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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에서 신인상을 받고 당당히 등단한 한국 문학계에서 촉망받는 신인 작가 '남루한'은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소설이 아니란 것이 문제입니다. 통장 잔액이 3220원뿐인 소설가는 우선은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남루한은 지금 야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단을 했다고 해서 누가 밥을 먹여주진 않았습니다. 등단 후 소설집 하나를 써내긴 했지만 출판이 되려면 2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네요. 그게 문학계의 룰 같은 거랍니다. 그러니까 2년 동안 소설을 통한 수입은 전무할 거라는 말이지요.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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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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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소설 <능력자>의 주인공 남루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에 대해 더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책의 분위기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래의 문장으로요.

예전엔 소설을 썼지만, 요즘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발기로 괴로워하는 중고생들이나 읽는 야설을 쓰고 있다. - <능력자> 중에서

이 책은, 웃깁니다. 픽, 픽, 피픽, 하면서 계속 웃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웃기기만 한 소설은 아닙니다. 이 책이 웃기기만 한 소설이 아니라는 건 사실 저도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면 남루한은 지금 야설을 쓰고 있는데요. 남루한에게 돈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급히 돈이 필요하게 생겼습니다. 장인어른 될 사람이 엄포를 놓았거든요. 내 딸과 결혼을 하려면 2천만 원을 만들어 오라는 거예요.

마른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질 리도 없고, 어디에서 2천만 원을 구하나요. 그렇게 해서 남루한은 공평수의 자서전을 써주기로 합니다. '정신병자이자, 전 세계 챔피언이자, 매미 애호가' 공평수의 자서전을.

능력자란 누구인가

공평수는 누구나 보면 '뭐 이런 미친 사람이 다 있나' 할 만큼 조금 이상한 사람입니다. 목소리는 울화통을 삶아먹는 것처럼 크고, 왜인지는 모르나 '끼우동!' '미가제!' '츠동!'같은 단어를 말 끝마다 덧붙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어떤 요상한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오늘 우리 점심은 뭘로 할까요? 끼우동!" 무엇보다 공평수는 본인을 초능력자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 초능력은 무려 매미에게서 온 거라고 하네요.

매미의 언어를 이해한 그는 매미에게서 에너지를 받았고, 그 에너지를 통해서라면 세상에 못 고칠 것이 하나도 없다고 공평수는 말합니다. 매미의 에너지를 반창고에 모아 그것을 목에 붙이면 목 디스크가 낫고, 휴대폰에 붙이면 배터리 수명이 연장되고, 방바닥에 붙이면 수맥이 차단된다는 식이에요. 남루한은 공평수가 미친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의 자서전을 써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남루한의 눈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공평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돼지요.

책의 제목이 <능력자>잖아요. 그럼, 능력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어느 한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이를 우리는 보통 능력자라 부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정말 이런 이들을 능력자라 인정해주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복싱으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공평수 역시 능력자 아닐까요?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공평수를 능력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공평수는 말합니다. 세계 챔피언을 따고 단 한 번 실패했더니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로 부르기 시작했다구요.

결국 세상이 말하는 능력자란, 끝없는 자기 학대 끝에, 극기 끝에, 이번에도 성공, 다음에도 성공, 이다음에도 성공만을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 능력자가 된 극소수의 사람들은 사탕발림 언어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건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러니 더 노력하라고. 그래서 능력자가 되라고.

책의 후반부에는 미친 줄 알았던 공평수의 반전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진정한 능력자란 누구인지를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공평수가 말하는 진정한 능력자란, 나만이 내 삶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 내 삶의 주도권을 자꾸만 빼앗아가는 세상에 단단히 맞서, 기어코 그 주도권을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가지고 오는 사람입니다.

공평수를 통해 남루한 역시 자기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됩니다. 야설은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죠. 소설은 공모전에서 탈락합니다. 하지만 남루한에게 공모전 탈락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도 진정한 능력자가 되는 길을 걷는 중이니까요.

공평수가 그랬듯 승부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세상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승리는 진 시합이다. 세상이 패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목표한 수준에 도달한 경기는 이긴 경기고, 이긴 삶이다. (…) 나 역시 세상의 관점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나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설정한 목표에, 그것이 비록 비루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루 더 다가섰느냐는 것이다. - <능력자> 중에서

우리는 사회가 우리에게 내리는 평가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세상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아닐까요. 내가 내 삶을 인정하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일 테니까요.

공평수는 과정을 중요시했습니다. 과정이 즐거웠다면, 된 겁니다.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과정은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지고, 결과는 짧은 시간 안에 보여지지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우리의 온 삶을 바칠 순 없습니다. 우리가 더 나이가 들어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성공했던 한순간을 떠올리며 기뻐하진 않을 겁니다. 대신, 삶에 충일했던 수많은 과정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웃음 짓겠지요.

덧붙이는 글 | <능력자>(최민석/민음사/2012년 10월 30일/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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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2012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민음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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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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