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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맞는 표현일까, 아닐까.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맞는 표현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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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니 우리 강아지가 풀을 뜯어 먹네요!"

잔디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사는 50대 주부 C씨는 최근 애완견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난생 처음 목격했다. 그는 8년 전 시골집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개를 여러 마리 키워왔다. 하지만 모두 마당 한 켠에 묶어서 기르는 덩치가 큰 개들이었다. 그러다가 달포 전 지인으로부터 어른 주먹 2개 크기의 소형 애완견을 얻어 집 안에서 길러왔는데, 최근 날씨가 따뜻해져 마당에 풀어놓자 잔디를 씹어 먹는 것이었다.

"개는 육식을 훨씬 선호하지 않나요? 밥을 줘도 먹긴 하지만 고기를 줄 때 꼬리를 더 신나게 흔드는 걸 보면 육식성에 가까운 거 같던데."

강아지가 생풀을 먹는다는 자체가 C씨에게는 작은 놀라움이고 신기함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개들을 오랫동안 길러 본 사람들이라면 개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한두 번쯤 구경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개가 풀은 물론이고 꽃을 따서 씹는 등의 행동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속된 말 가운데 '개 풀 뜯는 소리'라는 표현이 있다. 가당치 않거나 논리가 서지 않는 주장 등을 폄하할 때 쓰는 말이다. 헌데 '정상'인 개도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표현 자체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개의 초식, 그 것도 살아 있는 풀이나 꽃 같은 걸 먹는 생식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갈리지만, 정상이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주는 대략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기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이나 일부 동물 가운데는 먹어서는 안 되는 혹은 평소 전혀 먹지 않는 것들을 입에 넣어 삼키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종이나 크레파스를 씹어 삼키는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이를 '이식증'(Pica)이라 하는데, 당연히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개가 풀을 뜯어 삼키는 건 이식증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보는 수의사나 가축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이다.

개의 이식증에 대한 대규모 조사연구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 혹은 개를 오래 키워본 사람들의 경험 등을 토대로 추정하면 개가 풀 뜯는 행동은 정상일 수 있다. 수의사 등에 따르면, 개가 풀을 뜯는 이유로는 대략 3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운동이 부족하거나 주인이 놀아주는 시간이 적은 등의 상황, 즉 심심할 때 야외에 풀어 놓으면 풀을 뜯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섬유질 무기질이 부족한 사료 등을 주로 먹었을 때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려 풀을 입에 갖다 댈 수도 있다. 또 하나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었다든지 기생충이 있을 경우 구토를 유발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풀을 뜯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풀을 뜯어 먹은 뒤 별다른 이상 행동 등이 관찰되지 않는다면, 동물병원 등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풀을 뜯어 삼킨 뒤 토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다른 질환이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큰 문제가 없다면 애완견을 야외에 풀어 놓았을 때 풀을 뜯는 걸 구태여 말릴 필요는 없다. 다만 제초제 성분 등이 잔류돼 있을 수 있는 풀을 뜯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가 풀을 뜯는 건 최소한 개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당찮은 일은 아니므로 놀라거나 터무니 없다는 식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태그:#개, #풀, #이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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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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