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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중국의 꿈 홍보 포스터
 2015년 중국의 꿈 홍보 포스터
ⓒ 중국 중앙선전부 선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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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담장을 쌓다

공공건물이든 회사건물이든 중국 건물에는 한국 건물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중국 건물은 가운데에 네모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네모 공간을 집채가 둘러싸는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물을 한글 미음(□) 글자처럼 네모나게 짓고 한 가운데를 텅 비워두는 거지요. 땅값이 비싼 시내에서 이런 구조의 대형빌딩을 발견하면, '땅값이 얼마나 비싼데 이렇게 공간을 낭비할까'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한가운데를 비우고 그 주위를 네모로 에워싸며 집을 짓는 건물 구조는 중국 전통 건물 사합원에서 유래합니다. 사합원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모두 집채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네모 모양으로 이어진 집채는 출입문이 모두 안쪽 마당으로 나있고 집채 바깥 벽은 담장 역할을 합니다. 네모난 집채 바깥 벽이 높을 뿐 아니라, 남쪽 벽 높은 위치에 작은 창문 하나만 있어, 집채는 성곽처럼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됩니다.

또 출입구 대문도 남동쪽에 조그맣게 만들어 외부인의 출입을 빈틈없이 막습니다. 설령 대문을 열고 집 안쪽으로 들어가려 해도, 대문 바로 앞에 조벽(대문 안쪽에 벽돌이나 흙으로 쌓은 직사각형 형태의 담)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을 이중으로 막는 구조입니다. 사합원은 내부로는 개방돼 있지만, 외부를 향해서는 철저하게 폐쇄되는 기능을 가진 건물 구조입니다.

중국사람은 왜 이렇게 폐쇄적이고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는 건물을 지을까요? 중국 문화 소개 책에는 사방을 둘러싼 집 바깥 벽 높은 담장이 1년 내내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막는 역할을 해주고 대문 안쪽 조벽은 밖에서 들어오는 귀신을 막는 기능을 한다고 쓰여 있지만, 그 외에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780년 중국을 여행 한 박지원이 쓴 중국 여행기 <열하일기>에는 "중국은 3리 마다 성(城)이요 5리 마다 곽(廓)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城)은 일반적인 성채를 말하고, 곽(廓)은 규모가 더 큰 성곽을 말합니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마을 경계 표시로 장승을 세워 놓았는데, 중국에서는 마을 경계 표시로 성곽을 쌓은 거지요. 박지원은 중국사람에게 왜 마을마다 성곽을 쌓느냐고 물었지만, 통역하는 사람의 실력이 모자랐는지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은나라부터 현재까지 중국 역사 5000년 중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사람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2년 6개월에 한 번씩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국경선 너머 이민족과의 전쟁에서부터, 정권 교체기에 일어나는 자국민들간의 전쟁,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도적떼와의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싸움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간에 외부인이 침입 할 수 없도록 높은 담을 쌓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합원 구조의 집을 지어 담장을 쌓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을 외곽에 옹성을 쌓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경선에 성곽을 쌓았습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만리장성뿐 아니라 도시마다 성곽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사람은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을 지키려는 방편으로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구조의 집채를 짓기 시작했고, 너무 자주 전쟁이 일어나다 보니 이런 건물 구조가 전통으로 남게 된 겁니다.

중국 산동성박물관 텅빈 건물내부 공간.
 중국 산동성박물관 텅빈 건물내부 공간.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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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담장을 쌓다

중국에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담장 말고도 중국사람 마음 속에 있는 '꽌시'(关系)라는 담장이 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담장이 담장 안 내 편 사람과 담장 밖 적 편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면, 마음 속에 있는 꽌시라는 담장은 담장 안 자기사람(自己人)과 담장 밖 기타사람(外人)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중국 사람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 모두를 담장 안 자기사람과 담장 밖 기타사람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담장 안 자기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지만, 담장 밖 기타사람은 '기타'라는 단어 의미 그대로 자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기타사람이기 때문에 관심도 없고 서로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자기사람과 기타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태도, 대우 그리고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담장 안 자기사람과 담장 밖 기타사람을 구분하는데 사용하는 표현이 바로 꽌시입니다. 하지만 서로 꽌시를 맺은 사이라 하더라도 친밀도의 정도에 따라 여러 단계의 꽌시가 존재합니다.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에게 "당신과 나는 이제 꽌시를 맺었다"라고 말하면 한국사람은 중국사람과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돼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하지만, 이때 중국사람이 말하는 꽌시란 당신은 이제 겹겹이 쌓여 있는 담장 중 가장 밖에 위치한 담장 안쪽으로 겨우 들어 왔다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중국사람은 이미 꽌시를 맺은 사람도 국경선 성곽처럼 멀리 있는 담장 안 사람과, 집채 벽처럼 가까운 담장 안 사람같이 여러 단계로 나눕니다.

