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기사 '굳이 한국 와서 유럽제품 사는 중국인들, 왜?'에 이어 이번 기사에서는 가짜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 기자 말

청나라 주점에서 조선 청심환으로 술값을 치르다

왜 중국 시장에 가짜 제품이 많은지 중국 친구에게 물어보면 답변이 각양각색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 문화혁명 시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속이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어서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말하다 마지막에는 결국 '먹고사는 게 족해야 도리를 안다'(衣食足而知礼仪)는 맹자 이야기를 하며,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풍족해지면 가짜 제품이 저절로 없어질 거라고 결론 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맞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가짜 제품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780년 중국 청나라를 여행한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조선에서 가지고 간 청심환이 중국 사람에게 인기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청심환은 원래 중국 송나라 때부터 시작된 처방약으로, 그 뒤 조선시대 때 한반도에 전해집니다. 청심환의 원조는 중국인데, 중국 사람이 청나라에서 만든 청심환을 놔 두고 조선에서 만든 청심환을 좋아하니 박지원도 그 이유가 궁금했겠지요.

그래서 박지원은 주위 중국 사람에게 조선 청심환에 왜 열광하는지 물어본 후, "청나라에도 청심환이 많지만 가짜가 수두룩한데, 조선에서 만든 청심환은 진짜라서 믿을 수 있다"라는 중국 사람 답변을 <열하일기>에 기록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박지원은 그 후부터 물건을 사거나, 술을 먹고 돈 대신 청심환으로 값을 치러 경비를 아꼈다고 합니다.

청나라 대학자 ‘기윤’과 그의 저서 ‘열미초당필기’
 청나라 대학자 ‘기윤’과 그의 저서 ‘열미초당필기’
ⓒ 중국 바이두

관련사진보기


1773년 청나라 건륭제는 고대부터 당대까지 모든 서적을 기록한 <사고전서>를 만들면서 집필 총 책임자로 '기윤'이라는 학자를 임명합니다. 그러니까 '기윤'은 1700년대 청나라 최고 학자였지요.

'기윤'이 쓴 <열미초당필기>는 귀신이나 동물을 등장인물로 하여 청나라 시대 사회와 생활 모습을 기록한 책인데, 여기에도 자신이 겪은 가짜 제품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청나라 최고 명품 제품 먹을 샀는데 집에 돌아와 써보니, 진흙으로 구운 벽돌에 검은 물을 들인 가짜로 감쪽같이 속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젊은 시절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초를 몇 자루 샀는데, 아무리 해도 불이 붙지 않아 자세히 보니 진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겉에다 양 기름을 바른 가짜였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사촌 형님 심부름으로 오리구이를 사왔는데, 살을 다 발라내고 오리 머리, 목, 발과 뼈만 남긴 다음 진흙을 채워 넣고 오리 기름을 바른 가짜였다고 합니다.

1700년대 청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GDP의 1/3 이상으로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세 명의 황제 시대(1661년~1795년)는 유례없는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풍족해지면, 가짜 상품이 없어질 거라는 이야기는 맞지 않습니다.

가짜 제품과 모방 제품의 차이

한나라 한무제는 유교를 국가 지배 사상으로 삼았습니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한나라가 유교를 유일한 국가 지배 사상으로 해서 망했다고 판단하고, 사상을 개방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 시대에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까지 번성했지요. 당나라가 멸망한 후 송나라는 당나라가 사상 개방으로 망했다고 판단하고, 유교를 중요시하면서, 은나라(기원전 1600년), 주나라(기원전 1207년)의 예법과 음악(禮樂,礼乐)을 복구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제작된 청동 그릇과 청동 악기
 송나라 시대에 제작된 청동 그릇과 청동 악기
ⓒ 중국 바이두

관련사진보기


그래서 송나라는 황실 제사에 필요한 그릇과 악기를 2500년 전 은나라, 주나라 시대 청동 유물로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2500년 전 청동 그릇과 청동 악기 유물이 남아 있어, 그걸로 제사를 지냈지만, 황실 제사 규모가 커지고 민간에서도 2500년 전 유물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자 청동 유물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요가 생기면 당연히 공급이 따르는 법. 이 틈에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청동 유물을 얻기 위해 은나라, 주나라, 춘추시대 무덤을 파헤쳐 청동 유물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간 과거 시대 무덤 모두가 파헤쳐지게 됐지요.

송나라 황제는 무덤 도굴을 막기 위해, 황실 권위에는 모양이 빠지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2500년 전 청동 유물을 모방해 만든 모방 제품으로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국가예악국(官方礼乐局)에서 공식적으로 2500년 전 청동 유물 모방 제품을 만들자, 민간에서도 청동 유물 모방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만든 모방품 유물을 중국에서는 안품(赝品)이라고 부릅니다.

3500년 전 은나라 시대에 만든 청동 유물과 1000년 전 송나라 시대에 만든 청동 유물은 재질과 모양 제작 기술까지 똑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청동 유물이 발견되면, 전문가만이 어느 시대 유물인지 감정할 수 있답니다.

사실 송나라 시대에 만든 청동 유물이 모방품으로 진짜 제품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짜 제품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모방 제품에 익숙한 역사적 경험이 중국 사람에게 같은 기능과 효능을 가진 물건이면, 정품과 모방품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게 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저장성 이우시(义乌市)와 광동성 광주시(广州市)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생활용품 생산단지가 있습니다. 이곳 생산단지에서는 같은 기능과 효능을 가진 진짜 제품과 가짜 제품을 생산해 중국 전 지역에 공급합니다. 그러면 중국 사람은 본인의 필요에 따라, 어떤 때는 높은 가격의 진짜 제품을, 어떤 때는 낮은 가격의 가짜 제품을 사서 사용하는 거지요.

