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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중부의 쳉헤르(Tsenkher) 온천까지 가는 길은 오프로드 스포츠의 정석과 같은 길이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경사 30도의 비탈길도 액셀을 밟고 넘어가 버린다. 차 안에 있는 나의 몸은 자연스럽게 움츠러들고 안전벨트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나의 친구, 몽골 기사는 경사진 구릉지를 넘나드는 운전을 너무 심하게 즐기고 있다. 나는 쳉헤르까지 가는 이 비포장 도로 25km를 달리면서 두 번 비명을 질렀다. 한 번은 길이 너무 험해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오는 비명이었고, 한 번은 고개를 넘은 뒤 펼쳐지는 장대한 숲을 만나면서 나오는 비명이었다.

몽골에서 여행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몽골 여행길은 가는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차가 큰 고개를 넘은 후 그 아래로 펼쳐지는 침엽수림의 아름다운 풍경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공기도 너무 상쾌하여 우리는 창문을 열고 숲 사이를 달렸다. 몽골이 아니라 스위스의 중산간 지대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곳이다.

길을 점거한 양들의 무리가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 쳉헤르 가는 길. 길을 점거한 양들의 무리가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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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친구는 이정표도 없는 길을 잘도 찾아간다. 차는 구릉지 위에서 앞서 간 자동차의 두 바퀴 흔적만을 따라 달릴 뿐이다. 낮은 산 아래로 게르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양과 염소 무리도 점점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는 앞길에도 양의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다. 길 위에서 엄마 양의 젖을 태연히 먹고 있는 새끼 양도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길 위에 양들이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쉬고 있는 초원에 사람들의 차가 들어선 것이다. 몽골의 기사들은 웬만해서는 양들에게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다. 차가 천천히 양들에게로 접근하자 양들은 하나 둘씩 일어서서 자리를 옮겼다. 세상 귀찮아 하는 양들의 표정이 나와 아내를 웃음짓게 한다.

쳉헤르에는 숲 속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여러 개의 게르 캠프가 있다.
▲ 쳉헤르 온천 캠프. 쳉헤르에는 숲 속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여러 개의 게르 캠프가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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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지에 들어서자 게르 여러 채가 촌락같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이 게르들은 바로 쳉헤르 온천지대에 모여 있는 여러 개의 온천 캠프로서, 게르로 만들어진 숙박시설들이다.

하얀 게르들이 마치 열을 맞추듯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손으로 만든 전시모형같이 생겼다. 이곳에 몽골의 유명한 온천이 있고, 이 온천에서 숲을 배경 삼아 온천을 즐기기 위해 몽골인 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우리는 하르호린(Kharkhorin)에서 일찍 출발해서 해가 아직 높이 떠 있는 시간에 이 온천 캠프에 도착했다.

내가 묵을 캠프에는 게르 외에도 통나무 집도 있어서 먼저 둘러보았다. 내부가 목재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방이 게르보다 작고 게르 같이 몽골의 운치가 느껴지지는 않아서 우리는 게르에 짐을 풀었다.

오늘 오후는 미리 계획한 일정이 없어서 나는 아내와 함께 게르 캠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산 가까이에 붙어 자리를 잡은 게르 앞에는 캠프 본부로 사용되는 방과 식당이 있고 그 뒤편에 바로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나는 노천온천이 있었다.

게르 캠프 앞에도 말들이 뛰노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 온천 캠프의 게르들. 게르 캠프 앞에도 말들이 뛰노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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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식사를 먼저 했다. 이 캠프의 식당은 야채 샐러드가 맛있다고 하는데 이곳 샐러드에도 오이와 토마토가 많이 들어 있다. 함께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에도 오이와 토마토가 있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몽골인들이 야채를 먹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몽골에서 자란 양고기와 함께 몽골의 야채로 즐거운 식사를 했다.
▲ 양고기와 야채. 몽골에서 자란 양고기와 함께 몽골의 야채로 즐거운 식사를 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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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보면 야채는 오이 아니면 토마토야."
"몽골 사람들은 야채 중에서도 여름야채인 토마토와 오이를 가장 좋아해. 이 오이와 토마토는 한국의 NGO 단체들의 지원 아래 몽골에서 직접 재배되고 있는 야채들이야."

