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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렵다. 분량도 방대한데 용어마저 낯설다. 법조문은커녕 판결문 읽을 엄두도 쉬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렵다고 마냥 나와 상관없는 얘기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이게 문제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법은 늘 우리 일상 깊숙이 관여한다.

시민의 합의가 보태져야 정의로운 법이 완성된다. '몇 조 몇 항이 뭐고, 무슨 죄는 징역이 몇 년이고' 이런 단편적 지식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런 건 법전에 다 나와 있다. 찾아 읽으면 된다. 중요한 건 법의 본질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이 더러운 세상"이라 욕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관심과 요구가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가 복잡하고 빠른 요즘이라면 더욱 그렇다. <법의 지도>(헤이북스 펴냄)를 읽은 첫 느낌은, 그런 시민의 권리를 돕기에 충실히 쓰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은 당연히 올바른 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법이 잘못 해석되고, 잘못 집행되고 있다면 제대로 된 해석과 집행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법을 이해하여야 한다. 법을 경외시할 필요는 없다. 법을 만드는 사람과 해석하는 사람 그리고 집행하는 사람이 모두 정의롭고 훌륭할 것 같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 <법의 지도> 프롤로그


책은 꽤 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법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거기에 이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을 얹었다. 주제도 다양하다. 비교적 최근의 쟁점인 '잊혀질 권리'까지  다룬다. 강한 주장보다는 여백을 두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기를 권했다. 

그 여백을 조금이라도 더 채워보고 싶었다. 책을 쓴 최승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책에 강한 주장 담지 않은 이유, 시민의 판단 믿었다"

<법의 지도> 쓴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최승필 교수.
 <법의 지도> 쓴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최승필 교수.
ⓒ 최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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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를 통해 적으셨지만, 책을 쓰신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시지요?
"시민을 향한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이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법은 매우 어려운 분야로만 인식되어 있고, 법의 본질과 모습을 이해하기 쉬운 책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단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은 나와는 먼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녁에 자리에 들 때까지 부지불식간 모두 법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루의 일상에서 수많은 권리와 의무가 반복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정당한 권리주장이나, 시민을 향한 법을 만들기 어렵겠죠. 이 책의 목적은 시민들이 보다 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법학자로서는 이력이 독특하십니다. 한국은행에 계시다가 학교로 오셨는데요. 실무에서 바라본 법과 연구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법의 차이가 있다면요?
"실무에서 바라보는 법과 연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법의 차이는 '책임'입니다. 실무에서는 법을 적용해서 답을 이끌어낸다면 그 답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연구는 연구윤리와 학자적 양심의 문제이지 학설상 주장한 것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보다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죠. 반면 실무에서는 매우 작은 범위에서만 법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연구의 대상으로서의 법은 보다 큰 범위에서 타법과의 관계들도 살펴가면서 법을 보게 되죠.

그런데 실무에서도 법을 다루는 것을 일로 하는 법률가들과 법의 적용을 받거나 법을 적용해서 행정을 해야 하는 입장과는 사뭇 다릅니다. 판사‧검사‧변호사와 같은 법률가들은 법을 다루는 것이 자신의 이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객관적인 일이죠. 그래서 법이 주는 힘과 영향에 비교적 둔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적용받는 경우라든가 법을 적용해서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법의 규정과 해석의 변화는 상당히 크게 다가옵니다. 따라서 법을 만들고 해석하는 일을 할 때는 그 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야 합니다."

- 책이 상당히 중립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상충하는 쟁점에 대해 양쪽 입장을 충실히 설명하고 독자에게 판단을 미루는 느낌입니다. 주장이 있더라도 강하지 않고 권유를 하는 뉘앙스고요. 책 집필 의도도 그러하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시민들의 교육 수준은 세계적 최고 수준입니다. 시민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야 어느 한쪽의 입장이 옳다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을 굳이 강조하거나 주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도 얼마든지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실 어느 것이 옳은 답이라고 쉽게 단정 짓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시민의 판단을 믿어 보는 것이고, 그래서 시민들 스스로가 자기 생각을 정리하면서 깨어나는 것이지요."

