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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진뫼마을의 봄 앞산 절골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 고향 진뫼마을의 봄 앞산 절골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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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6일, 주말을 이용해 고향 진뫼마을에 달려가니 마을 어르신들은 이미 농군의 옷 벗어던지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계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 꾸러미 내려놓고 고향마을로부터 1.5km쯤 떨어진 중전마을 식당으로 네 분씩 태워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요즘 몸이 편찮으셔서 외출이 뜸한 윗것테 사는 깨복쟁이 친구 현호네 어머니를 먼저 태우러 갔다. 집 앞에 도착하니 소지 당숙모와 택수네 어머니, 세운이네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셔 방안에 계신 현호네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아이고, 뭔 밥을 낸다고 그맀싼데아. 동네사람들 밥 살라면 돈도 많이 들어갈 턴디…. 아들이 첫 봉급 타서 마을분들께 한턱 낸다고 헝게 생각이 참 기특허고만. 도수는 밥 안 묵어도 배부르겄어."
"돈이 들어가면 얼매나 들어가겄어라우. 월급보다는 덜 들어가겄제라우. 그리도 마을 어르신들께 밥 한 번 내야할 일이 생긴 저는 행복허기만 허고만이라우."

"선생되는 시험도 어렵다도만... 큰 복이네!"

아들과 딸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 농로용 다리에서 딸 가애가 동생 민성이를 꽉 안아주고 있다.
▲ 아들과 딸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 농로용 다리에서 딸 가애가 동생 민성이를 꽉 안아주고 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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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 자네 핀허라고 애들이 취직히서 나강게 얼매나 존가. 우리 손자들은 돈 몽땅 디리서 외국에 유학을 갔다 오기도 힜는디 아직도 취직이 안 돼 저그 아부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녀. 취직이 되면 저그덜도 맘 핀허지만 부모들이 더 존 일이제. 자식 새끼들 집에서 놀고 있어보소. 밥 숟꾸락 입에 떠 넣어도 목구멍에 탁 언쳐부러. 맨날 걱정 머릿속에 담고 사는 거제."

"나보다는 저그덜 핀헐라고 졸업하자마자 취직이 된 것이제라우. 둘 다 취직이 돼아붕게 요즘 맘 핀히 지내고 있고만이라우."
"큰 복이네, 큰 복이여! 울 아들이 그런디 요새 교대가기 힘들다고 허더라고. 근디 둘 다 교대에 들어가 졸업허자마자 곧 바로 선생으로 나강게 얼매나 좋아. 사는 게 참 재미지겄어. 선생되는 시험도 어렵다도만 단번에 둘 다 붙어 부렀응게 도수는 복 겁나게 받아붕거여."
"다 동네 어르신들께서 성원해주신 덕분이제라우."

식당에 내려드리고 두 번째 어머니들을 실러 왔다. 깨복쟁이 친구 현철이네 어머니, 군대 함께 간 정호네 어머니, 아랫집 점순이네 어머니, 윗집 재섭이네 어머니 네 분을 모시고 간다.

오리주물럭에 술 한잔 대접, 이게 행복이지

아빠! 올챙이 잡았어요 올챙이가 앞다리가 먼저 안 나오고 뒷다리가 나왔다고 소리치고 있다.
▲ 아빠! 올챙이 잡았어요 올챙이가 앞다리가 먼저 안 나오고 뒷다리가 나왔다고 소리치고 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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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갈치니라고 돈도 없을 턴디 머더게 동네 사람들한테 밥을 산다고 그려. 안 사도 암시랑토 안 혀!"
"밥도 명목이 있어야 산디 자식들 취직이 되어 산다고 헝게 저도 기분 좋고만아라우."

마을 어르신들은 식당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도 하고 또 뒤늦게 오신 분들은 본이 소유의 소형 화물차를 타고 오셔서 네 번 왕복을 하니 개인 사정이 있어 빠지신 분들을 제외하고 스물여섯 분 모두 오셨다.

