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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거 해봤어요?"
"오빠가 지금 생각하는 그거요."
"오빠랑 하고 싶기는 한데... 아직 그 날이 아니라서요."

 선관위의 투표 독려 영상 중 일부
 선관위의 투표 독려 영상 중 일부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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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든 투표 독려 영상 '알아들으면 최소 음란마귀'다. 영상은 '소개팅남'에게 '소개팅녀'가 뜬금없이 '그거'를 이야기하고, 소개팅남이 '그거'를 성관계로 이해해 벌어지는 오해를 그리다가 투표를 하러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여성을 하나의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성관계의 대상으로 성적 대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투표 독려 영상에서 '성관계'를 암시하는 황당한 내용이다. 

여성·청년 '훈계'하는 광고, 이래도 될까?

선관위의 투표 독려 영상은 총 44개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 위에 나온 영상은 삭제되었다. 그 외의 영상들은 랩부터 뉴스, 단순 정보 소개와 토론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대체로 나타나는 공통점은 비슷하다. '놀러 갈 궁리만 하는 청년'과 '화장품, 남자만 밝히는 젊은 여자'의 등장. 그리고 끊임없이 강조되는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다.


최근 논란이 됐던 투표 독려 영상인 '설현의 아름다운 고백(화장품편)' 편은 설현이 등장해 "언니! 에센스도 이렇게 꼼꼼히 고르면서..."라며 아름다운 투표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앞서 나온 '화장품'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스마트폰' 편도 있다.

'어머니의 생신' 편은 설현이 어머니의 생신에 바빠서 못 간다고 하자 형부 역할의 남자가 구시렁대다가, 갑자기 케이크를 들고 설현이 등장하며 "함께할 때 아름다워지는 날이 있다"고 말하며 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이다. 설현이 나온 영상들은 전부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을 사회의식이 부족하거나 이기적인 존재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목소리' 편도 문제다. 동영상에서는 투표날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여자는 '잘생기고 멋진 오빠와 만나는 것'을 고민하며  "그 사람들 나와서 맨날 싸우던데 나쁜 사람 아니야?"말을 내뱉는 대학생으로 묘사된다.

'여성은 정치에 관심 없다'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한 것이다. 그에 비해 남자는 사회에 관심도 많고, 불만은 많지만, '회의감'이 커서 투표를 주저하는 사회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44개에 달하는 영상들의 제목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아름다운'이다. '아름다운 조보아의 ○○'의 영상이 10개에 달하고, 홍보대사로 나오는 설현과 에이핑크의 영상들도 '아름다운' 혹은 '깜찍한' 이라는 표현이 꼭 붙어 있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것도 의문이지만, 거기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꼭 필요한지 역시 의문이다. 한 표라는 투표 행위를 꾸미고 싶었다면 '○○○의 아름다운 한 표'라는 말로 썼어도 충분하다. 선관위 영상의 제목들은 여성을 '아름다워야 할' 존재로 구속하는 표현들이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목소리> 편의 일부. 영상에서 여성은 멋진 남자를 만나는 것만 신경쓰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목소리> 편의 일부. 영상에서 여성은 멋진 남자를 만나는 것만 신경쓰는 존재로 등장한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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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대부분의 주인공인 '청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앞서 지적한 광고뿐만이 아니라 '선여정지환 커플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에서는 청년 커플은 당연하다는 듯이 선거날 놀러나가는 것을 고민한다.



랩 영상인 'Let's Vote'에서도 "친구들과 놀러 가는 날로 당연하다는 듯 투표를 포기하고", "투표하지 않고 놀이동산이나 가"라는 가사가 나온다. 선관위 영상에서 청년은 '투표 날 놀러 가기만 하는' 무개념의 존재일 뿐이다.

청년의 경우 지난 2012 대선 청년 투표율이 68%를 넘었고, <한겨레>가 엠브레인을 통해 진행한 3월 7일 여론조사 결과, 이번 총선 투표에 '꼭 참여하겠다'는 20대는 72.2%로 각각 65%, 60%를 기록한 30, 40대보다 훨씬 높게 드러났다.

20대의 '참여생각 없음'은 3.7%로 30,40대의 6.8%, 9.2%보다 낮았다. 선관위에서 수많은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20대는 놀러 갈 생각만 한다'는 모습이 단순한 고정관념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투표하라'는 설득이 불가능한 광고

투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사 표현이며, 총선은 4년에 한 번이라는 것과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중요성 때문에 특히 더 강조되는 선거다. 선관위에서 다양한 포맷으로 광고를 만드는 시도 자체는 높게 쳐줄 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 시도가 좋다 한들 여성과 청년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거기에 나아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광고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명백한 잘못이다.

광고계의 전설로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는 "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설득이다. 설득은 하나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설득의 기초는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선관위가 만약 정말로 여성 유권자와 청년 유권자가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투표의 효능감'을 알려주고 공략했어야 했다. 여성과 청년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리면서 차별적 요소까지 포함한 광고는 애초에 누군가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선관위의 광고에 대해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오길비는 다음과 같은 말들도 남겼다. 선관위가 꼭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당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관위는 이번 논란이 되고 있는 영상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다른 말은 "당신의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광고는 만들지 마라"다. 문제가 된 영상들을 당신의 가족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해보라. 분명히 보여주지 않게 될 것이며,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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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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