- 같은 맥락에서 "'대륙법'과 '영미법'의 균형적 시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글을 봤습니다. 흔히 일반인들은 '대륙법'은 좀 더 학문적이고 '영미법'은 상대적으로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영미법은 사안의 축적을 통해 형성되어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보다 쉬운 반면에 산만한 면이 있습니다. 반대로 대륙법은 이론적 체계로 형성되어 있어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명확하고 정연한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 법계 모두 사람의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통제하고 사회공동체를 유지해 나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미법이나 대륙법 모두 그 시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내용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고 비슷한 동기와 욕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금융‧공정거래‧환경‧보건 등 분야에서는 국제기구가 국제적 합의를 통해 규범을 정립하고 그 규범이 각 회원국의 국내법으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해 지면서 영미법계나 대륙법계냐를 나누는 실익은 더욱 없어지고 있습니다."

- 책을 보면 '대륙법 vs. 영미법'에 대한 질문에 "답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힘이 결정한다"고 하셨는데요.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시겠어요?
"대륙법이 좋은가, 영미법이 좋은가의 문제는 사실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어느 나라의 법이 쓰이는가의 문제는 그 분야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국법이 세계 무역의 준거법이었을 때는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영국과 무역을 하고 싶어 했고, 계약할 때 주도권을 쥐고 있는 영국법으로 계약하게 된 것이죠. 뉴욕주의 법이 국제적인 금융거래의 준거법이 되는 이유는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영국법이 준거법이 되기도 합니다. 아직도 영국의 런던의 뱅크지역은 뉴욕과 쌍벽을 이루는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국제기구에서 새로운 국제규범이 나오는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주요국가의 영향력이 많이 발휘됩니다. 그러다 보면 주요 국가의 법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로 확장되겠죠. 평평한 땅, 둥그런 원탁을 떠올리게 되는 국제적인 합의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힘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전관예우 문제 해결 없이 사법 신뢰 높아지지 않을 것"

세상의 질서를 찾아가는 합의의 발견 (최승필 지음 / 헤이북스 펴냄 / 2016.05 / 1만 7900원)
▲ 겉표지 세상의 질서를 찾아가는 합의의 발견 (최승필 지음 / 헤이북스 펴냄 / 2016.05 / 1만 7900원)
ⓒ 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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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법이 대륙법과 일본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결국 '한국법'은 어느 쪽으로 발전해 나가는 방향이 옳다고 보시는지요?
"우리 법은 대륙법계의 바탕 하에 분야에 따라 영미법계의 법이 도입된 형태입니다. 경제개발의 과정에서도 꾸준히 영미의 상거래법과 투자법 등이 도입됐으나, 본격적인 도입은 1998년 외환위기 때입니다. 외자의 도입이 절실했던 시기에 미국과 영국의 금융시장을 통해 투자자금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법률문화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법을 많이 따랐지만 정보통신‧금융 등 영역에 따라 우리의 법은 다른 나라의 법들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법률 수준이 높아진 것이죠. 이제는 외국의 법을 그대로 차용해 오는 것이 아니라 참고로 보고 우리의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그 원인을 찬찬히 규명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것 대신에 관련된 외국법을 쉽게 가져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이 빠진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참고의 대상으로 또는 좋은 모델로 외국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 스스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다수가 만족하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논의하여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그 과정에서, '프롤로그'에 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은 당연히 올바른 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물론 국민참여재판 등 과거보다 진보적인 장치가 마련됐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현재 법해석은 법관의 전유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치가 더 마련돼야 할까요?
"올바른 법은 좋은 입법과 좋은 법의 집행으로 나뉩니다. 먼저 입법의 과정에서 더욱 활발하게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이 참여할 기회를 더 열어두는 것이지요. 우리의 전자정부 인프라는 부동의 세계 1위입니다. 이러한 인프라를 더욱 많이 활용해야겠지요.

법을 만드는 과정을 보다 상세하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는데 법안을 만드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매우 좋은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발의를 한 이유가 그다지 충분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법률이 통과되면 어떤 영향이 있는지, 주요 조문의 내용을 그렇게 한 취지가 무엇인지,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공동발의한 의원들이 표결당일 날 와서 표를 던졌는지도 함께 보고 싶습니다.