가짜가 특히 많은 제품 분야는 의류, 가죽제품, 식품(주로 주류와 음료수), 담배, 가전제품, 통신설비, 가구, 자동차용품, 곡류, 씨앗, 화학비료, 보석, 골동품 등입니다.

중국에는 학연이 없다

중국대학교에서는 같은 학과에서 공부하더라도 선후배간 서로 알지 못합니다. 또 같은 학과라도 기숙사를 같이 쓰는 몇 명만 서로 친하고 나머지 학생끼리는 그저 알고만 지냅니다.

이러다 보니 졸업하고 나서 학과 동창회 모임도 없고, 당연히 대학교 동창회 모임도 없습니다. 나이가 몇십 년 차이가 나더라도,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한국 학연(學緣, 学联)문화와 달리, 중국에서 학연이라는 단어는 공식 조직인 '학생연합회(学生联合会)'라는 의미로만 사용되지요.

중국 대학생에게 졸업 후에 왜 대학교와 학과 동창회 같은 모임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아주 간단합니다. 중국이 워낙 넓고 인구가 많아,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같은 대학 출신 사람을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답니다.

중국은 국토도 넓고 인구도 많습니다. 중국 국토 면적은 한국의 97배이고 중국 인구는 한국의 28배입니다. 50여 개 나라로 구성된 유럽과 비교해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중국 국토 면적은 유럽(러시아 제외)의 3배이고 인구도 유럽의 3배입니다.

한국에서 어떤 직장인이 회사를 옮기면서 경력증명서를 전직하고자 하는 회사에 제출하는 경우, 회사 인사부 직원은 제출된 경력증명서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주위에 알고 있는 몇 사람에게 연락해 보면, 그 사람의 이전 직장 근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전 직장에서의 근무 태도까지도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동북지역 흑룡강성 회사에서 근무하던 어떤 직장인이 중국 서북지역 신장웨이우얼자치주 회사로 전직하면서 경력증명서를 제출했다면, 회사 인사부 직원은 제출된 경력증명서의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전직하는 직장인이 회사 누리집과 전화번호를 조작했다면, 한 가지 남은 방법은 인사부 직원이 동북지역 흑룡강성에 직접 가서 그 사람의 경력 여부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중국 서북지역까지 거리는 5000km입니다. 한국 남북거리가 400km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가늠해 볼 수 있지요.

가짜 제품이 제조공장에서 멀리 위치한 지역에서 유통될 경우, 가짜 제품 제조 공장을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설혹 가짜 제품 제조공장을 찾았다 하더라도, 회사 사장이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달아나면, 추적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마약이나 식품의 경우는 철저하게 조사해 처리하지만, 그 외의 제품까지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한국도 중국처럼 국토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지역에서 생산된 술을 승용차 트렁크에 가지고 다닌다.
 지역에서 생산된 술을 승용차 트렁크에 가지고 다닌다.
ⓒ 중국 바이두

관련사진보기


중국에서는 식당에서 술을 마실 때, 손님이 술을 직접 준비해 갑니다. 그러니까 식당에서는 안주만 파는 거지요. 손님이 식당에서 파는 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믿을 수 없기에, 손님이 술을 직접 가지고 가서 마시는 게 주인이나 손님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때, 손님이 가지고 가는 술은 대부분 그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입니다. 먼 지역에서 생산된 술은 아무리 유명 상표라도, 제조회사에서 진짜 상품과 가짜 상품 시장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술은 해당 지역에 있는 제조회사가 철저히 상품 시장 관리를 하므로, 중국사람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술은 안심하고 마십니다. 만약 중국 국토가 작았다면, 가짜 제품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가짜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근절되지 않는 이유

<더 데일리 페디아>라는 매체는 '중국의 미친 복제 브랜드 톱 10'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더 데일리 페디아>라는 매체는 '중국의 미친 복제 브랜드 톱 10'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 thedailypedia

관련사진보기


중국에 가짜 제품이 많은 이유를 정리해 보면 먼저 모방 제품에 익숙한 역사적 경험이 중국 사람에게 '누가 제품을 만들었느냐'보다는 제품의 기능과 효능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한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정부 입장에서도 가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산업 부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하나의 산업군으로 인정하는 같고, 더불어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에게 제품을 제공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하는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넓은 국토 면적과 많은 인구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다음 회에는 중국 사람이 시장에 범람하는 가짜 제품을 어떻게 구별하고 대처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bout me] 20년 동안 봉급쟁이로 일하다 회사에서 잘린 후, 집에서 1년 정도 백수로 놀았습니다. 2006년부터 중국 사람과 무역일을 시작했고, 3년 전에 돈이 될까 싶어 중국에 와 장사를 했지만 헛힘만 쓰다가, 지금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학교에서 중국학생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2014년 '한겨레신문 출판사'에서 <어린이 문화교실> 책을 출판했고, 2015년 고맙게도 '한우리독서논술'에서 제가 쓴 책을 논술교재로 채택해줘 인지세를 받아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습니다.

[Story] 한국에서 무역 일로 중국 사업가를 만나면서, 중국에서 장사 일로 중국 고객을 만나면서, 중국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중국 학생을 만나면서 알게 된 중국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제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쓰려고 합니다. 나무만 보고 산을 못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인터넷에 넘쳐 나므로 저는 저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글을 풀어가겠습니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의 피드백을 부탁합니다.


태그:#중국, #중국사람, #중국문화, #중국생활, #가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