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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지나갑니다. 정말 정신없이 지냈는데 벌써 연말이라고 합니다. 이뤄놓은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연말이라고 하니 허무함까지 드는 게 사실이네요.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자고 새해마다 다짐하는데 왜 새해 다짐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송년' '망년' 이맘때면 꼭 한 번씩은 나오는 말이죠. 헌데 요즘엔 '망년'이란 말을 잘 안 쓰는 것 같습니다. '망년(忘年)'은 가는 한 해를 다 잊고 새해를 맞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이를 우리는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연말을 '놀고 먹고 마시자' 분위기로 만들었죠. 누군가는 '망년(望年)', 즉 새해를 바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자고 하지만 역시나 우리에게는 한 해를 잊자는 '망년'으로 인식하고 있지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자리도 쉽지 않습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이전처럼 먹고 마시는 분위기가 나오지 않고, 친구들도 '스케줄'이 있다보니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연말 분위기는 안 나고 뭔가 풀고픈 마음이 들 때면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떠오르기도 하죠.

생맥주라고 하면 흔히 더운 여름날 밤을 떠올리지만 겨울에 시원하게 마시는 맛도 일품입니다. 가는 해의 아쉬움을 맥주 한 잔 쭉 들이켜며 잊어버리는 느낌이 시원함을 더하죠. 여기에 간단한 안주가 곁들여지면 부러운 게 없습니다. 이런 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마음 편한 '사치'일수도 있지요.

겨울에도 생맥주는 우리를 시원하게 한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생맥주와 노가리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생맥주와 노가리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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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는 한동안 '골뱅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요즘엔 '노가리'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이제 을지로에는 '노가리 골목'이 들어섰고 아예 '노가리 거리'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여름날엔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지요. 'OO호프'라는 이름의 맥줏집들이 생맥주와 노가리, 치킨, 골뱅이 등을 앞세워 술꾼들을 유혹합니다.

이 을지로를 노가리의 거리로 만든 집이 있습니다.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실 'OO베어'이지요. 1981년에 세워진 조그만 맥줏집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이 집을 바탕으로 노가리를 파는 맥줏집들이 늘어났고 그렇게 을지로는 노가리의 거리가 된 것이지요.

겨울이라고 손님이 줄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특히 겨울에는 조그만 홀에서만 손님을 받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자리도 못 잡고 돌아가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오히려 혼자 온 사람은 이익입니다. 빈자리 하나만 있으면 거기에 앉아서 맥주와 노가리를 먹을 수 있지요.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가 1000원, 맥주 3000원. 4000원이면 한 사람이 먹고 마실 수 있는 맥주와 안주가 마련됩니다. 여기에 이 집 특유의 고추장을 곁들이면 맥주가 금방 비워지지요. 결국 '맥주 한 잔만 마시자'는 굳은(?) 결심은 고추장과 노가리 맛에 조금씩 흔들리고 결국 한 잔을 더 청하게 됩니다.

 노가리를 더 유명하게 한 '마성'의 고추장
 노가리를 더 유명하게 한 '마성'의 고추장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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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고추장이 워낙 맛있다 보니 한때는 '라면수프'를 넣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혀의 느낌으로는 수프는 없습니다. 수프를 넣었다면 먹을 때는 좋지만 뒷맛이 깔끔하지가 못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그 고추장을 먹으러 맥줏집을 오는 수고를 안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집에는 노가리만 파는 게 아닙니다. 멸치·땅콩 등과 함께 번데기(4000원)도 있지요. 번데기는 통조림을 가스불에 데운 후 이 집 고추장을 섞어 내놓습니다. 의외로 시원한 맛이 나서 맥주를 마신 이들이 속을 달래기도 하고, 남은 노가리를 국물에 찍어먹기도 합니다.

"늦게까지 술 마시면… 따뜻한 밥 지은 아내는?"

 4천원에 파는 번데기. 고추장이 들어었어 맛이 시원합니다
 4천원에 파는 번데기. 고추장이 들어었어 맛이 시원합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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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는 단골에게는 원래는 1000원을 줘야 하는 땅콩이나 멸치를 특별히 서비스해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 집에서 무제한으로 맥주를 먹게 되면 곤란합니다. 원래 이 집의 문 닫는 시간은 오후 10시였습니다.

"그 시간이 넘도록 술을 마시면 따뜻한 밥 지어놓고 기다리는 아내는 어찌 되며 아이들이 술 취한 아버지를 존경하겠어?"

사장님께서 과거에 하신 말입니다.

이를 다 알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술 먹고 주정부리는 '진상' 손님이 나오지 않습니다. 낌새가 있으면 스스로 돈을 내고 자리를 나가지요. 30여 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보니 이 집만의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적당히 마시고 자리를 파할 수 있지요. 지금은 오후 11시까지로 늘어났습니다.

한겨울,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어진 시점에서 문득 온기가 그립다면 홀에서 가볍게 맥주와 노가리를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맥주 한 잔 쭉 들이켜고 노가리를 찢어 뜯으면서 한 해 안 좋았던 일들 다 풀어버리시고 내년은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집으로 향해보죠. 내년은 분명 여러분들의 해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요.

추신 : 이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최근 '2015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인쇄소 골목 사람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의 공간이 이제 역사의 공간이 된 셈이네요. 우리가 그리는 곳은 번쩍이는 건물만 있는 대도시보다는 허름하지만 사람의 향기가 나는 곳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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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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