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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은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상처가 덧나고 있다. 건국절 법제화 추진 움직임은 상처를 후비며 암 덩어리를 만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은 "임시정부는 영토도 없고 주권도 없고 국제적인 인정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건국으로 볼 수 없다"며 1948년 8월 15일을 광복·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은 건국절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그와 함께 화폐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화폐, 건국 그리고 역사-건국절 논란에 일침 가하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화폐, 건국 그리고 역사'다. 20세기 이후 현대 국가들은 주로 혁명이나 독립전쟁을 통해 탄생했고, 그 훌륭한 과거를 안고, 잊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웬만한 국가들은 사회 안전을 위해, 국민통합을 위해 상징적인 인물이나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사용한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곳이 바로 화폐다. 그래서 저자는 화폐 인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나라든 간에 자유와 독립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영웅들은 오직 그 나라 후세대에게만 아니라 전 인류에 많은 정신 유산을 남긴 것이다."


각국 화폐들 중에 건국절 논란에 일침을 놓을 만한 사례들은 여럿 있다. 그 중 멕시코 화폐는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최고액권인 1000페소는 멕시코가 식민지에서 독립국가로 가는 첫 단계와 관련된 상징들을 모아놓은 화폐다. 1000페소 앞면에 있는 미겔 이달고 신부는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고, 신부 왼쪽에 있는 돌로레스 성당은 멕시코 독립운동이 시작한 장소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
ⓒ 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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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독립운동은 프랑스혁명이 동기를 제공했다. 나폴레옹은 1808년에 스페인을 침략해 페르난도 7세를 퇴위시켰다. 그러자 크리올(프랑스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태어난 스페인 인들)들이 페르난도 7세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해 정치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스페인 군은 크리올들의 세력 확대를 막으려 했고, 이에 반발한 크리올들은 각지에서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했다.

이 중에는 멕시코 독립을 선언하려는 이들이 있었는데, 계획이 누설되어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달고 신부는 1810년 9월 16일, 돌로레스 성당에서 교구민들에게 스페인 식민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동참하라고 독려하면서 식민 통치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날 이달고의 연설이 바로 멕시코 독립운동의 발단이 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이다. 그리고 후에 이날은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 되었다.

이달고 신부가 돌로레스 성당에서 독립을 부르짖을 때, 그들에겐 '영토도 없고 주권도 없고 국제적인 인정도 없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멕시코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 화폐는 건국절 논란에 일침을 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 주권과 영토가 없었지만, 모세가 출애굽을 요구한 시점(출애굽기12:1~2)을 '첫 달', '새 날'로 선포한다. 출애굽 이후 436년 만에 사울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날이 아니라, 여전히 이집트에 노예로 있던 날을 기념해야 할 해방절로 지키고 있는 게 근대 이전에 민족의식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이다. 하물며 근대 이후 민족의식을 갖고 독립한 나라들이 기념하는 날이 어떤 날이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신생 국가들은 오랜 세월을 쿠데타와 혁명, 해방전쟁과 독립전쟁 등 혼돈의 시대를 거쳐야 했다. 그 나라들은 화폐 인물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드러내며 사회통합을 꾀하고 있다.

화폐 속 영웅들은 민족의 시조에서부터 번성기의 황제, 민족 정체성을 노래하는 시인을 거쳐 현재의 공화국 건설을 이끈 지도자 등 다양하다. 그 중에는 여자도 있고, 소수민족도 있다. 키르기스스탄 여골, 러시아제국에 맞선 여성 지도자, 쿠르만잔 다트카(1811~1907)은 그런 영웅들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장군이나 지도자를 의미하는 '다트카'라는 명칭을 가진 쿠르만잔은 알타이 계곡의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을 약 30년간 통치했다. 쿠르만잔은 코간트 카간국의 재상인 남편이 사망하고 난 후, 총을 잘 쏘는 청년들을 모집하여 자국 국민을 러시아로부터 지켜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들인 캄츠베킨이 러시아 군인에게 체포된다. 이때 캄츠베킨이 사형된다는 정보를 알아낸 그의 부대는 쿠르만잔에게 아들을 감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허가를 청했다. 하지만 쿠르만잔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여러분을 믿어요. 여러분이 하룻밤에 그 감옥에서 내 아들을 구하고 올 수 있는 것도 알아요. 다만, 내 아들이 사형되면 한 어머니가 울 것이고, 여러분이 이러한 작전을 하면 많은 어머니들이 울 것입니다. 나는 다른 어머니들을 울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안 됩니다!"


쿠르만잔이 현대 이슬람식 페미니즘이 모범으로 삼는 인물이 된 이유를 알려주는 일화다.

대한민국 화폐에는 왜 독립영웅이 없나?

터키 출신으로 2004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저자, 알파고 시나씨(Alpago Sinasi)는 세계 각국의 자유, 독립, 건국, 민주주의 투쟁 영웅들 위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소개된 화폐 중에 미국 달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반면, 아프리카 화폐는 없다는 점과 동아시아에서 일본 엔을 비중 있게 다룬 반면,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과 같이 오랜 식민 항쟁 역사를 가진 나라를 다루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은 시대를 변혁시킨 도전자들을 중심으로 엮어 각국 근현대사를 이해하게 하고 있다. 혁명이나 독립전쟁 과정에서 차별·탄압·폭정·침략·독재에 맞서 역경을 도전의 기회로 삼고 생명·자유·평화·행복의 새로운 미래 사회를 위해 시대를 변혁시킨 영웅들은 실존 인물이 주를 이루고 있어 화폐를 통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북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남부아시아, 중앙-서남아시아, 동아시아 등 역사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14개국 52명을 다루면서 대한민국 광복, 건국, 자유민주주의 영웅들을 다루지 않는다. 아니, 다룰 수 없음을 저자는 아쉬워했다. 대한민국 화폐에는 조선시대 인물만 있을 뿐, 독립운동과 그와 관련된 인물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한 상징적인 인물이 없어서 화폐에 넣지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까닭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시대가 기억할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 출판 헤이북스, 저자 알파고 시나씨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 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

알파고 시나씨 지음, 헤이북스(2016)


태그:#화폐, #건국절, #독립운동, #알파고 시나씨,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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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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