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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이 달리고 있다.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김현태 님이 촬영한 것으로 오산천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다.
▲ 삵 삵이 달리고 있다.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김현태 님이 촬영한 것으로 오산천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다.
ⓒ 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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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이 달리고 있다.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김현태 님이 촬영한 것으로 오산천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다.
▲ 삵2 삵이 달리고 있다.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김현태 님이 촬영한 것으로 오산천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다.
ⓒ 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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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오산천 발원지, 동탄면 무봉산 자락 고즈넉한 산골짜기 작은 마을‚ 신리(만의)다. 50여 가구 남짓 농사만 짓고 살던 동네였다. 어느 순간 골프장이 두 개나 들어서고 공장들이 들어오면서 점차 낮선 동네가 되더니 급기야 동탄2신도시 택지개발구역으로 결정됐다.

주민들은 하나둘 마지못해 동네를 떠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앞산에 있는 우리 집 반려견 무덤 옆 낙엽 사이로 까만 똥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헐, 이게 뭐지? 오오옷, 우리 동네에도 고라니가 산다! 야호!!'

우리 동네에도 야생동물이 산다! 동네에서 만난 '야동' 친구들과 그들의 발자국, 똥 사진을 하나씩 기록해 왔다. 위 그림은 내가 그린 우리 동네의 야생동물들(담비 제외). 예쁘지 않은 생명은 없다.
▲ 내가 만난 우리 동네 야생동물 친구들 우리 동네에도 야생동물이 산다! 동네에서 만난 '야동' 친구들과 그들의 발자국, 똥 사진을 하나씩 기록해 왔다. 위 그림은 내가 그린 우리 동네의 야생동물들(담비 제외). 예쁘지 않은 생명은 없다.
ⓒ 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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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난 야생동물은 산 깊은 곳에만 살고 백두대간에만 사는 줄 알았다. 야생동물이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먼 나라 이야기로만 알았다. TV에서 고라니가 나와도 우리 동네가 아닌 남의 동네 얘기로 들렸다. 부럽기만 했다. 그저 내가 알고 있던 것이라곤 아프리카 세렝게티가 동물의 왕국이라는 것(결국 그 동물들을 직접 보러 배낭여행까지 갔다 왔다, 흐흐흐). 그렇다. 난 우리 동네 사는 녀석들을 잘 모르고 살았다.

집 앞에서 고라니똥을 발견한 뒤로 이사 가기 전까지 난 동네 야생동물 조사를 다니기 시작했고 모든 야생동물의 흔적을 하나둘 기록으로 남겼다.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 삵, 족제비, 무산쇠족제비, 청서(청설모), 다람쥐, 멧밭쥐, 두더지, 메토끼(산토끼), 멧돼지 등등. 그들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멸종 위기종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들도 나와 다름없는 하나뿐인 생명이고 우리 동네 원주민이었기에….

동탄 야생동물의 '대변인' 삵

그중 삵은 우리나라 멸종위기종 야생동물 2급으로 개발 앞에서 유일하게 법적 보호를 받는 포유류이자 야생동물의 대변인이다. 다른 야생동물도 다 소중하지만, 법 앞에서는 삵만 인정되기에 다른 야생동물들은 그나마 삵의 서식지를 보전해 주면 겨우 그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불합리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삵과 그 서식처를 지켜내는 걸로만 우리(화성환경운동연합)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협의해야 했다.

