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청소년은 학업으로 인해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내려놓고 하염없이 공부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푸를 청'이라는 한자의 의미와 맞는 것일까?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특정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재능과 끼를 알림으로써 참된 청소년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을 소개 할 예정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글을 보고 잊어버렸던 자신의 꿈들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마림바리스트로 촉망받는 한 18살 소녀가 있다. 그런데 '마림바'란 무엇일까? 먼저, 오케스트라 악기 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바이올린·첼로·플루트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런 악기들의 특징은 무대 앞쪽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치 사진 밖의 아버지처럼 무대의 뒤쪽에 위치해 관객들의 집중을 잘 받진 못하지만, 다른 악기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타악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마림바다.

마림바는 '나무로 된 건반들이 피아노와 같은 방식으로 배열된 타악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나무 재질의 엄청나게 큰 실로폰으로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 소녀가 들려줄 곡은 마림바의 아름다운 소리를 느낄 수 있는 <푸른 청(靑)소년들> 3번 '강윤서'란 곡이다.

[강윤서 1악장] 어머니의 유전을 받아

 강윤서씨(18)는 11년 차 마림바리스트이다. 마림바를 연습하고 있는 강씨의 모습이 진지해 보인다.

강윤서씨(18)는 11년 차 마림바리스트이다. 마림바를 연습하고 있는 강씨의 모습이 진지해 보인다. ⓒ 유종현


대개 주위에서 음악을 전공한다고 하면 위에 언급했던 바이올린, 첼로 등의 전공자들은 많이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마림바 전공자를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사람들은 마림바라는 악기조차도 잘 몰랐을 것이다.

"1988년도부터 타악기 전속 반주자로서 피아노를 연주해오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자식을 낳게 되면 꼭 타악기 연주자로 키우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8살 때, 타악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다행히 저 역시도 잘 맞아서 계속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세계적인 퍼커셔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은 저의 꿈이자 어머니의 꿈이기도 해요."

실제로 현재 강윤서씨의 어머니는 강씨가 연주할 때 매번 뒤에서 반주를 넣어주신다고 한다. 자신의 딸과 함께, 음악이라는 한 분야에서 같이 활동하는 것이 강 양의 어머니에게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일 것이다.

"아무래도 항상 곁에 계시니 잔소리도 많이 들어요, 하하. 그래도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문제점을 고치려고 노력해요. 오랜 시간 동안 타악기 반주자로서 활동하셔서 어머니의 지적이나 조언들이 다 맞는 말이거든요."

강윤서씨의 어머니에게 딸은 자신의 제2의 꿈일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현재진행 중이다. 강씨에게 어머니는 부모님이자, 선배, 롤모델일 것이다.

다른 악기들과 다르게 타악기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종류의 악기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타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강씨 역시도 마림바를 자신의 주 악기로 두고 팀파니, 드럼, 비브라폰도 같이 준비하고 있다. 많은 악기 중에 그녀가 마림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에 의해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모든 악기를 하나씩 경험해봤을 때, 마림바만의 특유의 음색이 좋았고 많은 사람이 하지 않는 악기라서 제가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에게 이 악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강윤서씨는 마림바와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화려한 곡을 연주하고 있다. 그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받아온 상들과 참가한 연주회를 다 말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다. 과연,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연주는 언제였을까?

"어릴 때부터 참가해 온 대회, 연주회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모두 다 의미가 있어요. 대회나 연주회를 준비하는 기간이나, 참가했을 때 배우는 것들이 정말 많은 것 같거든요. 그래도 그중에서 하나를 뽑는다면 먼저 작년 9월에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콩쿠르입니다.

처음으로 참가해본 국제대회라서 그만큼 준비할 때나 대회를 나가서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마림바 연주자들을 많이 보기 힘들었는데 그곳에서는 세계의 뛰어난 마림바 연주자들뿐 아니라 많은 타악기 연주자를 직접 볼 수 있어서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발전한 계기가 됐어요."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전과 사랑, 그리고 강씨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서일까. 강윤서씨는 작년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3회 이탈리아 퍼커션 콩쿠르 마림바(Italy Percussion Competition Marimba_Cat. A)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대회는 세계 최대규모의 타악기 콩쿠르로 마림바 등 6개 분야가 있고, 매년 30여 개 국가의 연주자들이 참가하는 국제적인 대회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마림바리스트가 되겠다는 그녀가 현재 자신의 꿈을 향해 잘 달려가고 있다는 성적표를 받는 셈이다.

[강윤서 2악장] 세계로 향한 도전

 강윤서는 13회 이탈리아 퍼커션 콩쿠르 마림바 (Italy Percussion Competition Mar) 부분에서 우승했다. 아랫줄 왼쪽에서 4번째가 강윤서다.