"몽골에서는 과거에 고기만 먹고 야채는 먹지 않았잖아?"
"맞아. 옛 몽골 사람들은 야채는 풀을 좋아하는 가축들이나 먹는 거라고 생각했어. 과거에 몽골에서는 고기와 유제품 외에 야채를 재배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지. 과거 몽골사람들은 아예 야채를 먹는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어. 최근까지도 풀을 먹고 자란 가축들을 먹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이야기야."

이곳은 몽골의 깊은 산속이지만 외국에서도 여행자가 찾아오는 곳이어서 인지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의 수준이 꽤 높다. 오늘 많이 걸은 것도 아니고 하루 내내 차를 타고 이동하였지만 저녁이 되자 꽤 시장하였다.

나와 아내는 몽골 초원에서 자란 양고기와 함께 몽골 야채로 만들어진 식사를 모두 깨끗이 비웠다. 집을 떠나 여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더욱 단순해지는 것 같다. 이곳에 있으니, 외국의 맛있는 음식에 감동하고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다는 것만도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수원지로 가는 긴 파이프 라인이 울창한 숲 속으로 이어진다.
▲ 온천 수원지 가는 길. 수원지로 가는 긴 파이프 라인이 울창한 숲 속으로 이어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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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온천 캠프에서 따뜻한 온천욕을 하기 전에 온천의 수원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영어가 능통한 온천의 매니저에게 물으니 산 밑에 있는 긴 파이프 라인을 주욱 따라가면 수증기가 올라오는 곳에서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을 거라고 했다.

온천 캠프 건물의 뒤편으로 가니 어른 팔뚝만한 굵기의 파이프 라인이 산 속 깊은 곳으로 마치 뱀같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그 산속은 울창한 전나무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작은 산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숲 속에서는 똑같이 생긴 작은 새 두 마리가 서로 지저귀며 화답하고 있었다. 한 마리가 나무 가지 위에서 지저귀자 똑같이 생긴 새 한 마리가 숲 속 길 울타리 위로 올라와서 귀를 쫑긋하며 그 노래를 듣는다. 우리나라의 박새 비슷하게 생긴 새인데 박새보다 더 날씬하고 참 말끔하게 생긴 새이다. 생긴 모습으로 봐서는 몽골에서 여름에 번식을 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내려가는 새인 것 같다.

작은 새 두 마리가 전나무 숲 속에서 서로를 부르며 지저귄다.
▲ 산속의 작은 새. 작은 새 두 마리가 전나무 숲 속에서 서로를 부르며 지저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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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망원 렌즈가 없어도 새들을 관찰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새들이 몽골의 숲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탄성을 자아낼 만한 예쁜 소리를 내는 새이지만 몽골 친구도 이 새의 이름을 모른다. 나는 이 작은 새를 그저 마음 속에 예쁜 새로 담아두기로 했다.

온천의 수원지 주변에 다다를수록 산 주변에서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역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원지 바로 앞에는 우리나라 서낭당처럼 원추형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어워(Ovoo)가 있다. 몽골의 샤머니즘에서 기원한 이 어워는 몽골 자연의 무한한 힘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소원을 비는 상징물이다.

이곳은 산속에서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니 더욱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 어워에는 돌무더기 위에 나뭇가지도 세워서 쌓아두었고 어워에 바치는 파란 천, 하닥이 감겨 있다. 하닥의 푸른 색은 쳉헤르 온천 지대의 푸른 하늘을 닮아 있었다.