"익산에 있는 딸은 감기몸살이 너무 심해 도저히 올 수가 없어 못 왔고만이라우. 꼭 와서 어르신들께 아들이랑 함께 인사 드려야 헌디 못 와 죄송합니다. 대신 올해 임용시험 합격히서 기간제 교사로 첫 봉급 탄 아들 인사 올리겠습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아 드시고 부족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따, 적 아부지 탁히서 긍가 눈썹도 시커머니 인물도 훤허네."

아들은 마을 어르신들께 술과 음료수를 한 잔씩 따라 올리며 "건강하세요" 인사 올리고 있다.

"아따, 점심 한 번 잘 묵었네"

술과 음료수 한 잔씩 권하는 아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인사 드리고 있다.
▲ 술과 음료수 한 잔씩 권하는 아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인사 드리고 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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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 아들이 따라준 게 겁나 맛싯네. 쬐깐헐 때부터 딜꼬댕기도만 언제 요로케 커부렀데아. 세월 참 빠르고만. 그나저나 고향 들락거림선 고향집 지키제, 밭이고 산이고 안 묵히고 가꾸제, 하여간 부모님들께서 자네한테 몽땅 복 니리준거여. 그나저나 도수 아들 덕분에 오늘 낮 점심 잘 묵었네."

사는 게 뭐 특별한 게 있겠는가. 나를 키워주고 보살펴주고 지금의 나를 있게 도와준 고향 사람들 잊지 않고 밥이라도 한 끼 나누며 사는 게 행복 아니겠는가.

올해 초, 아들은 임용시험에 합격하자 첫 봉급 타면 엄마 아빠 주말마다 고향에 가시니 "누나는 첫 봉급 타서 아빠 개량한복 한 벌 맞춰줬으니 나는 진뫼 어르신들께 식사나 한 번 대접하려고요"라고 말했다.

대학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벌어온 첫 돈을 모두 부모님 손에 쥐어주더니 또 한 번 아들의 고운 마음씨에 볼 발그스레 상기돼 날아갈듯 기뻤다. 저축하고 남은 용돈 자기 쓰기도 빠듯할 텐데 기특한 마음 가지고 있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숨 쉬며 살아왔던 '고향의 순'이 몸 속에 새순을 틔우고 있었던 거 같다.

첫 봉급 탄 이후 마을 이장님과 날짜를 협의해 오던 중 이날 날을 잡아 마을 어르신들이 평소 좋아하는 '오리주물럭'을 시켜 술 한 잔씩 나누게 된 것이다.

이게 뭔지 아니? 딸 가애가 동생 민성이에게 방아깨비 긴 뒷다리를 잡자 방아처럼 끄덕이며 인사를해대자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다.
▲ 이게 뭔지 아니? 딸 가애가 동생 민성이에게 방아깨비 긴 뒷다리를 잡자 방아처럼 끄덕이며 인사를해대자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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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마을 어르신들께 부모님 생일상을 차려 대접을 하거나, 팔순잔치에 초대해 대접할 일도 없어 아들 취직으로 인해 한턱 내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마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오늘 낮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면서 한 잔 하셨겠지. 자식 키운 보람 느꼈다며 아버지는 팔자걸음으로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였겠지.

술 한 잔씩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을 어르신들께서 돌아가신 부모님 맘을 내게 들려주고 계셨다.

"월국양반 월국떡은 참말로 좋겄네. 손지들이 둘씩이나 선생님이 돼아부러서. 월국양반이 늘 자식들에게 공무원, 공무원 노래 불렀쌌더니 손자들까지 꿈을 이뤄불었고만."

부모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식 교육인데 5~6세 때부터 주말마다 고향집 데리고 다니면서 스스로 자연 공부 터득하며 놀던 아이들. 시골에서 초등학교 교사하면서 고향집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노래불렀다.

