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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 모처럼 밤베르크 시내에 나온 에버하드 가족들. 관광의 중심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우리를 위해 모처럼 밤베르크 시내에 나온 에버하드 가족들. 관광의 중심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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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니첼이란 음식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사실 이틀 전 에버하드로부터였다. 우리가 여행 중 만난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의외로 에버하드가 격분을 하더니 그들이 겸손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최고인 줄 안다고.

나와 남편은 사실 여행을 통해 강대국과 약소국을 화두로 많은 이야길 나누었었다. 우리가 관찰과 대화를 통해 얻은 요점 중 하나는 '잘난 척, 강한 척 하는 나라는 사실 약소국에 대한 설움이 있는 국민임을, 문화 경제 역사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큰 권력을 갖지 못한 민족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유독 돈 계산이 빠르고 외국어 구사력이 좋아 휴가지에서 유독 자신감 넘치며 나이 들어서까지 캠핑을 즐겨, 온 휴가지를 노란색 NL번호판으로 뒤덮는 것이 이웃 나라 강대국 출신이 보기에 그리 곱게 보이지 않겠다 생각은 했었는데 짐작보다 양국 간 서로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부정적이고 단호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무례함에 대해 말할 때 예로 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독일의 대표 음식인 '슈니첼'이었다. 슈니첼는 어느 나라에 가서나 슈니첼을 찾으면 독일의 그것이 나올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독일 고유의 음식이란다.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독일 대표 요리일진데 네덜란드에선 "슈니첼이 뭐 얼마나 대단한 맛이라구! 그게 뭐 독일 거야?" 정도의 느낌이 날 정도로 독일인이 타당하다 생각하는 만큼의 인정을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처음 슈니첼을 알았고 그 맛이 궁금해졌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그 맛이 어떤 맛일까. 순간 무라카미류의 책에 나오는 '헝가리 망명자'인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았던, '엄마의 스프'와 비슷한 맛이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맛을 보기 위해 밤베르크 시내에 갔다. 겉에서 보면 실내가 매우 좁아 보이지만 실내를 관통해 뒷마당으로 들어서니 많은 좌석이 있고 전 좌석에 사람이 앉았다. 이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으로 관광객들은 입구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란다.

서 있는 우리에게 종업원은 6인석에 앉아 계신 2인 할머니 자리로 가서 합석하길 권했다. 할머니는 흔쾌히 합석한 우리의 출신국가를 물어보시며 "조금 전에도 여기 한국인이 앉았었어."라며 즐거워하신다. 우리도 봤다. 한국을 떠나온 지 아주 오래 된 듯한, 정확히 말해 1980년대 어느 사진 속에서 튀어 나왔을 차분하고 진지한 눈빛, 국내 유행과 한참 벗어난 안경테, 옷, 가방을 든 귀여운 인상의 남성 2인을. 아마도 미국 번화가 대도시의 유행을 좆아 화려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떠나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나는 슈니첼을 시켰다. 남편도 슈니첼을 시켰다. 아이들도 슈니첼을 시켰다. 정말 다 슈니첼을 먹을 참이냐고 에버하드는 약간의 반가움과 놀라움이 중첩되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결국 구드운을 뺀 6인은 모두 슈니첼를 시켰다.

아이들의 장난에도 즐겁게 반응해주는 에버하드. 좋은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이들의 장난에도 즐겁게 반응해주는 에버하드. 좋은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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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소피가 함께 왔다. 짠!
 막내딸 소피가 함께 왔다. 짠!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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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니첼을 기다리며 에버하드가 말했다. 지금 망치로 고기를 두드리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난 고기의 질감이 돈가스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라 짐작했다. 드디어 슈니첼이 나왔고  남편과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을 동시에 소리로 표현했다. 아이들은 말보다 포크질이 빨랐다.

정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양새이기에 아이들에게 낯선 이국 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것도 없이 그냥 입에 넣으면 간단한 상황이다. 그것은 그냥 '돈가스'였다. 그때서야 알았다. 돈가스는 사실 일본 음식이 아니라 일본에 전파된 독일의 슈니첼에 일본이 이름을 바꿨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 같다고. 아니라구욥? 아님 말구. 

으깬 감자에선 부드러우며 달콤한 맛이 나고, 튀긴 고기에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으며 살짝 적당한 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샐러드로 나온 것은 참 달콤하고 상큼한 드레싱에 푹 담가진 당근 채가 있었고 그 위에 큼직한 상추 몇 장이 방울토마토 반개를 껴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맛을 비교하자면 이곳의 슈니첼이 일본의 돈가스보다 두 수 위였다.

소피 언니의 개인기에 즐거워하며 슈니첼을 기다리고 있다.
 소피 언니의 개인기에 즐거워하며 슈니첼을 기다리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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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모양새. 맛은 참 깊고 인상적이었던 슈니첼.
 단순한 모양새. 맛은 참 깊고 인상적이었던 슈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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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의 돈가스는 빵가루를 입혀 튀겨냈기에 한 입 깨물면 '와삭'하는 경쾌한 소리가 난다. 대신에 내 경우엔 소리에 신경이 집중되어 맛에 집중하지 못했다. 또 일본식 돈가스는 다양한 색채로 멋을 부린 야채가 먹기조차 아까울 정도로 예쁘긴 하지만 고기 고유의 맛을 음미하는데 방해가 되는 맛이다. 찍어먹는 소스도 포함하여.

그런데 슈니첼은 많은 시간 정성들여 망치로 두드리고 양념하고 튀겨낸 그 노력과 수고가 다른 것에 방해되지 않고 온전히 입에서 음미되니 어찌 훌륭한 맛이라 하지 않을까.

일본요리의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엔 비할 수 없는, 소박한 슈니첼의 색감이지만 으깬 감자 범벅을 닮아 잡티 없이 깨끗하게 튀겨진 슈니첼의 고기는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아이들 접시엔 감자튀김 몇 개만 남았을 뿐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다.

그  다음 날 우린 한 번 더 슈니첼을 먹고 싶었으나 우리의 발음이 이상한지 밤베르크 슈니첼을 먹을 수 없었다.


태그:#리씨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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