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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결위 회의장에 부착된 비공개 회의를 알리는 안내문.
▲ 비공개 안내문 예결위 회의장에 부착된 비공개 회의를 알리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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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세금을 거둬서 집행하는 행정부의 예산안을 심의 의결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연말 대한민국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직자들과 선출직 의원들이 각기 부여받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와 견제의 움직임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상주시 예산 6천여 억 원을 심의, 의결하는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시의원들의 활동을 직접 보겠다는 시민들은 의정참여단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해왔다.

지난 수년간 무리 없이 진행되던 상주시의회 비공개 방침에 따라 의정참여단의 방청이 금지되면서, 대의 민주주의는 파행을 겪어야 했다.

예결위 '비공개 결의' 일방 통보한 시의회

지난 12월 16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상주시의회 예산결산위원회(이하 예결위)는 전날 회의 비공개를 의원들끼리 결의하고 이를 의정참여단에 공지했다. 일방적 통보였다. 의정참여단과 시민사회는 당일 오전 시의회 예결위원회 방청석에서 방청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의정참여단 시민들이 비공개 방침에 항의하면서 방청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방청석의 의정참여단 시민들 의정참여단 시민들이 비공개 방침에 항의하면서 방청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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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선포를 한 안경숙 예결위원장은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기로 결의했다"며 의정참여단 시민들에게 퇴장을 요구했으나 시민들은 방청권보장과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종이를 들고 자리를 지켰다. 파행과 대치의 시작이었다. 의정참여단은 지금까지 수년 간 허용해 오던 의정활동을 올해 들어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몇 차례 양보했는데 또 다시 일방적 비공개로 풀뿌리 민주주의 기초를 흔드는 시의회의 행태에 좌시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시의원들 사이에서도 입장은 달랐으나 의원들은 비공개 방침으로 결의를 했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위원장의 퇴장 요청에 공무원들이 움직였으나 우려했던 몸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례대표 아무개 시의원은 "무슨 권리로 시의원들의 예산 심의를 방해하느냐? 그럴 거면 시의원이 돼서 들어오라"고 의정참여단을 비난했고 시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정참여단이 퇴장 요청에 불응하자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했고, 의원들은 다시 아래층 회의실로 내려갔다. 위원장은 시민들 앞에서 이번에는 이미 비공개로 결의된 사안이기 때문에 입장을 고려해서 나가줄 것을 요청했으나 시민들은 이번에만 비공개가 아니라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믿을 수 있냐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기자가 "이번에만 비공개인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회의를 비공개로 할 것이냐?"고 질문하자 "앞으로 계속 비공개로 하기는 어렵지 않겠어요.."라며 확답을 비껴갔다.

의정참여단이 퇴장에 불응하면서 예결위는 수차례 정회를 해야 했다.
▲ 정회한 예결위 의정참여단이 퇴장에 불응하면서 예결위는 수차례 정회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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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리에 앉은 예결위가 비공개 입장과 퇴장을 요청했으나 시민들은 침묵으로 거부했고, 시의원 한 명은 이런 상태에서 심의를 할 수 없다며 자료를 싸들고 퇴장해 시민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파행과 대치가 길어지면서 점심시간이 되자 시민들은 교대로 점심을 먹으며 자리를 지켰다. 이아무개 시의원은 비공개로 진행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의정참여단의 무책임한 발언과 방청 내용을 사적으로 밖에 유포했다며 비공개의 책임을 시민들에게로 돌렸다.

정아무개 의원은 "누가 당신들에게 권리를 주었냐? 나도 시민운동, 농민회 활동하면서.." 운운하자 방청석의 한 시민과 격한 몸싸움을 벌이기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의정참여단의 방청 태도를 비공개 원인으로 돌린 시의회

정 의원은 비공개로 하는 이유에 대해 "의정참여단이 회의장에서 고성을 지르고 민감한 예산 심의과정에서 웅성거리며 반응을 보이는 등 방청의 태도 문제와 의원들과의 개별적 다툼 등 여러 요인이 얽혀있다"고 의정참여단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자가 "방청과정의 사소한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명분이 약한 것 같다"고 지적하자, 정 의원은 "본인 역시 의정참여단이 성숙한 자세로 임하면 공개를 막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정참여단은 "민감한 예산 심의에서 무리한 반응을 보인 적은 없으며 해당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불법과 관련한 내용을 질의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른 적은 있지만, 그것이 그리 큰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의정참여단에서 활동한 김아무개 씨는 방청과정에서 약간의 반응과 소리는 있었다고 인정했다.

16일 오후 2시를 넘기면서 의정참여단 유희순 단장은 예결위원장에게 "그렇다면 비공개에 대한 의원 각자의 입장을 회의장에서 표명해준다면 우리도 오늘은 물러서겠다"고 전격 제안을 했고, 위원장은 알았다며 다시 회의장을 나섰다. 의정참여단 회원 중 일부는 "어떻게 회원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적 제안을 하냐?"며 잠시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기도 했다.

안경숙 예결위원장과 동료 시의원이 시민들 앞에서 비공개를 받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설득하는 시의원 안경숙 예결위원장과 동료 시의원이 시민들 앞에서 비공개를 받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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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다시 시작한 예결위가 "의원 개개인의 입장을 공표하는 것은 어렵다"며 다시 비공개 퇴장을 요구하자 의정참여단은 퇴장을 재거부했고 대치의 끝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다시 정회가 선포되고 의정참여단은 내부 회의를 거친 끝에 향후 공개 방침에 대한 성의 있는 답변을 위원장이 회의장에서 발표하면 이날은 농성을 푸는 걸로 마지막 제안을 했고 회의는 다시 속개됐다.

의정참여단 있었기에 의회 바뀌었다는 시의원의 고백

이 자리에서 안경숙 예결위원장은 "향후 의정참여단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서로가 상생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며"며 에둘러 입장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언급 없는 위원장의 발표에 다소 실망을 감추지 못한 시민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6시간의 대치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대치가 계속될 때 이 과정을 취재한 기자는 단 한 명이었다. 열 곳이 넘는 언론사가 상주시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기자수첩과 카메라는 어디에서 숨을 쉬고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의정참여단이 있었기에 의원들의 모습이 정말로 바뀌었다. 그들의 활동에 고맙게 생각 한다, 회의는 공개로 하는 게 맞다"고 익명을 요구한 시의원은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존에 해 오던 방청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오늘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 방청권은 변함없는 시민의 권리라는 대의명분이 있기에 길게 보자는 낙관론이 오가면서 의정참여단은 상주시의회를 나섰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이유로 서로 간에 쌓인 감정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무력화 시킨 시의회, 이에 맞서 다시 싸움해야 하는 시민사회, 30년이 지난 풀뿌리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2015년 겨울의 하루였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역신문 상주의 소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상주시의회, #비공개, #의정참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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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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