중국에는 '꽌시를 맺었다(有关系)'라는 표현 외에도 '꽌시가 개선되었다(改善关系)' '꽌시가 좋다(好关系)'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꽌시가 개선되어 좋아지는 단계를 순서대로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꽌시의 단계를 말하기 전에 한국과 중국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친구'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친구란 서로 나이가 비슷하면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합니다. 가깝고 오래 사귀었기 때문에 서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친구가 믿음을 잃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서로의 친구 관계는 막 바로 깨지고 맙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친구란 한국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됩니다. 중국사람이 말하는 친구란 사회생활 중에 만나서 알게 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담장 밖 기타사람 중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모두를 친구라고 하지요. 그래서 중국사람은 친구 사이에도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이용하고 배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때, 친구라는 의미는 결코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서로 믿음이 있는 친구 사이가 아니고, 그저 '이제 처음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 해봅시다'라는 의미 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도 여러 가지입니다. 먼저 새로 알게 된 사람은 새 친구(新朋友)라고 합니다. 이제 새 친구라는 꽌시가 시작된 겁니다.중국에서는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위·아래 10년 차이까지는 그냥 친구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나이보다 10년 이상 아래면 어린 친구(小朋友)라 하고 10년 이상 위면 늙은 친구(老朋友)라고 합니다. 얼마나 자주 만나 같이 밥을 먹었는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경제적이든, 비경제적이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일년 정도 만나면 좋은 친구(好朋友) 꽌시로 발전합니다.

좋은 친구(好朋友) 다음 단계는 오래된 친구(老朋友)입니다. 한국사람이 중국사람에게 오래된 친구로 불린다면 서로의 꽌시가 상당히 발전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는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에게 자신의 주위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자신과 꽌시가 있는 중국친구 집에 한국사람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사람이 중국사람과 오래된 친구 꽌시가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사람과 오래된 친구 꽌시가 되었다 해도 진정한 꽌시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몇 단계 더 남아있습니다.

중국 서안성곽
 중국 서안성곽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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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자식을 책임지는 의형제 꽌시

저와 오래된 친구 꽌시 사이인 중국친구와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알고 지내던 중국친구가 자신과 꽌시가 있는 중국인 집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평소처럼 술을 곁들여 식사를 하던 중 술이 떨어지자, 중국친구가 꽌시 사이인 중국인 집 장식장을 스스럼없이 열고 술병을 가져왔습니다. 저가 "아무리 꽌시 사이라도 그렇지, 말도 안 하고 장식장에서 술병을 가져 오면 실례가 아니냐"고 했더니 중국친구 답변이 재미있습니다.

집 주인의 허락을 받고 장식장에서 술병을 꺼내 오면 집 주인과 진정한 꽌시를 맺은 게 아니라고 말하며, 꽌시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서로 진정한 꽌시를 맺었다는 건 서로의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거라면서, 꽌시를 맺은 친구가 죽으면 그 친구의 자식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고, 자신이 죽으면 마찬가지로 꽌시를 맺은 친구가 자신의 자식을 책임져준다고 합니다. 그런 사이인데 하물며 술 한 병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중국사람과 꽌시를 맺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 꽌시 다음 단계를 '형제(兄弟) 꽌시'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중국사람이 말하는 진정한 꽌시 사이가 시작되는 겁니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꽌시의 마지막 단계인 '의형제(干兄弟) 꽌시'가 됩니다.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가 바로 의형제 꽌시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가족을 책임져주는 꽌시를 중국어로는 간(干)형제(兄弟) 꽌시라고 하는데 여기서 간(干)형제(兄弟)는 혈육관계가 아닌 친밀한 의형제를 의미합니다.

