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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과 학교와 집, 이 기괴한 삼각관계 속에서 어른들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스치게 되는 주위 풍경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화단에 자라는 풀꽃들을 보며, 운동장 철봉이나 친구가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러다 문득 태권도 도복을 입고 정신없이 영어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바빠서 관찰도 생각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게 된다.

이주홍문학상을 수상한 차영미 시인은 최근에 펴낸 두 번째 동시집 <막대기는 생각했지>(도서출판 소야)를 통해 바쁜 일상의 아이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한다.

"얘들아, 지금 무엇을 보고 있니? 주위를 좀 둘러보렴"

차영미 동시집 <막대기는 생각했지> 표지
 차영미 동시집 <막대기는 생각했지> 표지
ⓒ 도서출판 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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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탁은 '관찰'이다. 늘 다니는 길, 매일 만나는 자연과 풍경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지 궁금해 하며, 아이들에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볼 것을 권한다. 멈추고 바라보는 일은 쉬운 듯 어렵다. 바쁜 일상의 아이들은 더더욱 그래 보인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무언가를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나무와 풀을, 철봉과 미끄럼틀을, 길고양이와 매미를 멈춰 서 바라보는 아이들은 다른 무엇, 혹은 누군가를 잘 이해하고 마음도 잘 읽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멈춰 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이 독자들에게 '이렇게 한 번 바라보겠니?'라고 말한다. 잘 살펴보면 비 개인 아침 화단 풀밭에 여치 한 마리가 보이기도 하고(비 개인 아침, 22쪽), 아파트 경비실 뒤로 사라지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따라가 볼 수도 있다(고양이를 만난 날, 41쪽). '툭-' 떨어지는 모과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가슴 두근대며 주워보기도 하고(모과, 76쪽), 지저분했던 동네 공터가 어느새 화단으로 바뀐 것도 눈치 챌 수도 있다(안녕 친구, 20쪽).

시인은 주위의 풍경, 사물뿐만 아니라 늘 함께 지내는 엄마와 아빠, 가족들, 친구들까지도 제대로 바라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통화를 하는 엄마, 기운 없는 아빠의 모습에도 시선이 머물고,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 고추농사를 농사를 짓는 할머니에게도 시선이 머무른다.

'회사가 문을 닫은 후 / 아빠는 고치 속에서 / 내내 잠만 잤어. // 엄마는 안절부절못했고 / 나는 조마조마 / 날마다 벌서는 기분이었지.'('힘센 말' 중에서) 

실직으로 기운 없는 아빠와 그런 아빠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시인은 동시 속에 주위 사람들에 대한 깊고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그러한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들도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누군가와 진실 되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얘들아, 재미있는 생각들을 많이 많이 해 보지 않을래?"

동시를 통해 아이들에게 시인이 두 번째로 건네는 부탁은 '생각'이다.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한 것들에서 생각을 만들어내면 일상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생각하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어제 밤까지 피어있던 꽃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날개를 달고 날아간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차이, 51쪽), 마음을 아프게 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는 오히려 나의 지난 모습을 되짚어가며 반성하기도 한다(가시, 44쪽).

'내 / 검지손톱만한 / 달팽이 // 저 건너 상추밭에서 / 울퉁불퉁 자갈길 지나 / 아욱꽃 피어 있는 이곳까지 // 어떻게 왔을까 // 힘들어서 혼자 / 울기도 했을까 // 그때 누가 // 나직나직 / 말이라도 걸어줬을까 // 다독다독 / 손이라도 잡아줬을까' ('달팽이' 전문) 

작은 달팽이의 느린 질주를 보면서 생각 속에 달팽이의 마음까지 담아낸다. '힘들지는 않았을까? 외롭지는 않았을까?' 바라보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동시는 그러한 생각하기가 시적으로 형상화된 것들이다.

시인은 아이들에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들을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추운 겨울 쥐똥나무 까만 열매를 바라보면서 참새들의 단골 밥집일 거라고 상상하고(쥐똥나무 단골집, 74쪽), 주말농장에서 가지와 고추나무를 받치고 있는 막대기를 보고서 그 막대기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막대기는 생각했지, 104쪽). 생각은 그렇게 무궁무진 펼쳐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차영미 시인은 '생각하기'에 '공감'을 덧붙인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바라보는 대상과 상황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변을 관찰하고, 생각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은 사물과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동시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러므로 차영미의 새로운 동시집 <막대기는 생각했지>는 걸음을 멈춰 바라보기에서 시작해서 생각하고, 공감하기로 확장되는 힘이 있다.

<막대기는 생각했지>에 수록된 다른 동시를 두 편 더 만나보자. 

가 시

"너 정말 재수 없어!"

혜진이에게
민정이에게
진옥이에게

내가 했던 말
오늘 낮
단짝 현주에게 듣기 전엔

정말 몰랐던
뾰족하고
커다란 가시

따끔거리는 것들


주말농장
고추밭

햇볕이
따끔 따끔

모기는
더 따끔 따끔

엄마
잔소리는

제일
따끔 따끔

따사로운 시선과 생각과 공감으로 만들어낸 차영미 시인의 시집, 이 책을 우리 아이들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아이들이 한번쯤 길을 가다 강아지풀을 보고 멈춰 설지 모른다. 그리고 생각할지 모른다.

"얘들아, 잠깐만 멈추고, 자세히 한 번 바라보렴.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해 봐."

책 정보

* 제목 : 막대기는 생각했지
* 지은이 : 차영미
* 출판사 : 도서출판 소야
* 출간일 : 2016.7.28.
* 정가 : 10,000원


막대기는 생각했지

차영미 지음, 정효은 그림, 소야(2016)


태그:#차영미, #막대기는, #소야, #동시, #아동문학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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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문학가, 시인, 출판기획자 * 아동문학, 어린이 출판 전문 기자 * 영화 칼럼 / 여행 칼럼 / 마을 소식 *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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