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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청와대 첫 출근 날. 그날 오전 중으로 김대중 대통령 영상메시지 원고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황당했지만 썼다. 못썼다고 엄청 혼났다. 거의 열흘간 집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쓴 책을 읽으면서 어록을 만들었다. 두꺼운 사전 분량 두 권의 김대중 어록집이 만들어졌다.

김대중 말의 새로운 해석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겉표지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겉표지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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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메디치미디어)는 김대중 어록에 김택근 작가가 주석을 단 책이다. 익히 아는 내용일 거라 생각하고 책을 들었다. 그런데 모두가 새로웠다. 누구나 아는 어록이 아니었다. 김택근 작가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주석이 주옥같다. 김 작가는 김대중 대통령 퇴임 후 줄곧 그분 곁에서 자서전 집필을 도왔다. 그전부터 그는 경향신문 명칼럼리스트로 글값이 높았다. 글쓰기 강의에 가면 '김택근 칼럼'을 필사해보라고 권할 정도로 글이 좋다.

책은 용기, 도전, 지혜, 인내, 성찰, 평화, 감사란 7개 키워드로 장을 구성했다. 각 장마다 20개 안팎의 짤막한 어록을 소개하고, 그 어록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 등을 담았다.

나는 두 번 놀랐다. 우선 내가 모르던 사실이 많았다. 3년씩이나 그분의 말과 글을 매만진 나로서도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이 나왔는지 새롭게 알게 됐다. 사실 뿐만 아니라 해석을 읽고 또 놀랐다. '아 이 말을 이렇게 보는 게 맞았구나,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감탄의 연속이었다.

또 1998년 대통령이 되어 5.18 묘역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는 왜 '대통령 김대중'이란 이름만 적었는지,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사형을 집행하지 않게 된 이유가 뭐였는지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백미는 어록 자체에 있다

김대중은 말한다. 이 땅의 젊은이에게, 방황하는 30대에게, 불안한 40, 50대에게. 몇 번씩이나 사지를 오간 그이기에 말에 힘이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지혜가 녹아 있다. 죽어서 말하는 것이기에 더 절절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고, 마지막으로 기도만 남아 있을 때, 비로소 기적이 기적처럼 오는 것이다."  
"하루에는 밤이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부가 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 동시에 현실 사회에서 성공도 해야 한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때 현실을 생각해야 하고, 현실에서 성공하려고 힘쓸 때 바르게 사는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하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 나쁜 정당에 투표 안하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 힘을 보태고,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다섯 가지로 유익한 책

김 대통령 연설문에는 '첫째, 둘째, 셋째...'가 많다. 국민의 정부 업적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2002 월드컵 때는 '일석오조'의 효과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 책의 효용 역시 다섯 가지다.

첫째, 용기를 준다. 신념이 있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우쳤다.

둘째,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취침 전에는 아내와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런지 벌써 반년은 됐다", "아내와 같이 윷놀이해서 세 번 연패해서 삼십만 원을 잃었다."

셋째, 인간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눈물 많고 드라마 즐겨 보고 아내를 사랑하는, 어릴 적에는 3대 소원을 품었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는 너무 겁이 났던 평범한 김대중을 만났다.

넷째, 혜안과 통찰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생기는지 깨닫게 한다. 당면한 문제들에 관한 해법도 제시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대여섯 번 섬광이 머리를 쳤다. 곱씹었다. 그를 닮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다섯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누가 생을 마감하며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정현종 시인의 시를 빌려 종합하자면 "이 책 한 권과 함께 그가 왔다. 그의 생각과 일생이 왔다." 그리고 그를 향한 그리움이 왔다. 잠시나마 그분을 모실 수 있어 행복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 김대중이 남긴 불멸의 유산

김택근 지음, 메디치미디어(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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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