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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컬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나향욱 기획관의 발언을 보도한 LA 타임즈.
 나향욱 기획관의 발언을 보도한 LA 타임즈.
ⓒ LA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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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eka! Trump has found his VP candidate!(유레카! 트럼프가 그의 부통령 후보를 찾았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에겐 좋은 소식일지 모르겠다. 공화당에서조차 꺼리는 '망언의 왕' 트럼프에 필적할 부통령 후보가 출현했으니. 다만, 국적이 한국인이라 이런 유레카와 같은 발견 소식이 미국 땅까지 전해질지 의문이지만.

11일 오전(현지시각), 미 <LA타임스>는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개돼지' 발언을 자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발언 자체는 물론 전후 맥락과 반응과 파장까지 꽤나 상세하게 전했다. 그러면서 기사 첫머리에 나 기획관의 발언을 트럼프의 망언에 비유했다. 위 문장은 기사에 달린 비아냥에 가까운 댓글이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지난 11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한 것에 대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 국회 불려나온 '개돼지' 나향욱 기획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지난 11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한 것에 대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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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타전되는 사이, 대한민국은 그의 반대편에 선 트럼프의 막말에 버금가는 망언으로 들끓고 있다. 지난 9일,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넌 국가의 내장에서 세금 빨아먹는 십이지장충"이라는 극언으로 응수했고, 11일 손석희 앵커는 JTBC <뉴스룸>에서 "아…이제는 정말 별말을 다 듣고 삽니다"라고 한탄했다.

그저 나라망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박근혜 정권 초기, 그 미국 땅에서 윤창중 당시 대변인이 '윤그립'으로 등극하는 성추행 사건을 일으켰을 때부터 싹이 보였다. 비단 도덕적 해이를 질타할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나 기획관과 같은 '확신범'들이 공직사회와 정치권, 보수단체 가리지 않고 즐비하게 넘쳐난다는 것이요, 그들이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을 전부 속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확신을 거세해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개돼지'도 모자라 '미개인'이라니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종북좌익척결단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드 배치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벌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종북좌익척결단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드 배치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벌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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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촌놈들 올라와가지고 멍석말이를 해야 됩니다. 뭐 이따위 것(참여연대)들한테 속아 가지고, 머리띠 두르고 사드 반대한다고! 내 고향이지만, 사람 할 짓이 아닙니다. 칠곡 사람들이 그렇게 미개합니까? 미개하면 안 됩니다. 사드가 있어야, 칠곡에 배치하든 평택에 배치하든 서울 사람이 살아남으면 그래도 '우리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대한민국 다 지킨다'하고 돌아다니면서 자부심을 가져야 정상적인 한국인이 되는 거 아니에요?"

11일 <국민TV> 보도에 따르면, 종북좌익척결단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단체의 조영환 대표는 '사드 배치 찬성'을 외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참여연대 앞 시위 현장에서 말이다. 자신이 칠곡 출신이라 밝힌 조 대표는 고향 사람들을 일거에 '미개인'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나 기획관과 조 대표에 따르면, 한국은 '개돼지'와 '미개인'이 대다수인 사회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 기획관은 자신을 "1%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고 한다. 신분제 사회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기엔 조금 가련한 논리다. 아직 그 지위를 얻지도 못한 사람이 그 1%가 되기 위해 다른 99%를 '개돼지'로 몰아가는 형국이라니.

집회 당시 발언이라고 해도, 조영환 대표 역시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향 사람들을 '미개인'이라고 몰아붙인 조 대표 역시 지극히도 정권 편향적인 동시에 '서울 거주자'로서의 제 이익밖에 안중에 없는 걸로 보인다. 개성공단 중단을 지지하고, 국정화 교과서를 찬성하는 등 '어버이연합'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인 조 대표.

그가 사드 배치를 지지하며 내뱉은 '미개인'이란 표현은 실제 '국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사익'을 '국익'이나 '나라발전'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일 뿐이다.

