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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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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설치됐던 '일간베스트저장소(아래 일베)' 상징 조형물이 밤사이 파손되면서 '표현의 자유'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파손된 조각상 위에는 "너에겐 예술과 표현이 우리에겐 폭력임을 알기를,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님을, 모든 자유와 권리엔, 다른 권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나붙었다.

반면, 작가 홍기하씨는 1일 "작품을 훼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같은 날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일베보다 더 무서운 게 이런 짓 하는 놈들"이라며 "대의를 위해서 남의 표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짓밟아도 된다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일갈했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이 조형물은 '랩퍼 성큰(22)'이 훼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새벽 홍익대 학내 익명 커뮤니티인 <홍익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직접 조형물을 파손했다고 밝힌 익명의 학생은 당시 현장에서 저지당해 조형물의 기단 부분만 일부 훼손했고 이후 '랩퍼 성큰'씨가 조형물을 최종적으로 파손시킨 것이다. 그는 이날 새벽 파손 직후 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은 후 훈방조치된 상태다. 그는 파손 직전 조형물 아래에 "'랩퍼 성큰'이 부쉈다"는 글도 남겼다.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작품 의도에 대한) 정확한 설명 없이 일베 상징물을 홍익대 정문에 설치해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줬다"며 "표현의 자유라면서 6월 한 달 동안 그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해 그 무책임함을 질타하기 위해 파손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작품의 모양을 임의로 바꿔서 대중들이 쉽게 작품의 진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었다"라면서 "너무나 멀쩡하고 깨끗한 작품을 부숴서 '일베 회원들은 가상에선 멋있고 센 척하는 사람들이지만 현실에선 부서지고 망가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작품을 바꿔보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뜻을 글로 적어 작가에게 건넸다고도 밝혔다. 또 "작품을 훼손한 행위가 잘못된 것은 맞다, (작품을 훼손하는)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바꿔보는 게 어떤가 제안했으면 되는 것인데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를 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홍익대 측에서 전혀 철거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 이렇게 누군가 부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있나 싶었다"면서 "제가 이 범죄행위로 피해를 받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일베 조형상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나쁜데 사람들이 그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홍대 거리 가운데 김정은 동상을 다짜고짜 세워놓고 '김정은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해 세웠다'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래퍼로서 '랩'으로 이 작품을 비판할 수도 있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는 "랩도 랩이지만 직접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라면서 "싫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무조건 참거나 모르는 척 말고 직접 나서보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랩퍼 성큰'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 범죄행위로 피해 받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생각했다"

일베 조각상 훼손 현장에 검은색 글씨로 '랩퍼 성큰이 부셨다'라고 적혀있다.
 일베 조각상 훼손 현장에 검은색 글씨로 '랩퍼 성큰이 부셨다'라고 적혀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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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 일베 조각상 훼손 현장에 "'랩퍼 성큰'이 부셨다"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본인이 훼손한 것이 맞나?
"부수기 전에 제가 적은 것이다. 새벽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경찰서 가서 조서 쓰고 훈방 조치된 상태다."

- 혼자서 작품을 훼손한 것인가? 학내 익명 커뮤니티인 <홍익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보면 "조형물 파괴하던 사진 본인입니다"란 글이 올라가 있던데, 이 사람이 도움을 준 것인가.
"아니다. 제가 (작품을) 부수기 전에 누군가 쓴 글이다. 나도 인터넷을 통해 그분들이 그 같은 시도를 한 것을 알게 됐다. 그분들이 비난 받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욕을 먹더라도 내가 나서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와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다. 그 분들도 (작품 훼손 전) 저지당해서 경찰서 간 것으로 안다. 제가 갔을 땐 (작품의) 뿌리 부분이 약간 꺾여 있었지만 그 외 훼손된 부분은 없었다."

