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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못지않은 DIY(do it yourself) 감각으로 자신의 공간을 멋지게 만들어가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 풍조와 여성성의 대표적 이미지인 절약 콘셉트가 절묘하게 만나 탄생한 새로운 시류다.

이종숙씨
 이종숙씨
ⓒ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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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숙(55)씨도 DIY 유행이 만들어낸 유명 인사 중 한 명이다. 대전 둔산동에 사는 이씨는 동네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벽돌을 이용해 벽을 꾸민 이씨의 센스를 남다르게 본 이웃 주민이 우리 집도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러브콜을 보내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집 다 버린다고 시공을 꺼려하는 인테리어업자들과 달리 그녀는 과감하게 개성을 표현했다. 더욱이 가격에서 차이가 너무 났다. 인테리어업자가 부르는 가격의 1/10 밖에 공사비가 안 드는 것을 보고, 너도나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벽 공사만 수백 건 해줬다며 집을 꾸미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예쁜 집 주인장으로 통하는 그녀의 집에는 손수 만든 독특한 물건도 많다. 더 특별한 점은 소품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것. 그래서 그녀가 만드는 수많은 작품 중 똑같은 물건이 없다.

"저라면 물고기도 예쁘게 잘 키울 것 같다고 동네 언니가 열대어를 몇 마리 사다 주셨어요. 어항을 사올 수도 있지만, 다이소에서 1000원 주고 산 병이랑, 철사, 끈을 이용해 물고기 집을 만들어줬어요."

손수 만든 어항을 탁자에 올려놓은 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더니 동네 언니가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다며, 그녀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집 꾸미는 일을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엿보아서였을까? 이 씨가 원래 손재주가 좋았는지 문득 궁금해져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게 이런 재주가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어렸을 때 뭘 만들어 본 적도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평범한 주부로 살림과 육아만 하고 살았어요."

많은 전업주부들처럼 이씨도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케이스. 소질을 실로 꿰게 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어렵게 사는 남편의 친한 친구가 부지런히 일을 해서 첫 집을 장만했어요. 그 친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 주고 싶다고 저에게 커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구요."

남편은 40만원이나 되는 재봉틀을 선뜻 사줬다. 25년 전 이었으니 40만 원이면 거금이었다. 그만큼 간절했던 남편의 청을 뿌리치지 못해 천을 사고 재단을 했다. 재봉틀에 실도 못 꿰어 헤매기를 수십 번. 익숙해 질 만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니 바느질이 됐다. 그녀는 그렇게 완성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커튼을 집들이에 가져갔다. 이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는 남편 친구 부부를 보며 보람을 느꼈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그때부터 방석 씌우개나 쿠션을 만들었다. 하나씩 하나씩 완성된 물건은 매우 독특했다. 화가였던 그녀의 형님은 그녀의 재주를 눈 여겨 봤다. 그러던 어느 날 형님이 이씨에게 서울 집 인테리어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종숙씨가 직접 시공한 벽돌벽과 다양한 소품들
▲ 독특한 벽 시공 이종숙씨가 직접 시공한 벽돌벽과 다양한 소품들
ⓒ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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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숙씨가 철사와 다이소 병으로 직접 만든 어항
▲ 직접 만든 어항 이종숙씨가 철사와 다이소 병으로 직접 만든 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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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을 이용한 대담한 벽 공사를 그때 처음 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니 벽에 무언가를 붙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던 때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멋쟁이 서울 주부들을 통해 입소문이 났고, 커피숍과 햄버거 집 같은 영업용 업소에서 인테리어를 해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그 후로 이씨는 집 인테리어는 물론 소품 제작, 옷 리폼 등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의 재능을 넓혀갔다.

갱년기와 빈둥지 증후군으로 많은 수의 주부들이 우울해 하는 50대.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자신의 소질을 살려 의미 있고 행복한 중년을 살아가고 있다. 이씨의 손길만 닿으면 쓸모없어 보이는 생수병이 멋진 화분으로, 독특한 주걱꽂이로 변한다.

지금은 그 맛을 알게 된 이웃들이 먼저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을 뒤져 각종 유리병을 가져다주고 있다. 소품을 만들어 파는 이씨는 언젠가는 그녀의 솜씨를 꼭 빼다 닮은 딸과 작은 가게를 열어 이웃과 소통하는 재미를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DIY로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사는 이씨. 그녀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여자였다.


태그:#예쁜집, #D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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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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