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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교육청에서 관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권고한 '이상한' 지침이 하나 있다. 정규 교육과정 외 교과 활동에 대한 운영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방과후나 방학 중에 하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비롯해, 성적을 기준으로 한 특별반 편성·토요일 등교 등을 학교가 아이들에게 강제하지 못하도록 권고한 지침이다. 그중 방학과 관련된 부분만 잠깐 살펴보자.

등교 시간은 방학 전과 동일하고, 하루 보충수업은 최대 5시간·자율학습은 오후 6시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물론,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현재 고2 아이들은 학기 중과 마찬가지로 오후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고3 선배들의 수능이 끝나면 고2는 곧장 수능 대비 체제로 탈바꿈하게 되니, 사실상 고2 아이들에겐 방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학교운영위원회 규정에 언급된 것이어서 교육청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학교장의 권한에 가깝다. 자칫 교육청이 일선 학교장의 학교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그러한 우려에도 교육청이 나서서 고등학교 방학의 시시콜콜한 일과까지 지침으로 만들어 내려보낸 이유는 뭘까.

교육청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학교마다 아이들의 방학이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방학 일과가 학기 중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고3의 일정은 사실상 학기 중과 동일하고, 고1·고2는 야간에 자율학습이 없는 것만 다르다. 워낙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진 탓인지, 교사는 물론 아이들조차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고삐 풀린' 방학 일과, 과연 누구 때문일까

방학 하자마자 보충수업... 고등학생은 괴롭다.
 방학 하자마자 보충수업... 고등학생은 괴롭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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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방학 일과는 시나브로 학교 간 경쟁을 불러왔다. 누가 더 보충수업을 많이 하고 자습 시간이 더 긴지, 서로 눈치 보며 방학 중 일과를 조정하는 모양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보충수업도 자율학습도 대개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반강제적으로 이뤄진다. 언뜻 학교들 사이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치 '쥐어짜기'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지난해 초 몇몇 광역단체 교육청의 주도로 등교 시간을 30분 늦춘 것이 화제가 됐다. 당시 대다수 학교의 등교 시간이 오전 8시 이전이었던 현실과 일반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과 동일하게 9시로 늦추자는 주장이 토론을 거쳐 두루뭉수리 '중간'으로 봉합됐다. 바깥에서 보자면 별것 아닌 일로 여겨졌을 테지만, 아이들과 교사들에게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학생이 하루의 2/3 가까운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나라는 이 세상엔 없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정작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로 다들 여겨왔기 때문이다. 수업하든, 자습하든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고, 잠을 자도 집이 아닌 학교에서 자라는 사뭇 억지스러운 말조차 수긍하게 됐다. 아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 여전히 '학생'이고, 자의든 타의든 학교를 벗어나는 건 '낙오'로 취급된다.

방학 중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은 고사하고, 고작 등교 시간 30분 늦추는 것조차 이런저런 갈등이 빚어질 만큼 학교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아침을 거르는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챙겨 먹이자는 취지일 뿐인데도 적잖은 학교에서 부작용과 편법 운운하며 몽니를 부리기 일쑤였다. 그래 봐야 하교 시간만 늦춰질 뿐이라거나,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면 아이들만 손해라는 둥 황당한 주장들이 반론이랍시고 회자됐다.

이번 겨울방학도 변함없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은 이어진다. 올해 고3이 되는 한 아이는 "겨울이고 여름이고 고3 때는 방학이 없다는 건 중학교 시절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설과 추석 연휴 때 단 하루 쉬는 것조차 수험생으로서 부담스럽다"고 말하며, 집안의 맏이라는 그의 부모님도 올해에는 그러려니 하신단다. 자녀가 단지 고3이라는 이유로 명절 연휴를 학교에서 보내는 건 당연하다는 거다.

지난달 말 기말시험이 끝난 즈음 몇몇 학부모들에게 물었다. "방학 때조차 자녀를 학교로 내몰면 가족들끼리 언제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고. '아무리 유능한 교사도 부모의 역할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무라듯 따졌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표현은 더없이 완곡했지만, 요지는 이랬다.

