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발라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그림
 발라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그림
ⓒ 남유진

관련사진보기


바쁜 일상을 마무리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한다. 피로가 누적되고, 배는 고파오고, 전에 비해 발걸음은 더없이 힘이 든다. 그렇게 무심하게 길을 걷다 어디선가 나는 고소한 빵 냄새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당신은 빵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발라는 빵 작가다. 자신이 혹은 타인이 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이미지화해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림의 특징은 언제나 빵이 사람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빵이 이불로도, 쿠션으로도 일상의 친근한 소재로 변신해 따뜻함을 더한다. 따뜻한 빵의 부드러운 촉감과 편안한 그림체가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선물한다.

그는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어린이·청소년 교재에 삽화를 그리고, 또한 작년에 네이버 그라폴리오 스토리픽 챌린지에 선정돼 '어제의 빵'이란 제목으로 일러스트를 연재하고 있다. 

- 빵을 많이 그리시는 데 빵을 좋아하세요?
"네, 빵은 호불호가 많이 안 갈리는 것 같아요. 빵 싫어하는 사람 아직까지 못 본 것 같아요. 갓 구워나온 빵, 빵은 따뜻한 이미지가 있어서 되게 좋아해요."

- 그림 그리는 게 재밌나요?
"재밌어요.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잘하기도 하고, 그림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걸 그리는데 그게 표현이 되니까 그 부분이 되게 재밌어요. 예전엔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로 작업했었는데 작년에 디자인 회사 들어가면서 포토샵 브러쉬 툴을 만졌거든요. 생각보다 질감 표현이 잘 돼서 빵 그림은 포토샵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 그림은 언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나요?
"큰아버지랑 아버지가 그림을 잘 그리셨거든요. 확실히 유전의 힘이 있나 봐요. 저도 어릴 때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당연히 화가가 될 거라는 생각을 쉽게 했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은 화가, 화가가 돼야지….

하지만 아빠가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꿈에서 자연스레 멀어졌어요. 그러다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야간에 일러스트 학원을 졸업하고, 그림책 작가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당연히 그림책이 있으면 그림책 작가가 있을 텐데 그걸 몰랐어요. 그래서 다시 학원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일러스트레이터 발라
 일러스트레이터 발라
ⓒ 남유진

관련사진보기


- 발라는 무슨 뜻인가요?
"제 전공이 원래 힌디어예요. 힌디어로 발라라는 뜻이 어린아이 같은…. 약간 좀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어서 쓰게 됐어요."

- 어떤 그림이 제일 인기가 많나요?
"'졸리운 우유식빵'이 제일 인기가 많아요. 식빵을 보는데 저게 이불이면 되게 포근할 것 같다 싶어서 그리게 됐어요." 

- 빵에 얽힌 추억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렸을 때 경상북도 문경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집이 과수원을 했어요. 사과 팔고 나면 벌레 먹고 남은 사과 가지고 엄마가 잼을 만들었어요. 요새 슈퍼 가면 식빵이 다 작게 나오는데 예전엔 식빵 엄청 큰 거 있었거든요. 거기에 사과잼을 발라먹으면 되게 맛있었어요. 제 추억에 얽힌 그림이 '아삭사과쨈토스트'예요. 그림의 주인공은 전데, 제가 아주 많이 미화됐죠.(웃음)

또 하나 더 있어요. 초등학교 때 집에 이상하게 생긴 오븐기가 있었어요. 엄마가 빵틀에다가 빵을 구워서 줬었는데 별다른 재료 없이 그냥 밀가루 사다 구운, 카스테라 같은 빵이거든요. 빵틀을 열었을 때 부풀어 올라서 예쁘게 구워지잖아요. 위쪽은 카라멜 라이징이라고 하나? 살짝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밑에는 약간 연하게…. 그게 아직도 제 기억엔 너무 맛있는 빵으로 남아있어요."

- 빵 얘기하니까 작가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빵 너무 좋아하나?(웃음)"

- 정서로 보면 프랜차이즈보다 동네빵집을 더 좋아할 것 같아요.
"프랜차이즈도 자주 가긴 하는데 그곳은 기계적인 느낌이 들어요. 딱 찍어 나온? 하지만 동네빵집은 뭔가 다른 것 같아요. 똑같은데 느낌이 달라요. 처음 시작은 빵 자체에 대한 따뜻함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그런 따뜻한 느낌을 내기에는 동네빵집만 한 게 없더라고요. 추억과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아서요. 연재 제목도 '어제의 빵'이라 제가 먹어봤던 빵을 주로 다뤄요. 그래야 이미지화가 되니까…."

인기가 가장 많은 '졸리운 우유식빵'
 인기가 가장 많은 '졸리운 우유식빵'
ⓒ 발라

관련사진보기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도 빵이 먹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감사한 게 이제 빵집 가면 제 그림이 생각난다는 거예요. 빵 위에 발라가 그린 캐릭터가 올라가 있을 것 같다고…. 반대로 미안한 경우도 있었어요. 다이어트 하는데 밤에 제 그림 보다가 빵 먹고 싶다고, 그럼 미안해지는 거죠. 약 올리는 거잖아요."

-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있나요?
"음식이 주는 행복이 있잖아요. 음식 자체는 다 좋아해요. 재료 하나하나의 색깔이 너무 예쁘고, 계란 노른자의 노란 색깔이라든가 청경채의 파란색, 그런 색감이 너무 좋아요. 그 재료가 소스랑 어우러지면 맛있는 음식이 되잖아요. 미식가는 아니어도 행복해요. 

최근에는 오븐을 사서 치아바타 위에 제가 좋아하는 햄과 치즈를 얹고, 바질 페스토를 살짝 발라요. 오븐에 구운 다음 꿀을 살짝 뿌리면 식사대용으로 아주 좋아요. 카페 가면 아메리카노랑 세트에 8000원인데 집에서 해먹으면 저렴하고 좋죠."

- 그림을 보면 되게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제 그림을 보신 분들이 위로가 된다는 말을 종종 하시는데 전 그 말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단순히 제 그림을 보고 많은 분들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그렸는데 위로를 받는다니까…. 그런 게 되게 감사하죠. 사람들이 따뜻하고 행복해지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 일러스트 작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뭐라고 조언해주면 좋을까요?
"당장은 열심히 크로키 하시고, 진짜 많이 그려야 하는 것 같아요. 다작이 답인 것 같아요. 손은 기억할 거예요. 작가들이 정말 상상 이상으로 많이 그리시거든요. 쌓여있는 스케치북만 해도 엄청나요. 예전에 학원 다닐 때도 한 달에 많게는 천 몇 장씩 그리는 분도 봤어요. 그만큼 그게 진짜 실력이 되는 거예요.

자신이 그림 그리고 싶단 마음이 있다면 언젠가는 하게 될 거고 길을 스스로 찾게 되는 때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은 꿈을 꾸되 시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거…. 하나라도 안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그리고 부딪히는 게 필요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snsmedia.wix.com/snsmedia)> 7월호에 먼저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작가, #발라, #그라폴리오, #어제의빵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