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살인 남성이 저지른 범죄가 여성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된 '혐오범죄'냐, 아니면 '묻지 마 범죄'냐를 두고서다. 전문가 간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이 같은 논쟁은 다소 수준 이하의 것이라 생각된다.

여성에 대한 혐오에서 시작된 범죄든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한 범죄든 죄 없는 여성이 피해자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가해자는 범죄대상이 '여성'이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사건을 규정하자면 '여성에 대한 묻지마 범죄'랄까.

어쨌든 굳이 이 한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강력범죄 사건을 돌아보면 여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피해자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현재 여성이라는 그 태생적 이유만으로 각종 차별과 위협, 공포에 시달리는 삶을 감내해야만 한다. 피해자가 살해되던 시각인 새벽 1시 "나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는 여성 네티즌의 목소리가 울림이 있는 것도 여성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적어도 여성들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혐오는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얼마 전 비오는 날 더듬거리는 목소리의 한 남성에게서 우산을 같이 좀 쓰자는 말을 들은 후 호신용 스프레이를 들고 다닌다는 한 네티즌의 증언은 이 공포와 위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남자라서 차마 그 공포의 강도를 체감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그 여성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상황이 남성으로서는 감히 체감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한 것이다.

통계를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강력범죄의 가해자는 98%가 남성이며, 피해자는 84%가 여성이다. 이러한 상황을 돌이켜보면 여성들이 '남성포비아'를 앓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며, 밤늦은 시각 마주치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만은 아니다.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봐선 안돼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뒤 일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의 남성우월주의, 젠더 차별적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너희는 안전해,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일 뿐이야"라며 여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남성이기에 여성에게 실재하는 차별과 위험을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은 없다. 다분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나마 좀 더 나은 남성들은 "그래, 세상이 위험하니 일찍 다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해"라거나 "내가 지켜주는데 뭐가 걱정이야"라고 말하지만, 이조차도 차별적이다. 남성들은 누리는 자유를 여성들은 왜 박탈당해야 하는가. 왜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옷 매무새를 단정하게 해야 하며, 왜 여성은 누군가 지켜주지 않으면 밤늦은 거리를 공포에 떨며 걸어야 할까. 바로 이 지점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고, 이 차별에 충실히 복무하지 않을 때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혐오 대상이 되거나 공격 대상이 되는 일, 차별받는 일, 강자인 남성의 입장에서는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에겐 그러한 경험이 없다. 행여 자신은 이해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건 착각이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해와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남성들은  또 다시 자신의 시각으로 '여성혐오'에 대해 규정하기보단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조적 문제 해결의 계기 되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전 같으면 가십거리로 지나갔을 사건이,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제기가 일각에서는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여성차별, 여성혐오를 인식하고 이를 바꾸어 가기 위한 논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태그:#강남역살인사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