좋은 법의 집행도 매우 중요합니다. 법의 해석과 적용은 최종적으로 법관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해석과 적용에 편향적 사고나 전관예우 같은 것들이 개입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의 구성을 다양화 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전관예우야 개선되어야 할 과제임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요.

법의 집행에서 중요한 것 또 한 가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일입니다. 송사에 휘말린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시간에 쫓겨 적용되는 형식적 법 논리 말고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더 많이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더 많이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사기관에서의 고압적이거나 강압적인 태도도 지양되어야 할 부분이지요."

- 이건 책 내용은 아니지만, 비슷한 취지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얼마 전 교육부 발표 결과에 따르면 로스쿨 입시에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여론도 부정적이고요. 로스쿨협의회에서 보완사항을 마련했지만 국민의 성에는 차지 않아 보입니다. 로스쿨에서 예비 법률가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일부 로스쿨에서 불신을 야기할 만한 행동을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현재 로스쿨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입시 제도를 개선하는 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로 많은 로스쿨들이 대체로 투명하고 공정한 입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소한 것일지라도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면 반드시 개선되어야겠지요. 이러한 점에서 모든 로스쿨들이 입시 제도를 재점검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입시는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취업률에 연결됩니다. 그리고 변호사 시험 합격률과 취업률은 로스쿨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순위까지 매겨서 표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입시에서 무리한 일들이 있었던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법조문화가 형성되고 시민을 향하는 법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로스쿨 평가의 지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로스쿨에 들어왔는지, 처음 약속한 대로 각 로스쿨의 특성화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취업률이 있었던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졸업생들이 대형 로펌에 들어갔는지를 나타내는 자리에 그 학교 졸업생들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지가 순위로 매겨져서 나왔으면 합니다."

- 책은 상당히 넓은 부분을 다룹니다. '고대 로마'부터 최근 쟁점인 '온실가스'와 '드론'까지요.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책에서 썼듯이 저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배운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뒤에 참고문헌을 보시면 거의 모든 주제들이 제 논문과 책들입니다.  제가 지난 10여 년간 쓴 약 80여 편의 논문과 책, 기고문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쉽게 쓰되 깊이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공법이라는 학문적 틀을 가지고 다양한 사안을 연구했습니다. 고대 로마와 게르만 그리고 중·근세 서양의 역사는 법학계 원로에 해당하시는 분들이 저술한 좋은 문헌들이 있어 이를 주로 참고였습니다. 그리고 전에 독일에서 박사과정 공부할 때 함께 공부했던 법제사 과목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에 1년간 방문학자로 있었는데 그때 듣고, 배우고, 가르치고, 연구했던 모든 것들도 여기에 녹아 있습니다."

-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듯 보입니다. 맞는지요?
"네. 맞습니다.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특히 법학은 실천적 학문이죠. 순수학문에 천착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학문적 성과를 사회현상과 결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수학문과 사회참여 모두 다 가치 있는 것들이죠. 특히 저는 국비유학 등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아 보다 많이 공부할 수 있었고, 이제는 그 지식을 사회로 돌려주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전관변호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전관변호사 문제는 우리 법조계가 해결해야 할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전관이 사건의 해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라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이 경우라면 전관예우라는 단어도 써서는 안 됩니다. 작은 예우라면 함께 근무했던 선후배 사이에 인지상정의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우가 예우를 넘어 수사와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불법입니다. 예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죠. 그래서 전관예우라는 말 자체의 사용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예우라는 말이 주는 긍정적 이미지 때문에 불법이라는 의식이 잘 들지 않는 것이지요. 전관예우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역시 높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관예우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 틈새를 파고드는 법조브로커의 문제도 큰 문제입니다. 브로커들은 직접 전관을 포함한 변호사들을 고용해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실제 오너는 브로커입니다. 변호사법 위반이죠. 변협차원에서의 대응활동이 더욱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브로커에 대해서 변호사만이 신고할 수 있는데, 브로커로부터 피해를 입은 시민들도 직접 변협에 신고하고 조사를 촉구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브로커들로부터 속아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패소한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시민이 올바른 법 만들 수 있어"

- 책을 보면, 공정함을 논하는 부분에서 "사건과 더욱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사건이 폭주해서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면 검사와 경찰관을 더 뽑아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법원도 판사를 뽑아서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럼 이 해결책이 현재 시행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앞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가장 큰 것이 재원이죠. 그 다음이 조직의 운영이죠. 일단 재정이 충분하다면 인원보강이 쉽겠죠. 그렇다보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당사자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늘어나겠죠. 국가 재원배분에서 사법정의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배분할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비 부족도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시민들과의 접점에 우선하여 인원이 배치될 필요가 있습니다.

