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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살, 6살 두 딸을 키우는 동안 수없이 읽었던 그림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빠의 마음은 점점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번 글은 '육아에 지친 아빠'의 시선으로 쓰고, 직접 남편의 속마음도 들어봤습니다. 

"자긴 왜 요리는 안해?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 그것까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뭐? ㅋㅋㅋ 영리하네."

떡만둣국을 맛있게 먹던 아내가 웃는다. 가끔 해주는 별식을 아내는 정말 맛있게 먹는다. 그 미소에 넘어가면 안 된다. 진짜 여기서 '요리까지' 하면 안 될 것 같다. 지금도 하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평일 아침 두 딸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아내 직장이 집과 너무 먼 탓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내가 오전 6시 반에 집을 나선다. 그 말인즉슨, 내가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입히고 먹여 출근해야 한다는 말이다(아내가 일찍 출근하니 일찍 퇴근하는 건 당연한데, 왜 내 일상의 변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걸까).

아내 없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겐 '뽀로로'가 있지 않나. 덕분에 애들이 눈만 뜨면 텔레비전 앞으로 간다고 아내에게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아내가 두 아이와 출근전쟁을 한 번 치르면 생각이 달라질텐데. 그런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시큰둥하다. 더이상 뽀로로에 열광하지 않을 만큼 커버린 아이들. 아침 출근길 준비가 배로 힘든 이유다.

어린이집에 있는 둘째는 장모님이 데려오고, 큰애는 내가 퇴근하면서 학교 근처에 있는 본가에 들러 집에 데려온다. 내 직장이 집과 가까운 탓이다. 집에 오면 잘 때까지 제2의 근무가 시작된다. 퇴근 후 "엄마 오늘 좀 피곤해" 하며 침대에 드러눕는 아내의 단호함이 나에겐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보통 내게 엉긴다. 내가 거절할 리 없다는 걸 잘 안다는 듯. 하지만 이런 몸놀이가 버겁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나이가 드는지 허리도 자꾸 아프고, 운동을 해도 몸이 예전같지 않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급기야 아내에게 퇴근 후 운동시간을 '요구했다'. 그래봐야 집 근처 공원 한 바퀴 도는 게 전부지만, 그게 어딘가. "책 읽어 달라", "숨바꼭질 하자", "비행기 태워달라", "이거 좀 고쳐 봐라" 등등등 어떤 요구도 받지 않는 나 혼자만의 시간인데. 아참, 운동 나갈 때 음식물쓰레기도 꼭 가져 나가야지!

주말이어도 쉬지 못하는 건 아내나 나나 마찬가지. 주말인데 왜 아이들은 늦잠도 안 자고, 낮잠도 안 자고, 심지어 늦게 자는 걸까. 아내가 한 달에 한두 번씩 회사에 갈 때마다 솔직히 좀 부럽다(우리 회사는 비용 감축을 이유로 주말 근무를 없앴다). 나도 좀 쉬고 싶다고!  그래서다. 내가 아내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과 한몸이 되는 건. 일요일의 마무리는 분리수거. 일주일 동안 아내가 정신없이 버린 쓰레기를 주말마다 구분해 버리는 것도 내 일. 이렇게 일주일이 간다.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던 적도 있었는데...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림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를 마르고 닳도록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는데... 두 딸을 키우는 지금 솔직한 내 속마음은 이렇다.

힘들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우리 아빠가 최고야> 겉표지
 <우리 아빠가 최고야> 겉표지
ⓒ 킨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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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최고야.
무서워 하는 게 하나도 없지
늑대도 돌아설 만큼
└ 아빠의 속마음 ☞ "둘째가 무서워. 아빠는 무서워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믿는 둘째가 무서워."

거인과 레슬링도 할 수 있고
운동회날 다른 아빠들이랑 달리기 시합을 할 때도 문제 없이 이기는 우리 아빠는 최고야
└ 아빠의 속마음 ☞ "이런 거보다 내 자신을 위한 운동이 필요해."

아빠는 말 만큼이나 많이 먹고 물고기 만큼 헤엄을 잘 친다.
고릴라 만큼 힘이 세고
하마 만큼이나 늘 기분이 좋지 우리 아빠는 최고야.
└ 아빠의 속마음 ☞ "사실, 체력의 한계를 느껴."

춤고 멋지게 추고
노래도 굉장히 잘 부른다
축구는 또 얼마나 잘 하는데
그리고 나를 얼마나 웃겨 주는지 몰라
└ 아빠의 속마음 ☞ "아이들이 나를 또 많이 웃겨주지. 이것이 버티는 힘이기도 하고."

나는 우리 아빠가 정말 좋다.
왜 그런지 알아?
아빠가 나를 사랑하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 아빠의 속마음 ☞ 이렇게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너 자꾸 이러면 혼낼 거야" 하는 내 말에 둘째 왈 혼내는 사람 싫단다. 언제나 '아빠바라기'일 줄 알았던 아이가 이제는 상황에 따라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한다.

못하는 게 없지 않지만, 못하는 게 없는 아빠도 힘은 들 거라 믿는다. 다 그렇게 아빠가 되는 거겠지. 나도, 당신들도.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 실렸습니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최윤정 옮김, 킨더랜드(킨더주니어)(2007)


태그:#우리 아빠는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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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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