마당 한켠엔 '가족나무'라 명명한 자목련을 심고, 뒤란에 아이들 이름을 각자 붙여 사과나무를 심어놨다. 결혼하면 자식들 데리고 부모님이랑 함께 심어 놓은 자목련은 지금쯤 피었을까, 사과는 몇 개나 열렸을까, 그 핑계 대고 남편 아내 손잡고 고향집에 한번이라도 더 오는 '이유'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 했거늘... 그러나 어쩌랴

눈 내린 고향집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한겨울, 아이들 데리고 주말에 달려가니 눈이 쌓여 고요하기만 하다.
▲ 눈 내린 고향집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한겨울, 아이들 데리고 주말에 달려가니 눈이 쌓여 고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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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거나, 많이 배웠거나, 높은 학력을 가지신 분들께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두메산골 가난한 진뫼마을 사람들 눈높이로 자식 둘 모두 공무원으로 나가는 거는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형제들도 '이제 복 그만 가져가고 나한테 돌려 놔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도수가 집 사서 부모님께 잘 헝게 그 복 옴쏘롬허니(온전히) 다 받아 간 거여. 축하혀! 울 동상은 인생 잘 살았어. 진뫼 '사랑비'에다 막걸리 또랑물 내려가듯 부었고, 그렇게 뜨거운 여름날 까시덩풀 헤치고 엄마 산소 관리 하는데 복 안 주겄어. 조상님도 알고 복 주신거제. 오늘 뒷산에 잠드신 울 어매 아부지 벌떡 일어나 춤 덩싱덩실 추며 더듬더듬 고향집으로 니롸불지도 모르겄다."

그날 밤, 마을 어르신들께서 따라주신 술 받아 마시고 잠이든 아들 꼭 껴안아줬다. 부산에서 교대를 나온 아들이 임용시험을 부산으로 칠까, 경기도로 칠까, 고민하다 내 뜻 받들어 전북 지역으로 지원해 합격했기 때문이다. 자식자랑은 팔불출(八不出)이라 했거늘 나는 '기천팔불출' 쯤 되겠다. 그러나 어쩌랴.

부모님께 받치는 '사랑비'  살아생전 취직되면 막걸리 받아들고 오라던 어머니 말씀 가슴에 사무쳐 용돈을 모아 고추밭 가장자리에 빗돌 하나 세워드렸다.
▲ 부모님께 받치는 '사랑비' 살아생전 취직되면 막걸리 받아들고 오라던 어머니 말씀 가슴에 사무쳐 용돈을 모아 고추밭 가장자리에 빗돌 하나 세워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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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보리베던 날' 그림 옆에서 좌로부터 필자와 아내 아들 딸 가애가 보리베는 할머니와 목이 마르다며 어린 아빠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오매! 한 잔 하고 혀!" 부르는 모습을 그려 아랫채 벽에 걸어 놓았다.
▲ 고향집 '보리베던 날' 그림 옆에서 좌로부터 필자와 아내 아들 딸 가애가 보리베는 할머니와 목이 마르다며 어린 아빠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오매! 한 잔 하고 혀!" 부르는 모습을 그려 아랫채 벽에 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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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청하려 해도 쉬이 오지 않는다. 몸을 뒤척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모님 농사 도와주던 그 봄날이 머릿속에 환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쩍새가 구슬피 울어댈 때마다 쇠죽방에 누워 '나는 앞으로 뭣이 되어 사회에 나가 살 것인가, 공장에 취직하러 서울로 올라갈 것인가, 아님 공무원 공부를 헐 것인가, 군대를 지원히서 일찍 갔다올 것인가,' 불멸의 밤으로 눈물 지새우던 그 봄날이 다시 내게로 오고 있었다. 

소쩍새

대학 문 못 밟고
쇠죽방에 누워 자는데
소쩍소쩍
문틈 뚫고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

벽지 대신 발라놓은 누우런 신문지 
인재를 찾습니다
취업 광고판 읽으며
세상 나가는 길 찾고 있다

소쩍소쩍
나도 소쩍새 따라
훌쩍훌쩍

날 밝기 전
세상 속으로 숨어들었다

― 시집 <진뫼로 간다>중에서,  졸시<소쩍새> 전문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곤히 잠든 아들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종일 농사일에 지쳐 곤히 잠든 나를 새벽녘 아버지께서 우두커니 바라보듯. 그러다 팔베개를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전남 광양에 거주하며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전북 임실 진뫼마을 고향으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란 산문집과 시집 <진뫼로 간다>를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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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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