- 작품을 훼손한 까닭이 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베 조각상이 철거되는 걸 원치 않았다. 작가님이 원하는 건 우리 주변의 숨은 일베 회원들을 인식하자는 뜻이었다. 그걸 이해하고 존경하지만, 정확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일베 상징물을 홍익대 정문에 설치해 많은 사람에게 혐오감을 줬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해서 인터넷에 작가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았다. 홍익대에도 큰 이미지 피해를 입혔다. 일베를 옹호한다는.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면서 6월 한 달 동안 그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이 무책임함을 질타하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제가 작품의 모양을 임의로 바꿔서 대중들이 쉽게 작품의 진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작품의 모양을, 지금은 너무나 멀쩡하고 깨끗한 작품이었는데 그것을 부숴서 일베 회원들은 가상에선 멋있고 센 척하는 사람들이지만 현실에선 부서지고 망가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작품을 바꿔보고 싶었다. 작가분에게도 이런 뜻으로 부순 것이라고 글을 써서 (경찰서에서) 전달했다."

- 작가는 이날 오전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도 일베가 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 "작품을 훼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작가가 오해받을 짓을 한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표현할 것이라면, 예를 들어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나쁜데 사람들이 그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홍익대 거리 가운데에 김정은 동상을 다짜고짜 세운다.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해 세웠다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게 남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작품을 만들 때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일베 상징하는) 굉장히 무책임하고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제가 이 범죄행위로 피해를 받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작품 훼손 잘못된 일이지만 그분이 표현을 잘못한 것"

지난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설치된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상징물 조각상. 현재는 훼손됐다.
 지난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설치된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상징물 조각상. 현재는 훼손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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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작가의 '표현의 자유' 역시 존중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진 않았나.
"작품을 훼손한 행위가 잘못된 건 맞다. 그분의 사유재산이고, 그분이 나름의 뜻을 갖고 만든 것인데 그걸 마음대로 훼손하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그분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바꿔보는 게 어떤가 (작가에게) 제안을 했으면 되는 것인데 제가 (작품을 훼손한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분이 엄연히 오해받을 짓을 했고, 게다가 학생회나 홍익대 측이랑도 얘기했는데 전혀 철거할 생각 없다고 하니, 이렇게 누군가 부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있나 싶었다. 다짜고짜 전시하게 놓아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 래퍼로서 '랩'으로 이 작품을 비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방법은 생각하지 않았나?
"랩도 랩이지만 이번 일은 직접 뭔가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베를 비판하는 글은 인터넷에도 정말 많다. 일베가 사회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일베를 싫어하는 이들도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가 이를 통해 알리고 싶은 건, 싫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무조건 참거나 모르는 척 말고 직접 나서보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이다."

- 비판이 예상된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이날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에 '일베 옹호'라는 딱지를 붙이는 해석적 폭력에 물리력을 동원한 실력행사까지, 어떤 대의를 위해서 남의 표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짓밟아도 된다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평했는데, 동의하나?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 왜냐하면 허락을 받지 않고 작품을 부순 것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밖에 생각이 안 든다."

-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공공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는 것도 표현의 자유인가. 엄연히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표현을 잘못한 것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 경찰서에서 작가를 만나선 사과했나?
"특별히 대화를 나누진 않았고 아까 말했듯 이런 이유를 적은 글을 전해드렸다. 읽어보시고 뭔가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일베와 다름없다'라고 평한 건 좀 실망스럽다."

- 현재 홍익대 재학생인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 비판도 있더라. 왜 홍익대 학생이 아닌데 괜히 나서느냐는. 그런데 홍대(앞 지역)은 홍익대 재학생만 오가는 곳이 아니지 않나. 인터넷에서 (작품을) 비판한 사람들 모두가 홍익대 학생인 건 아니지 않나. (작품이 설치된) 홍익대 정문 앞은 유동인구가 워낙 많은 지역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작품을 설치해놨는데 이 문제가 홍익대만의 문제인가 생각이 든다."



태그:#일베 상징 조형상, #홍익대, #표현의 자유, #랩퍼 성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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