를 받느라 힘들지만 동시에 평가의 권한도 갖는다.

이것이 문화다. 집단주의 문화는 구성원들에게 그에 맞는 정신구조를 새겨 놓는다. 대입으로 가장 고생했을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정시'니 '수시'니 '지균충'이니 하며 입학형태에 따라 세분화된 서열로 구분하고 평가하는 것이 그렇다.

주위를 평가의 시선을 바라볼 때 행복과는 멀어진다. 주위가 음식과 술을 나누는 이웃이 될 때 행복이 온다. 사회를 더불어 사는, 연대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은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행복의 기원>이 전하는 바다. <행복의 기원>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애썼던 것이 진정 행복으로 가는 길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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