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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0일 오후 1시 53분]

29일 오후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암동 전경. 왼쪽 아래 문제의 다가구주택이 있고, 멀리 북한산 능선이 미세먼지 때문에 희미하게 보인다.
 29일 오후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암동 전경. 왼쪽 아래 문제의 다가구주택이 있고, 멀리 북한산 능선이 미세먼지 때문에 희미하게 보인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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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KT건물 앞에서 녹색버스를 타고 청운동사무소를 지나 청와대 뒷산을 15분쯤 올라가면, 자하문을 지나자마자 부암동 주민센터 정류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곧 '서울에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었던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름드리 높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잘 보존된 한옥과 양옥들이 적당히 섞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뒤쪽에는 멀리 북한산 문수봉과 보현봉이 시야에 들어와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심심산골처럼 느껴진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보았던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란 설도 있고, 친일파 윤치호 아버지 윤응렬의 '반계별장'과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도 이곳에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뜸했던 곳인지라 예전 서울 골목의 모습을 답사하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최근 몇 년새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이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조용하고 한적한 이 마을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창문만 열면 보이던 절경, 건물 하나가 다 막아버렸다"

발단은 지난 2월부터 마을 중턱에 한 다가구주택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Y건축사사무소는 당초 6월말 완공을 목표로 건축면적 260.50㎡(연면적 658.94㎡)의 부지에 지상 2층, 지하 1층의 건물을 짓고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이 완공될 겨우 인근 주택들의 조망권을 완전히 가로막을 것이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바로 옆집에 거주하는 현경 교수(미국유니온신학대. 60)는 "처음엔 그냥 2층짜리 집을 짓는다기에 그런가보다 했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우리집에서 창문만 열면 바로 보이던 북한산이 지금은 하나도 보이게 않게 됐다"며 혀를 찼다.

8년 전부터 이 집으로 이주해 왔다는 현경 교수는 "외지에서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사는 이유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경관 때문 아니겠냐"며 "이웃이야 어찌 되든 말든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현경 교수는 또 이 건물이 자신의 집과 너무 가깝게 짓는 바람에 집안에 30여군데 금이 가고 사생활이 침해되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경 교수의 집 외 인근 주택 서너군데도 조망권 침해를 우려하고 있고, 한 작가는 건축과정의 소음과 진동으로 신경쇠약증에 걸렸다고 호소했다.

오른쪽에 새로 짓고 있는 다가구주택. 현경 교수는 이 건물이 자신의 주택(왼쪽)과 맞닿아 있어 조망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른쪽에 새로 짓고 있는 다가구주택. 현경 교수는 이 건물이 자신의 주택(왼쪽)과 맞닿아 있어 조망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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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법 테두리 안에서 지어... 잘못 한 게 없다"

민원이 접수되자 관할구청인 종로구는 건축 과정의 일부 위반 사실을 들어 지난달 말 건축중지 명령을 내리고 지난 13일 건축주,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실측했다.

종로구는 오는 30일 오후 3시부터 부암동 주민센터에 양측을 불러 실측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관련 법에는 조망권에 대한 규정이 없는 만큼 법으로 규제할 근거도 없다"면서도 "30일 설명회에서는 실측 결과를 발표하고, 양측이 서로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건축주 측은 민원인들의 문제 제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건축주 김아무개 Y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지인 3명이 돈을 모아 집을 짓고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난처하다"며 "그동안 이웃 분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많은 대화와 타협을 해왔는데 부도덕한 사람인 것처럼 일방적 인신공격을 해서 섭섭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이곳은 원래 지구단위계획상 2층까지 지을 수 있게 돼 있어 그에 맞춰 건물을 지은 것뿐"이라며 "조망권을 침해했다고 하는데, 그럼 이곳에 아무것도 짓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주민들과 타협할 의사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실측 결과 우리가 잘못한 게 있으면 바꾸면 되지만 현재까지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다가구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임인 '부암동지킴이시민모임'은 설명회가 열리는 30일 오후 주민센터 앞에서 피해사례 사진전과 반대서명 행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태그:#부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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