온천수가 나오는 신비스러운 땅에 어워가 세워져 있다.
▲ 온천의 어워. 온천수가 나오는 신비스러운 땅에 어워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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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은 어워를 보면 그냥 지나쳐가는 법이 없다. 온천 수원지를 찾아온 한 몽골인 가족도 어워를 보자마자 작은 돌을 올리면서 어워 주변을 돌기 시작한다. 이들은 어워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고 있다. 자매로 보이는 몽골 아가씨 두 명은 어워 앞까지 수다를 떨면서 왔지만 어워를 돌 때는 얌전하게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서낭당과 원류가 같은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마을 어귀나 등산로 입구에 돌을 쌓으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와 너무나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가씨들이 너무나 한국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 몽골말을 하는 것을 듣고서야 몽골 아가씨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워 바로 옆의 땅 위로 온천수의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온천수가 땅 속에서 끊이지 않고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유황을 함유한 온천이어서 살짝 삶은 달걀 냄새도 난다.

나는 온천 수원지를 구경 온 몽골 가족과 함께 이 신기한 온천수를 구경했다. 몽골 가족들의 표정은 땅 속에서 쉬지 않고 나오는 온천수가 너무 신기하다는 표정들이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 몽골 사람들도 나의 표정을 보고 외국 사람이 너무 신기해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손을 델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 쳉헤르 온천 수원지. 손을 델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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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수에 살짝 손을 넣어 보았다가 자동으로 손을 다시 뺐다. 잠시라도 손을 담글 수도 없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다. 그래서 이 온천수 수원지에서 몸을 전부 넣고 온천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짓 발짓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그리며 물어보니 이 뜨거운 온천수 온도가 80도가 넘는다고 한다. 온천수 쏟아지는 곳 바로 옆은 근처에 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같이 있던 몽골 가족도 돌아가고, 홀로 두고 온 아내가 심심할 것 같아서 나는 우리가 묵는 게르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게르로 돌아오자마자 아내와 함께 노천온천으로 갔다. 어제 묵었던 게르의 초라했던 샤워시설을 보다가 이 게르의 샤워시설을 보니 시원스럽게 넓기도 하다.

온천지대의 따뜻한 온천수가 샤워로 나오니 아주 포근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이 온천 샤워에서는 아까 수원지에서 경험한 유황 냄새는 강하게 나지 않았다. 온천수 샤워 덕분에 내 몸은 노천온천에 들어가기도 전에 매끈매끈해졌다.

이 게르 캠프의 가장 큰 장점은 몽골의 숲 속에 안기듯이 따뜻한 온천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외국의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높고 특히 여성들이 아주 좋아한다. 작은 노천탕에서는 몽골의 어린 아이들이 들어와서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 게르 온천에는 크고 작은 노천탕 2개가 있고 우리는 큰 노천탕 안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지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 쳉헤르 온천. 밤이 깊어지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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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수영복을 입고 따뜻한 온천 안으로 몸을 담궜다. 온천 속에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니 온천 앞의 구릉지대와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게르들이 한눈에 펼쳐지고 있었다. 숲 속에서는 피톤치드가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저녁이 되자 낮의 더위는 사라지고 찬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한다. 서늘한 공기 속에 뜨거운 온천 안에 있으니 온천을 하는 맛이 제대로 난다.

우리 부부만 있던 온천탕 안에 젊은 몽골인 부부와 어린 딸이 들어왔다. 우리 부부도 딸만 키워봤기 때문에 딸을 데리고 온 몽골인 부부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이 부부는 어린 딸과 함께 온 이 여행에 너무 행복해하고 있었다. 아이는 우리나라 아이들마냥 온천탕 안에서 즐겁게 수영을 한다. 나는 뒤늦게 들어온 몽골 친구의 통역을 통해 이 부부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 나이가 몇 살이에요? 몽골 어디에 사세요? 여기에 며칠 머무를 겁니까?"

조금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우리가 아이가 예쁘다며 이야기를 건네자 웃으면서 젊은 부부가 화답을 한다. 나는 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속초를 여행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 만났던 중년 부부가 어린 우리 딸에게 건넸던, '잘 자라라'는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 나는 몽골의 어린 꼬마에게 진심을 담아, 잘 자라라는 인사를 건넸다. 번잡함 없는 세상, 하늘을 천장 삼은 온천. 몽골 부부의 화목한 시간. 마음이 참 평안해진다.