"아이들의 방학 일정을 학교가 알아서 결정해 놓고, 왜 애꿎게 학부모들을 탓하는 거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동료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방학 중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감독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십중팔구 학부모들에게서 찾는다. 많은 학부모가 극성스럽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사 중에는 방학에도 출근해서 보충수업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다. 대체 이 어이없는 인식의 괴리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방학 중 일과를 결정하는 건 학교운영위원회(아래 학운위)다. 학부모 위원, 지역 위원, 교사 위원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학운위를 이태 전 경험한 적이 있다. 부서별로 안건이 상정되고 위원들끼리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가운데 협의를 거쳐 결정되는 구조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방학 중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대해서는 시수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면 그 어떤 문제 제기도 없었다.

교사 위원이 제시한 방학 중 교육 계획은 논의할 안건이라기보다 그냥 확정된 '통보'에 가까웠다. 당시 학부모 위원은 전체 수업 시수가 얼마이고 언제가 '진짜' 방학인지만 물었을 뿐, 방학 중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은 늘 '상수'였다. 물론, 학운위 자리에서 그 누구도 학교는 '학부모의 요구 때문'이라고, 학부모는 '학교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어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 학운위의 대표성은 인정하더라도, 학부모와 교사 다수의 생각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당연히 교원 위원인 학교장의 결정이 그대로 관철되는 게 다반사인 데다, 학부모 위원들 역시 다수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기는커녕 그저 한 명의 '옆집 엄친아의 엄마'일 뿐이었다. 마치 지금 우리 국회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방학에도 종일 공부, 학생에겐 선택권이 없다

"정작 방학에도 학교에서 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 창구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마저도 없는 학교가 태반이지만, 사후약방문처럼 방학이 끝나고 보충수업의 내용을 평가하는 한 장짜리 강의 평가서가 고작이다."
 "정작 방학에도 학교에서 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 창구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마저도 없는 학교가 태반이지만, 사후약방문처럼 방학이 끝나고 보충수업의 내용을 평가하는 한 장짜리 강의 평가서가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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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방학에도 학교에서 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 창구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마저도 없는 학교가 태반이지만, 사후약방문처럼 방학이 끝나고 보충수업의 내용을 평가하는 한 장짜리 강의 평가서가 고작이다. 어른들이 결정한 방학 일정에 대한 아이들의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방학 중 학교를 나오지 않겠다는 건,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문제아'라는 낙인을 견뎌야 하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어느덧 아이들은 방학을 또 하나의 '학기'로 여긴다. 누군가는 "고등학교의 1년은 네 학기로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수능을 마친 고3 아이가 친한 후배의 공부 전략을 조언하는 자리에서 엿들은 이야기다. 대학입시는 결국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그의 말에서, 단 한 번도 방학을 누려보지 못한 고등학생의 고단한 삶이 느껴졌다. '배움을 쉰다'는 뜻의 방학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져 버렸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이 매듭을 끊어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문제아'라는 낙인을 감내해야 풀릴까. 아니면 오매불망 자녀의 미래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학부모들과 파블로프의 개처럼 대학입시의 실적에만 반응하는 학교장들의 몫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우선 나는 아이들·학부모·학교장 모두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교사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말처럼 쉽진 않다는 것을 안다. 뿌리 깊은 관행의 굴레 속에 교사들도 시나브로 무기력해져 버렸다. 명색이 아이들 앞에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교사가 '할 수 있다'는 말보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옳고 그름 사이를 널뛰듯 헤매며 좋은 게 좋다는 불가지론에 빠져들고 있다. 더욱이 학부모들의 경우처럼 교사들 역시 동질적인 집단으로 뭉뚱그릴 수도 없다.

방학이지만 방학이 아닌 오늘도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관행처럼 보충수업의 이름으로 교단에 선다. 퀭한 눈의 아이들은 수업받기 싫은 빛이 역력하지만 결코 관행을 이길 순 없다. 그 사이에서 배움이 일어나긴 할까 싶다. 다시 교육청이 하달한 지침을 들여다본다. 보면 볼수록 한 편의 '코미디 대본'처럼 느껴진다.


태그:#방학, #보충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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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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