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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앞서까지 우리 집은 소금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굵은소금을 입에 물고 살살 녹인 뒤에 천천히 잇솔질을 했어요. 굵은소금을 쓰기 앞서는 숯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요즈음은 숯도 굵은소금도 아닌 이엠(EM) 발효액을 입에 머금은 뒤에 잇솔질을 해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를 닦은 까닭은 이도 이입니다만,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사는 우리 집 살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서 쓰는 모든 물은 땅밑을 거쳐서 도랑을 지나 바다로 곧바로 스며들거든요. 조그마한 우리 집이지만 우리 집에서 어떤 물을 쓰고 버리느냐에 따라서 우리 집 밭자락도 달라지지만, 우리 마을도 우리 바다도 달라져요. 깨끗한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집에서는 세제 한 방울도 계면활성제 거품 하나도 흙이나 바다로 스며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별아, 돌아가신 할머니가 부뚜막에 늘 소금 독을 모셔 두었던 것, 기억하니? 소금 독을 거기 둔 건 음식 간을 할 때 편하게 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물 한 그릇과 함께 소금도 하얀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조왕신에게 올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어.' (9쪽)

겉그림
 겉그림
ⓒ 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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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님이 글을 쓰고 이장미 님이 그림을 넣은 <어떤 소금을 먹을까?>(웃는돌고래, 2014)라는 책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이 책은 '섬 박사'인 김준 님이 이녁 막내딸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글쓴이 김준 님은 이녁 막내딸이 바다하고 살가이 사귀기를 바라면서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어떤 소금을 먹을까?>는 여러 가지 바다 이야기 가운데 '바다에서 얻는 소금'을 다룹니다.

'천일염이 식품으로 인정받으면서 소금밭의 결정지도 장판이 아니라 식품 안전에 문제가 없는 좋은 바닥재로 바뀌고 있어. 반가운 일이야.' (23쪽)

'수원에서 인천까지 놓인 기찻길이라고 해서 첫 글자를 따 '수인선'이라고 한 건데, 일본이 우리나라의 소금과 쌀을 인천항을 통해 실어 가기 쉬우라고 놓은 철도였거든. 그 사이에 소래 염전, 남동 염전, 군자 염전 등 큰 염전이 모여 있었지.' (59쪽)

우리가 먹는 소금은 여러 가지입니다. 아마 맨 먼저 느낄 수 있는 소금은 '몸에서 나는 땀'이지 싶어요.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놀면서 흘리는 땀이나 어른들이 힘껏 일하면서 흘리는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다가 볼을 거쳐서 입술에 닿으면 짭조름한 맛이 나요. 땀은 '몸에서 나는 소금'이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이라든지 힘껏 일한 어른들이 입은 옷을 보면 등판에 하얗게 '소금꽃(땀꽃)'이 핀다고도 할 만해요.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를 달릴 적마다 옷이 온통 하얀 꽃이 피곤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바다에서 나는 소금을 먹지요. 바다가 먼 고장에서는 바위로 된 소금을 먹어요. 바다에서 나는 소금은 '바닷소금'입니다. 바위로 된 소금은 '바위소금'이에요. 우리가 널리 먹는 바닷소금은 '볕소금'이라고도 해요. 햇볕으로 얻는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바닷물을 말려서 얻으니 '바닷소금·볕소금' 같은 이름이 잘 어울려요. 그리고 요새는 이 두 가지 이름 말고도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하늘소금'이에요. 하늘이 내린 선물 같은 소금이라는 뜻까지 담아서 '하늘소금'이라고도 합니다.

'메주는 봄이 되면 장으로 변신했어. 항아리에 물을 붓고 소금을 듬뿍 넣은 뒤 메주를 담가 놔. 그 위에 숯과 솔잎, 붉은 고추를 올려놓고 장독에는 새끼줄을 감아... 그렇게 한 달 반 정도 두면 까만 물이 생겨. 콩과 소금이 만나 만들어 낸 물이야. 그 물을 달이면 간장이 되고, 남아 있던 메주를 건져서 된장을 만들었지.' (126쪽)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금을 먹기에 '바닷소금'입니다. 해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금을 먹으니 '볕소금'이에요. 또는 '해소금'이라 할 수 있어요. 하늘이 사람을 어여삐 여기는 숨결을 사랑하자면서 먹을 적에 '하늘소금'이에요. 가만히 보면 모두 같은 소금이지만, 소금을 마주하는 마음결마다 애틋하면서 포근한 이름이 태어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소금으로 간장도 된장도 고추장도 얻습니다. 이 소금으로 온갖 김치를 절입니다. 이 소금으로 물고기를 오래도록 재웁니다. 이 소금으로 나물맛을 더욱 깊게 냅니다. 이 소금으로 국도 맛나게 끓이지요. 이 소금이 있어서 더위도 씩씩하게 이길 만해요.

우리는 어떤 소금을 먹을까요? 그냥 가게에서 사다 먹는 소금일까요? 아니면, 가게에서 사다 먹더라도 바다와 해님과 하늘이 고루 어루만지는 따사로운 숨결이 깃든 소금일까요? 어떤 영양소로만 먹는 소금이 아니라, 이 땅과 바다를 넉넉히 아끼고 보살피는 숨결을 즐겁게 받아들여서 먹는 소금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미역국을 끓이면서 소금하고 간장을 알맞게 섞어서 간을 맞춥니다. 옥수수랑 감자를 찐 뒤에 밥상에 '하늘소금'을 한 종지 함께 올립니다. 이 소금을 즐겁게 누리면서 하루를 기쁘게 가꿉니다.

덧붙이는 글 | <어떤 소금을 먹을까?>(김준 글 / 이장미 그림 / 웃는돌고래 펴냄 / 2014.1.9. / 14000원)



어떤 소금을 먹을까? - 아빠와 함께 떠나는 소금 여행

김준 지음, 이장미 그림, 웃는돌고래(2014)


태그:#어떤 소금을 먹을까?, #김준, #이장미, #어린이책,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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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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