힘 있는 자리보다는 시민들과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승진과 이동이 배려돼야겠죠. 검찰 활동을 영어로 'prosecution service'라고 합니다. 억울한 사람에게 억울함을 풀어주고 진실을 밝혀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원에서도 1심 법원에 대한 보강이 필요합니다. 고참 법관들이 1심 법원에서부터 사건에 대해서 보다 많이 숙고해야 합니다. 1심 법원에서의 판결은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1심 법원의 기능 확충이 중요합니다. 그냥 기계적인 판단과 형량의 결정이라면 판사가 아닌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훨씬 신속하게 결론을 내겠죠. 하지만 법률사건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이해의 충돌, 감정의 파동 등 모든 것들이 복합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건에 넓은 접점을 둔 숙고가 필요합니다."

- 공권력에 대해 쓰신 글 중 "우리나라 경찰 수가 양호하지만 인력이 적절하게 배치되고 활용되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다, 경찰 신뢰도가 OECD 국가 중 밑에서 두 번째"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책에 자세히 기술하셨는데요. 앞서 말씀하신 것(검사와 경찰관을 더 뽑아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처럼 경찰관 수를 늘리면 공권력이 팽창할 수도 있습니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시민의 자유를 더욱 억압하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겠단 우려가 듭니다. 이런 상충하는 점이 있는데 해결 방안이 있을까요?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공권력 남용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가 늘어나도 제대로 작동하는 감시체계와 제도적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권력의 남용은 통제될 수 있습니다. 수가 늘어난다면 증가에 상응하는 통제장치가 작동해야 합니다. 민주적 원리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권한은 반드시 책임과 의무를 수반합니다.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은 권한에 반드시 비례해야 합니다. 권한과 민주적 정당성 간 균형이 깨지면 그때 남용과 억압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균형은 법률이 잡아주어야 합니다. 결국 국회의 역할이 큽니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는 국회 본연의 임무이기도 하고요."  

- 요즘 강력범죄가 발생했단 보도기사의 댓글을 보면 하나같이 '엄벌'을 주문하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심지어 '법이 물러서 그렇다'거나 '사형집행'까지 언급하는데요. 책에서도 벌금과 과징금에 대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런 '형벌 강화 요구'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지요?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범죄 피해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에 상응하지 못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형집행의 부분에서는 사회적으로 견해가 크게 갈리고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범죄 이외에 사소한 부분까지도 모두 '형벌화'시키는 것 역시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위 '전과자'를 양산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일상에서의 사소한 의무위반에 대해서는 금전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를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신호 위반도 도로교통법 위반이지만 이를 형벌로 하지 않고 범칙금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서 비교적 가볍게(비범죄화) 처리하는 이유입니다. 사소한 침해의 경우 '비범죄화' 하고, 피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 책에서 꼭 이 부분만큼은 많은 이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정의를 다룬 부분입니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부정의인지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형식적 법치주의(의회나 정부가 필요한 정책이 있으면 정치적 의사 결정 보다는 법의 형식만을 빌려 규범력을 채우려는 행위-기자말)'도 만연해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법이 곧 정의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정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인기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이 글을 읽어주셨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도 올랐습니다. 아무래도 법에 대한 관심과 정의에 대한 갈증 그리고 급격한 기술에 발전에 따른 사회의 변화 등이 그 배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속가능한가. 경제는 어려워지고, 사회는 양극화되고, 개인의 분노 수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법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법률가들도 소송 중심의 사고에서 사회 전체의 규칙과 틀을 정한다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법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올바른 시민이 올바른 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에 대한 교육이네요. 근본적으로 경쟁보다는 공존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법의 지도

최승필 지음, 헤이북스(2016)


태그:#법의 지도, #최승필, #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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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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