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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하나가 녹는 시간

- 조경숙

집에서 일터까지의 걸음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 세 번 쯤 반복되는 시간
신호등을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
신발주머니 흔드는 내 아홉 살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교와 아파트 사잇길
갈래머리 멈칫멈칫 사춘기가 지나고
그 다음은 내가 이름 붙인 마이웨이,
4대악이 없는 육교 위
좌우를 한 번씩 내려다보는 건 나의 오랜 습관
양 방향을 향해 내달리는 자동차들
이곳까지 오면 얇게 입안에 남아있는 박하사탕에
혀가 베일 수 있는 시간

와지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입안에 고인 달달한 환상
오늘의 단맛은 여기까지.                       - 2016 계간『학산문학』봄호에서

화자는 지금 집에서 일터까지 걸어가고 있다. 일터는 어떤 곳인가. 내 경제생활의 기반이 되는 곳, 나의 발전이 가감 없이 도모되는 곳, 내가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현장이 되는 곳이다. 그런 일터에서 내 행복의 일정한 부분이 보장되기도 할 것이다.

일터로 향하면서 화자는 박하사탕을 하나 입에 물고 출발한다. 입안에서 서서히 녹고 있는 박하사탕, 그 단맛은 바로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일 테고 생활 속에 배어 있는 행복의 작은 알갱이들일 것이다.

어디선가 본 구절이 생각난다. "인생이란 깊은 낭떠러지 끝에 있는 꿀 한 방울 따기 위해 위태롭게 그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러시아 속담인지, 러시아 작가의 말인지 기억이 불분명하다. 박하사탕을 입에 물고 출근하는 그 짧은 시간은 바로 우리 인생을 축약하여 표현된 시간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작은 행복의 알갱이들, 그 단맛을 빨며 살고 있다.

그 단맛은 무엇인가.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것,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등교하는 것, 갈래머리 멈칫거리며 사춘기를 보내는 것, 내가 가는 길에 마이웨이라고 이름 붙여보는 것, 그리고 4대악이 없는 육교 위를 걸으며 좌우를 살피며 차량의 행렬을 내려다보는 것 등 소소한 일상 속에 녹아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 바로 행복의 알갱이, 박하사탕의 단맛이 아닌가.

화자는 매일 박하사탕 하나 입에 물고 출근하고 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행복을 녹이며 삶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일터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이와 유사한 일상은 지속될 것이다. 입 속에선 또 다른 박하사탕이 녹고 있을 것이고 김광석의 노래는 다시 들려올 것이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라면 '4대악이 없는 육교 위'라는 시행이다. 4대악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4대악에 노출되어 있다. 언제 어떻게 피해를 볼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러나 화자는 기막히게도 4대악에서 해방된 공간을 만나게 된다. 투명하게 사방이 탁 트인 공간, 평지보다는 다소 높은 공간, 그 공간을 4대악이 없는 공간으로 설정한 재치가 시를  빛나게 한다. 이 대목에서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시인이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읽는 내내 박하사탕의 단맛을 함께 맛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 조경숙: 2013『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절벽의 귀』가 있음. 인천에서 활동.



태그:#조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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