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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김씨는 지난해 5월 성희롱 사건을 접하고 본사에 제보했다. 사진은 제보자 김씨가 찍은 매장 사진에 여성 이미지를 합성한 것.
 제보자 김씨는 지난해 5월 성희롱 사건을 접하고 본사에 제보했다. 사진은 제보자 김씨가 찍은 매장 사진에 여성 이미지를 합성한 것.
ⓒ 제보자 김아무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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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당한 동료를 위해 사내 신문고를 두드린 지 1년, 제보자 김아무개씨에 대한 눈초리가 달라졌다. 그저 피해자와 친했고 나이가 좀 어려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기에 본사에 제보를 해줬을 뿐이다.

그런데 일이 커지자 동료들은 사건 자체를 부정하면서 본사에 편지를 보냈다. 본사 관계자들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서 명예훼손으로 김씨를 고소했다. 그는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까지 감당해야 했다. 본사의 계약해지에 대한 두려움에 생계 걱정도 해야할 처지에 몰렸다.  

2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씨는 자신을 LG생활건강(아래 LG생건)에 소속돼 있는 '월급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LG생건의 화장품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위탁 판매를 하는 개인사업자로 LG생건에서 화장품 판매금액에 대한 수수료를 받고 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그동안 기자와 여러 차례 통화를 하고 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줄곧 부당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LG생건 관계자들이) 재계약 평가를 불과 한 달 남겨두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면서 "어렵게 일군 매장을 지켜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동료들로부터 성희롱 이야기를 듣고, 그룹에 제보했더니...

그가 뜻하지 않은 사건을 듣게 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당시 김씨는 세 명의 동료가 본사 영업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들었다. 김씨의 동료들은 인근 대형마트에 입점한 LG생건 화장품 매장을 관리했다. 영업 직원은 마트 매장의 점주들에게 본사의 공지사항을 전하고 신제품을 홍보했다. 또 이들에게 LG생건의 화장품도 공급했다.

김씨가 지난해 6월 피해자들과 나눈 녹취록에 따르면 영업직원은 대형마트에 입점한 LG생건 화장품 매장 직원에게 '위탁판매를 하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또 어깨를 만지고 성적인 발언을 하는 등 치근댔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한 명도 아닌 세 명의 직원에게 수치심을 느낄만한 얘기를 해 제보를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처음 사건을 접한 LG그룹은 김씨와 인터뷰 등을 했다. 별 문제 없이 진행이 되는 것 같았다. 사건을 해결해 주려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정도경영 조사관이 성실하게 조사를 해줬고 신변보호도 됐었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LG생건으로 사건이 넘어가면서부터였다. 6월 말께 LG그룹은 사건을 LG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로 이관했다. 성희롱 사건에 월권행위도 포함돼 있고 애매한 면이 있다는 이유였다. 이때부터 사건 조사는 LG생건 화장품 사업부에서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제보자의 신분은 고스란히 노출됐다. 조사를 담당했던 사업부 팀장은 성희롱 피해자들과는 접촉하면서 제보자와는 만나지도 않았다. 당시 김씨 동료들은 조사과정에 대해 "(조사관이) 스킨십을 했냐고 물어봐서 '야한 농담을 하고 치근댔다'고 했더니 '스킨십을 안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라고 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해당 회사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는 "화장품 사업부로 사건이 넘어가자마자 조사가 흐지부지 됐다"며 "회사의 조사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올해 1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동료들은 김씨를 피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들을 위해 대신 제보까지 해주는 위험을 감수했지만 '왜 그렇게 일을 일으키냐'는 말을 듣게 됐다. 그는 "원래는 친했던 동료들이었는데 본사 쪽으로 돌아서면서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라면서 "대기업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라고 토로했다.

가장 화가 났던 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동료의 투서였다. 그는 '성희롱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투서를 LG생건에 보냈다. 김씨는 이 부분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그는 "투서 내용은 최근에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됐다"라면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라고 분개했다.

LG생건 "성희롱 아냐, 오히려 김씨가 회사 명예 실추"

LG생건 쪽에선 이번 사건 전면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회사 쪽에선 "제보자가 피해 당사자로 지목하는 사람들은 성희롱 사실을 부인한다"라고 말했다. 또 회사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곤혹스러움을 표했다. 이어 사건 자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회사 이미지에 손해가 된다고 했다.

LG생건 쪽은 "김씨는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 면이 있다"라면서 "상세하게 조사했지만 성희롱이라고 볼 만한 부분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자체적으로 조사를 마치고 성희롱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라며 "사건을 절대 은폐하거나 축소하지 않았으며 그럴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2월 명예훼손으로 회사쪽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LG생건은 영업직원이 김씨를 고소했으며 직원 개인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피해자들이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만큼 김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화장품 사업부의 팀장급 인사와 매장관리 파트장, 소장 등 관리자급 세 명이 김씨를 고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회사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사유다.

기자가 이 부분에 대해 재차 묻자 "직원 두 명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하더니 다시 "세 명이 맞다"라고 말을 바꿨다. 또 "(김씨에 대한) 고소 건은 추후 계약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재계약은 매출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그:#LG생활건강, #성희롱, #제보자, #명예훼손,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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