강윤서는 13회 이탈리아 퍼커션 콩쿠르 마림바 (Italy Percussion Competition Mar) 부분에서 우승했다. 아랫줄 왼쪽에서 4번째가 강윤서다. ⓒ 유종현


음악이나 미술 같이 예술을 전공하는 많은 사람이 해외로 유학을 준비한다. 본토에서 직접 그 분야를 배우고 접한다는 게 그들에겐 큰 의미다. 강윤서씨 역시도 작년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도 좋은 기회가 있지만,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어서 유학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배우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유학을 가서 의사소통이나 먹는 것 등 많이 힘들 것 같지만, 학교를 그만둘 만큼 각오를 했으니, 가기 전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싶어요. 가서 잘 적응해 제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싶어요."

18살, 지금 나잇대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시기에 유학이라는 결정을 내렸으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강씨도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놀고 싶은 소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꿈'이라는 독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유학을 가게 되면 지금의 친구들도 곁에 없고 저 혼자서 이겨내야 하잖아요. 지금도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떨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아요. 하지만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듯이 지금은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왕 유학을 가게 됐으니 성공해서 나중에 더 떳떳한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서고 싶어요."

과연 그녀는 학창시절을 접어두고, 이 푸른 나이에 유학을 가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녀를 해외로 향하게 했을까? 문득, 이 질문을 받은 강씨는 유학을 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했다.

"제가 11년 정도 타악기를 연주하며 주로 마림바로 솔로 연주를 해왔는데 유학을 가서는 오케스트라 속에서의 마림바를 배우고 싶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시지만, 마림바나 많은 타악기가 대중적인 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많이 배워서 사람들에게 마림바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머지않아 몇 년 뒤에 강윤서씨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타악기와 마림바를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웅장하고 멋있으며, 때로는 간결하고 고요한 곡을 연주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강윤서 3악장] 11년, 아직 진행 중인 꿈

 지난 3월, 강윤서는 아시아 마림바의 전설 게이코 아베님과 마림바 앙상블 연주를 했다.

지난 3월, 강윤서는 아시아 마림바의 전설 게이코 아베님과 마림바 앙상블 연주를 했다. ⓒ 유종현


강씨가 말렛(타악기를 연주할 때 잡는 채)을 잡은 지 벌써 11년이 흘렀다. 또래 친구들이 연필을 잡고 공부를 할 때, 강씨는 손에 말렛을 2~3개씩 끼면서 연습을 했다.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제 연주를 관객에게 들려줌으로써 감동을 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연습할 때 누군가가 저의 연주에 불만족을 느끼면 되게 답답하고 불안해져요.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매번 막막하거든요. 종종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악물고 두드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연습할 때 지적을 받는 것은 고치면 되지만, 관객들에게 좋지 않은 연주를 들려주는 것은 음악가로서 큰 실례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할 거에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과 함께 했던 그녀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하다고 많은 사람은 얘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는 강씨에게 반대로 좋았던 기억을 물었다. 많은 기억 중에서 한 가지를 꼽아 입을 열었다.

"저번 달(3월)에 아시아의 마림바 개척자라고 불리시는 게이코 아베(Keiko Abe, 78) 님과 함께 마림바 앙상블 연주를 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인 것 같아요. 마림바의 전설이란 분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연주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더 뜻깊었던 것은 그분의 자작곡을 그분과 함께 연주했다는 것이에요. 너무나 과분한 영광이었고 감동이었어요."

연예인을 보고 소리를 지를 소녀가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기분일까? 직접 경험해 본 강윤서씨만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그 기분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는 것, 그리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란 것은 분명하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타악기 11년 차다. 앞으로도 큰 여정이 남아있다. 강씨는 어디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 제가 이렇게 계속해서 오랫동안 연주를 할 수 있게 어머니만큼 도와주신 분이 있어요. 김은정 선생님인데, 그분처럼 되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현재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이면서 많은 제자를 발굴하시고, 한 가족의 어머니로서 삶을 살고 계세요. 옆에서 그분을 보고 있으면 나중에 저도 그분처럼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제자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배워 성공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강윤서씨의 희망과 열정이 담긴 말과 함께 인터뷰가 끝났다. 우리나라에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하고 꿈을 꾸는 학생들이 있다. 같은 나잇대 친구들이 놀 때, 연습실에서 수없이 같은 곡을 반복한다. 관객을 향한 단 한 번의 연주를 위해서, 그들은 지금도 연습하는 것이다. 강씨를 포함한 많은 청소년이 미래에 우리나라의 한국 음악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다양한 계절이 있듯, 그들이 다양한 음악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카페에서든 언제든지 우리의 귀를 춤추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 도전 앞에서 고민할 것이다. '만약에 도전했다가 실패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도전을 향해 몸을 던질 것이고, 다른 이들은 불확실한 도전 앞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에디슨이 수많은 실패 끝에 한 번의 성공으로 우리의 삶을 빛나게 했던 것처럼 많은 청소년과 어른들이 도전 앞에서 주저앉지 않길 바란다. 도전이란 길 끝을 혼자 걸어갈 수도 있고,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 길 중간에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길 가운데 있는 모두가 나의 조력자가 된다는 것과, 길 끝에는 푸른 하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전하고 실패를 해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유종현 시민기자는 청소년으로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인고등학교 BNS(신문기자부)의 기자입니다.
청소년 인터뷰기사 마림바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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