한국에서는 서로 깊이 신뢰하는 사이일 경우, 나이가 비슷하면 친구로 나이 차이가 있으면 의형제로 부릅니다. 중국에서는 나이 차이와 관계없이,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은 친구로 서로 깊은 신뢰가 쌓인 사람은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을 형제라고 불렀다면,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꽌시가 형성됐다는 것이고, 이제부터는 한국사람이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중국사람이 알아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물론 그 만큼 한국사람도 중국사람에게 도움을 줘야겠지요. 사실 중국사람이 "나는 누구누구와 꽌시를 맺은 사이다"라는 말을 하면 대부분 형제 꽌시일 경우입니다. 형제 꽌시가 아닐 경우 중국사람은 꽌시를 맺었다고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중국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형제꽌시가 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중국 인생 교훈 책인 <증광현문>(참고1)에 "하늘 아래 부모처럼 이해 해주는 사람이 없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진정한 형제를 얻는 일이다(天下无不是的父母,世上最难得者兄弟。)"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형제는 혈육관계가 아닌 의형제를 말합니다. 진정한 형제 사이에는 부모가 자식을 이해 해주는 정도의 교감이 있다는 의미겠지요.

중국 '꽌시'와 한국 '네트워크'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중국 '꽌시'를 한국 '네크워크'로 이해하고 중국사람과 사귀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언젠가는 "내가 그 동안 당신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속인다 이거지"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서로가 이용하고 배신할 수 있는 사이 일 경우, 친구라고 부릅니다.

중국에서 꽌시란 작은 공동 생활집단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을 치르며 개인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또 그런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경험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이런 상황을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꽌시라는 공동 생활집단이 만들어 졌을 걸로 여겨집니다. 중국에서 꽌시란 오래 전 유교 이데올로기로 운영된 황제 전제국가 시대부터 시작되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운영되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래에 중국이 어떤 국가형태로 바뀌던, 중국사람은 여전히 꽌시로 맺어진 작은 공동 생활집단으로 살아 갈 겁니다.

다음 회에는 '중국 어머니가 자식에게 매일 하는 말. 남에게 속지 마라'라는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중국사람이 담장 밖 기타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며 또 그들과 어떤 방법으로 어울려 살아 가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증광현문>, 무슨 책이죠?
<증광현문> 표지
 <증광현문> 표지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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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생활 체험을 통해 얻은 인생 교훈을 담은 중국 책으로 <명심보감>과 <채근담> 그리고 <증광현문>이 있다. <명심보감>과 <채근담>이 비교적 격조 있는 문장을 모은 품격 있는 책이라면, <증광현문>은 이상적인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실제 사회 현상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기에 <증광현문>은 격언, 속담, 민간 구전 설화 등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말이 실려 있고, 그 출처도 유교, 도가, 불교, 도교의 경전뿐만 아니라 서유기, 삼국지, 수호지 등으로 다양하다. 명나라·청나라 시대 민간에서 어린이에게 반드시 읽혔던 필독서로, 지금도 중국에서 어머니가 자식에게 반드시 읽히는 책이다. 또한 <증광현문>의 많은 글귀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About me] 20년 동안 봉급쟁이로 일하다 회사에서 잘린 뒤, 집에서 1년 정도 백수로 놀았습니다. 2006년부터 중국사람과 무역 일을 시작했고, 3년 전에 돈이 될까 싶어 중국에 와서 장사를 했지만 헛심만 쓰다가, 지금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학교에서 중국학생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2014년 '한겨레신문출판사'에서 <어린이 문화교실> 책을 출판했고, 2015년 고맙게도 '한우리독서논술'에서 제가 쓴 책을 논술교재로 채택해주어 인지세를 받아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습니다.

[Story] 한국에서 무역 일로 중국 사업가를 만나면서, 중국에서 장사 일로 중국 고객을 만나면서, 중국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중국학생을 만나면서 알게 된 중국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제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쓰려고 합니다. 나무만 보고 산을 못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인터넷에 넘쳐 나므로 저는 저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글을 풀어가겠습니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의 피드백을 부탁합니다.


태그:#중국, #꽌시, #중국생활, #중국이야기, #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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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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