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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이상한 마을'에 다녀왔다. 술을 찾아갔는데, 그 술로 인해서 숨겨져 있던 한 마을을 봤다. 글쎄, 수백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숨겨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 마을은 큰 길가에 있고, 나는 그 길을 눈여겨보지 않고 무심코 지나다녔다.

조선시대에 전라도와 제주도를 총괄하던 병사들이 상주했던 마을이라 '병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지만, 그 이름이 어디서 왔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나다녔을 뿐이다. 그런데 그 마을의 병영양조장에서 60년째 일하고 있는 장인을 만나러 갔다가, 뜻밖에 따뜻하고 정겨운 공간을 만났다.

1957년에 시작된 술 빚기... 명인을 만들었다

 병영양조장과 소주를 만들 때 썼던 굴뚝.
 병영양조장과 소주를 만들 때 썼던 굴뚝.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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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양조장 제1공장 건물에는 새마을금고가 있다. 그만큼 사람 출입이 잦은 곳에 양조장이 있다. 제1공장에서는 약주와 소주를 만드는데, 공장 지붕 위로 높다란 굴뚝이 솟아있다. 1960년대에 소주를 내릴 때 벙커시유 연료를 썼는데, 그때 사용하던 벽돌 굴뚝이다. 양조장 김견식 대표는 1957년에 집안 형님이 운영하던 양조장에 들어와 술을 배웠고, 그 술 빚는 세월이 60년을 더하다 보니 어느덧 나라에서 인정하는 명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제1공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2공장이 2014년에 2층 건물로 새로 지어졌다. 제2공장에서는 막걸리를 빚는다. 설성동동주·병영소주가 병영양조장의 대표 상품이고, 2010년부터 7리터 용기에 생막걸리 '한사발 막걸리'를 담아 일본에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남도의 작은 면소재지에 있는 양조장이지만, 이미 막걸리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길목 하나를 내서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강진 병영에는 만들어진 산이 있다

 조산에서 바라본 병영양조장.
 조산에서 바라본 병영양조장.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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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2공장을 둘러보다가 그 뒤편으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 있는 큼지막한 정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언덕에는 삿갓 형태의 비갈을 쓴 비석이 있고, 쉼터 정자도 있었다. 마을의 조산(造山), 만들어진 산이라고 했다.

언덕에는 조산에 관련된 안내글이 있었다. 전라도 병영성의 앞쪽이 공허해서 액막이로 산을 만들었다는 조산설(造山說)과 전라병마절도사가 인근 천불산, 만불산, 억불산보다 더 높게 만들어 병영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조산설(兆山說)이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조산설에 따르면 조불산이 돼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언덕이 너무 아담하다. 병영의 자부심을 담으려 했다면 모를까, 벌판으로 탁 트여 있는 병영 마을의 열린 구조를 보완하려는 비보 풍수의 조처로 보인다. 정자나무는 세 그루인데, 가장 큰 나무는 수령 350년 된 느티나무였다.

느티나무 앞에는 제단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음력 6월 15일에 모여 이곳에 제물을 올리고 유두제(流頭祭)를 지낸다고 했다. 나로서는 문헌에서만 보던 유두제의 실제를 이곳에서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유두'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따온 말인데,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부정한 것을 씻어낸다는 뜻이다. 이날 재앙을 물리치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 하고, 이때 마시는 술을 유두음(流頭飮)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유두음의 실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술로 유두음을 할까 늘 궁금했었다. 이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김견식 대표에게 여쭤보니 농악과 함께 유두제를 올린다고 했다. 농부들은 이날 써레씻이를 한다고 했다. 모내기도 끝나고, 논을 갈았던 써레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이를 씻어서 정리해두는 날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강진의 다른 마을에서도 써레씻이를 하는 관습이 전해온다고 했다. 물론 기계의 도움을 받아 벼농사를 지내게 되면서 이제 써레씻이를 하는 농부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마을 사람의 기억 속에는 또렷이 남아있는 행사였다.

그렇다면 유두날 농악을 울리면서 마신 술은 당연히 농주인 막걸리였을 것이다. 설날 도소주, 정월대보름의 귀밝이술, 단오 창포주, 추석 신도주, 중양절 국화주 등으로 이어지는 절기주 계보 속에 유두날 유두음의 실체도 보였다.

하멜의 흔적이 남아있는 돌담

 한 골목 십리길의 골목 돌담, 네델란드 기법이라고 한다.
 한 골목 십리길의 골목 돌담, 네델란드 기법이라고 한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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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제를 보기 위해 다시 병영을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견식 대표에 이끌려 마을 안을 타고 흐르는 내를 따라, 마을 길을 걸었다. 마을 흙담장들이 특별하고 인상적이었다. 흙을 개서 납작한 돌들을 비스듬히 쌓아올리고 다음 층은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히 빗살무늬 지게 쌓았다. 근자에 복원된 것도 있지만, 오래된 담장들도 제법 남아있었다.

병영마을 돌담길은 2006년에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64호로 지정됐는데, "이 오래된 마을의 돌담길은 향촌 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 이를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넘겨주고자 등록문화재로 등재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2002년에 이 마을을 찾아온 네덜란드 대사가 빗살무늬 형태의 담장이 네델란드 방식을 닮았다고 말하면서, 이 담장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 동안 이 마을에 살았던 네덜란드 상인 하멜 일행이 관아에 소속돼 부역하면서 쌓은 기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 돌담장으로 이어진 골목길이 10리에 이른다 하여, 병영마을에는 '한 골목 십리길'이라는 지명도 있다.

"차라리 '하멜 막걸리'는 어때요?"

 병영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는 막걸리들.
 병영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는 막걸리들.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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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마을에는 <하멜표류기>에 나오는 하멜이 일하다가 쉬기도 했던 평평한 지석묘와 은행나무가 여전히 있다. 동학농민전쟁 때에 파괴됐던 병영성이 복원되었고, 성안에서는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마을에 하멜이 머물렀던 시간을 기념해 하멜 기념관도 생겼다. 하멜 기념관 안에는 흥미롭게도 오크통 두 개가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고 있었다.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함께 뒹굴었던 물건들 중에 오크통 2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 오크통에는 로제와인이 들어있었는데, 조정에 따로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주 관원들이 마셔버렸던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 마을은 옛 이야기와 돌담장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빗살무늬 돌담장 길을 따라 걷고, 병영 성벽 위를 따라 성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양조장 뒤편 조산으로 돌아오니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해졌다.

막걸리 한 잔을 권하는 김견식 대표는 하멜을 기념하기 위해서 무엇을 만들까 논의하다가 하멜 맥주를 만들자는 안을 내놨다고 했다. 나는 대뜸 김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350년 전 하멜이 마셨던 것은 병영성 막걸리인데, 굳이 맥주를 만들게 뭐 있습니까? 말 나온 김에 하멜 막걸리도 만들고, 유두음에 쓸 막걸리도 따로 만들면 좋겠는데요?"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장하던 병마절도사가 주둔했던 병영성.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장하던 병마절도사가 주둔했던 병영성.
ⓒ 허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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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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