나 기획관과 조 대표 같은 이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막말의 향연'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막말 자행하는 확신범들을 양산하는 사회

최종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 지난 1일 오후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B동 앞에서 이정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해임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 이정호 센터장이 최근 환경문제 관련 워크숍에 참석, 자신을 친일파라고 소개하며 일왕을 향한 만세삼창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종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 지난 1일 오후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B동 앞에서 이정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해임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 이정호 센터장이 최근 환경문제 관련 워크숍에 참석, 자신을 친일파라고 소개하며 일왕을 향한 만세삼창을 했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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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 폐하 만세!"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워크숍 이후 식사 자리에서 '천왕폐하 만세'라며 삼창을 했다는 내용이 사회적인 충격을 던져준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이후 여러 건이 터져 나왔다. 한국장학재단 안양옥 이사장 역시 지난 4일 같은 세종시에서 "(학생들)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는 말로 물의를 빚자 어설픈 사과로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지면을 다 채워도 끝이 없을 정도다. 비단 교육계와 공직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이 이러한 막말을 자행하는 확신범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너도 하니까 나도 한다'보다는 '이 정도 본심은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확신이 그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이런 확신범들의 커밍아웃을 조장하고 있는가.

일찌감치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이후 탄생한 '종북' 프레임을 이을 진보-보수 프레임을 열심히 짰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로 대변되는 '뉴라이트' 사관을 신봉할 만한 학자·관료·공직자들이 대거 권력을 잡았다. 친일에 이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수정'하려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대한민국 1%'를 차지했거나, 비교적 가까이 위치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천왕 폐하 만세"를 외치고, "신분제 사회의 부활"을 꿈꾼다. 이들에겐 수정주의 역사관이 필요하다. 가까이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고, 더 크게는 '사익'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나 기획관이 '교육부' 관료라는 것은 그래서 더 상징적이요, 문제적이다.

'헬조선'을 원망하며 급기야 '탈조선'을 희망하는 때문이다. 어차피 '개천에서 용 나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박탈하려고 노력하는 1%와 그 1%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나 기획관과 같은 이들에게 '헬조선'은 오히려 '수탈'하기 딱 좋은 식민 상태 아니던가. 그런 확신범들이 구의역에서 숨진 19살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을,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던 어른들 때문에 죽어간 아이들의 희생을 공감할 수 있겠는가.

<내부자들> 속 '개돼지' 발언 주인공은...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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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LA타임스> 기사로 돌아가 보자. 다시 미국인들에게 드리워진 '트럼프 공포'를 우린 이미 4~5년 전에 겪었다. 일부에서 '입헌공주국'이란 비웃음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력 대선후보였던 그 시절 말이다. 그리고 4년 뒤, 우리는 어느 미국 누리꾼에게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를 낳았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국가가 됐다.

누구 때문이냐고?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 논문을 발표한 것이 화제가 되는 지금, 여전히 수첩을 붙들고 계신 박근혜 대통령 덕분 아니겠는가. 경제, 통일, 외교, 정치, 인권, 언론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국제 순위나 지수, 수치를 팍팍 떨어뜨리다 못해 '헬조선'이란 유행어를 낳게 한 장본인. 사회 전반의 보수적 퇴행과 이를 가능하고 작동케한 장본인들이 청와대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버이연합'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지 않나.

나 기획관을 비롯한 비교적 젊은 40대 확신범들에게 처절한 대가를 안겨주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사익'만을, 제 가족과 제 이익만 좇는 이들에게 계속 국가 운영의 방향키를 쥐어준다면, 돌아오는 것은 공멸뿐이다. 이 나라의 '밝은 미래'는 사익만 좇는 1%와 대통령 이하 일부 '노인'들과 그 가족과 일가 친척, 지인들이 아니라 '개돼지'에 속한 99%들과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11일 오후, 국회를 찾은 나 기획관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음주와 피로, 그리고 영화에서 본 대사의 영향 때문이라고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죽을죄를 지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가 언급한 영화 <내부자들> 속 '개돼지' 발언의 주인공은 펜을 잡았던 오른팔을 잘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더 이상 확신범들이 활개를 치지 못하게 하려면?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팔, 다리가 잘리는 것에 비등한 사회적 처벌이 이뤄져야만 한다. 영화 속 이강희 주필도 부활을 꿈꿨다. 그리 쉽게 확신범들의 권력을 뺏을 수 없다는 얘기다. '개인적 일탈'이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지금, 교육부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그:#나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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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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