그동안 물이 귀한 몽골에서 여행하면서 편하게 씻지를 못했던 기억들도 머리 속에서 지나간다. 그런 경험 후에 이곳에서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니 행복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뜨끈한 온천수 안에서 몸이 노곤해지자 여행길의 피로가 확 풀렸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편히 쉬는 힐링 여행은 좋은 여행길이 되었고 이번 몽골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드디어 쳉헤르의 온천에 밤이 찾아왔다. 쳉헤르 온천은 한밤에 별을 보며 즐기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행히 오늘 밤은 날씨도 흐리지 않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별이 하나 둘 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낮 시간에 평범해 보이던 노천온천은 어둠이 내리는 순간부터 화려하게 변신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오늘의 기대되는 무대가 영화처럼 하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초원은 일순간 아무 조명도 없는 암흑의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나는 야외 온천수 안에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낭만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는 몽골에 오기 전, 밤에 별을 보며 즐기는 노천 온천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정말 그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닌 표현이었고 몽골에서는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별을 센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았다. 별이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아마도 별을 보며 하는 이 온천욕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곳은 인터넷도 되지 않고 전화도 잘 안 되고 사진기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시계도 차고 오지 않았으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르에서 다시 사진기를 가져와서 별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나는 건강한 자연 속에서 조용함과 넉넉함, 그리고 평화로움 속에 빠져 있었고 이 시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밤공기가 계속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온천에서 서늘한 밤 공기 속으로 몸을 뺀 후 얼른 따뜻한 온천수 샤워를 했다. 그리고 다시 온 몸으로 서늘한 밤공기를 느끼면서 게르로 돌아왔다. 나는 게르의 난로 속에 나무를 쌓고 불쏘시개로 불을 지폈다. 게르 지붕의 뚫린 천장을 통해, 별이 빛나는 밤하늘 속으로 우리 게르의 난로 연기가 뭉게뭉게 퍼져 나갔다.

캠프의 여직원이 난로의 꺼진 불을 켜기 위해 불쏘시개를 집어넣고 있다.
▲ 게르 난로 피우기. 캠프의 여직원이 난로의 꺼진 불을 켜기 위해 불쏘시개를 집어넣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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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이제 게르 난로에 적응이 되어서 게르 내부가 한증막 같이 후끈해져도 게르의 문을 열어두지 않았다. 게르 안이 더워진 후 문을 열어두면 게르 내부가 다시 식게 되고, 잠을 자는 동안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르 내부의 따뜻한 공기가 어느 정도 안정화될 때까지 게르 밖에 나와 산책을 했다. 총총한 별이 우리 부부를 지켜주고 있었다.

난로 안에 나무를 많이 들이부어 놓았지만 새벽에 다시 난로 불이 꺼졌다. 나는 새벽에 추워서잠이 깼다. 나는 새벽에 눈을 다시 뜨면서 내가 그동안 아파트에서 참 편리한 난방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으로 느꼈다.

내가 간단한 내의만 입고 불을 다시 지피려는데 게르 캠프의 여직원이 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장작의 분량으로 보아 지금쯤 불이 꺼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젊은 여직원이 게르 손님의 의복 상태가 어떤지는 전혀 개의치도 않고 쪼그리고 앉아 난로 불을 지피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보니 괜한 웃음만 나왔다.

다시 게르 내부는 더워졌고 어둠 속에서 게르의 뚫린 천장 구멍을 통해 새벽의 하늘을 보았다. 아직도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게르에 누워서 보는 밤하늘의 매력이 마음 속에 큰 울림을 준다. 피곤해서 잘 자고 있던 아내도 잠에서 깼다.

나와 아내는 난로 속의 장작이 다 타 들어갈 때까지 진솔한 애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이처럼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새벽이 다하도록 몽골 밤하늘의 별들은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몽골 온천의 하늘 위에 쏟아지던 별과 그 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쳉헤르, #온천,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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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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