사후환경조사로 이어지면서 동탄신도시 조성 지역에서 삵의 흔적은 계속 발견됐다. 그중 한 곳이 오산천이다. 야생동물들은 산에서도 살지만 사실은 강이나 하천, 둠벙 같은 습지를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자연 습지는 먹이사슬이 잘 발달한 생명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삵이 서 있다. 우아하다. 삵의 특징인 앞 이마의 두 줄 줄무늬가 선명하다.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김현태 님이 촬영한 것으로 오산천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다.
▲ 삵3 삵이 서 있다. 우아하다. 삵의 특징인 앞 이마의 두 줄 줄무늬가 선명하다. 한국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 모니터링위원장 김현태 님이 촬영한 것으로 오산천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다.
ⓒ 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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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산천 삵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하천둑길 한복판에서다. 삵은 호랑이나 늑대 등의 중·대형 포유류가 사라진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상위 포식자다. 그런 이유로 배설물을 보란 듯이 길 한복판에 깔끔하게 놓아두니 드물지만 눈에는 잘 띈다. "나 여기 산다, 여긴 내 영역이니 예의를 지켜주시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난해 12월쯤, 동탄에서 생태지킴이 활동을 하는 '수수꽃다리' 활동가께서 사진을 보내오셨다. 삵처럼 보이는 녀석이 백로를 사냥하는 모습을 봤으니 언제 한번 가보자고 하셨다.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지난 4일 수수꽃다리와 화성·오산 환경운동연합 회원 등 여섯이 뭉쳐 오산천 조사에 나섰다.

버드나무와 갈대숲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그곳은, 주변이 산책로와 동탄2신도시 공사장으로 변했고 일부 불법 낚시꾼들이 드나듦에도 '은밀한 곳'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 경관상 좋지 않다고 베어 버리는 덤불이 야생동물들에겐 재빨리 숨을 수 있는 좋은 은신처이자 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마침 긴 추위였음에도 그날은 봄바람이 불었다. 아줌마들 마음도 설렌다. 똥 냄새야 풍겨라! 야호, 룰루랄라다!

우거진 갈대숲을 비집고 들어선 그곳, 얼마나 걸었을까? 버드나무와 갈대숲 사이로 고라니 똥이 즐비하고 그 옆으로 삵똥이! 쿵쾅쿵쾅. 가슴이 뛴다. 우와, 여기요. 여기! 대박!! 그 첫 만남을 시작으로 그들이 만든 갈대숲길 중간중간 녀석의 이쁜 흔적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감동 또 감동. 똥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킥킥.

'그냥 그대로 살게 두세요'라는 말이 귓가에

오산천에서 만난 삵 똥.
▲ 삵 똥 오산천에서 만난 삵 똥.
ⓒ 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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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오산천에 삵이 산다!!"

그동안 오산천에 삵의 흔적이 꾸준히 보고됐으나 이번 조사로 더욱 확실한 증거를 얻어냈다. 이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해야 하는데…. 당분간 우리끼리만 알고 우리만의 기쁨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세울 때까지….

'여긴 조상 대대로 우리의 서식지고 우리 고향입니다. 우리에겐 왜 아무도 묻지 않나요? 우리도 여기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바라는 건 없어요. 우린 보상금도 안 받을 거예요. 그저 맘 편히 그대로 살게 해주세요. 우리가 바라는 건 그뿐입니다. 당신들도 우리와 같은 동물이자 자연의 일부 아닌가요? 우린 함께 살아야 할 이웃입니다.'

삵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질척한 공사장 바닥에 찍힌 고라니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위한 환경 단체의 글귀를 읊조린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원형이 그나마 보존된 오산천. 습지는 생명의 보고이다. 수많은 생명체가 물을 마시고 쉬어 가는 곳이다. 갈대숲이 지저분해(?) 보일수록 건강하다.
▲ 원형이 보존된 오산천 원형이 그나마 보존된 오산천. 습지는 생명의 보고이다. 수많은 생명체가 물을 마시고 쉬어 가는 곳이다. 갈대숲이 지저분해(?) 보일수록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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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천 조사하던 날. 봄바람이 불었다. 똥 냄새야, 풍겨라!!
▲ 오산천 조사하던 날. 오산천 조사하던 날. 봄바람이 불었다. 똥 냄새야, 풍겨라!!
ⓒ 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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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 있어서는 더없이 삭막한 곳일 따름이다." -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글' 중에서


태그:#동탄신도시, #야생동물, #화성환경운동연합, #삵, #멸종위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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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밥하고 매일 빨래하는,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 생명이 존중받는 지속 가능한 세상을 꿈꾸며 화성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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