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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은 종교모임이 있는 관계로 나는 퇴근길에 덕이를 데리러 덕이 회사에 가곤한다. 덕이의 직장생활도 궁금할 뿐더러 덕이는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일요일 종교모임을 아주 좋아하고 의미있게 여긴다. 아마도 모이는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가능하면 그 가르침대로 편견없는 영적 형제·자매들의 태도 즉, 상대에 대한 존중심과 배려 그리고 진실하고 구체적인 격려와 지지로 세워주는 말과 태도가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성원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성경 낭독하는 덕이의 순서가 됐을 때였다. 앞에 나가 발표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처음엔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히브리어 이름들과 지명들을 또렷하게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들 앞에서는 그동안 '못하는 아이, 사람'이였으니 실제 상황인 대중앞에서 올바른 발음과 적합한 음량으로 유창하게 말하기는 너무나 먼 길로 여겨졌었다.

순서에 의해 덕이가 처음에 낭독을 배정받고는 배정받은 날(약 낭독 3개월 전)부터 매일밤 잠자기 전에 낭독 성구를 3회씩 소리내어 읽고 그것을 스스로 녹음하여 직접 들어보게 하였다. 그럴 때 스스로 어느 부분에 의미 강세가 필요하고 어느 부분에 정확한 발음과 멈춤이 더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매일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을 했다.

그날도 수요일로 낭독발표 당일이 되었다. 퇴근하는 덕이와 집에 오는 중 차안에서 나는 덕이의 심정을 물어보았다.

고모 : "덕아~. 그동안 3개월 동안 매일 밤마다 피곤했을텐데도 잠들기 전에 세 번씩 연습하느라 수고했어. 그동안 연습한 그대로 하면 될 것 같아"
: "몰라."(지금 발표하는 것도 아닌데 약간 긴장하는 듯하다)
고모 : "고모도 처음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많이 긴장되고 떨렸었어."
: "그래도 고모는 잘하잖아."
고모 : "지금은 처음보다 훨씬 덜 떨리고 자연스럽긴 하지만 처음엔 나도 말도 못할정도로 심장이 콩닥거려서 옆에 있는 사람이 들릴 정도였어. 그리고 덕이처럼 그렇게 3개월 연습을 하거나 그것을 녹음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거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었거든."
: "나는 3개월 연습했는데..."

고모 : "그렇지, 덕이는 3개월 동안 매일 잠들기 전에 세 번씩 연습했지."
: "응 맞아"
고모 : "덕이가 나보다 훨씬 잘할 것 같은데? 물론 나는 성경 낭독은 아니였지만~."
: "떨려."
고모 : "우리 우황청심원 몇 개 사가지고 갈까?"
: "그게 뭔데?"
고모 : "떨릴 때 진정시켜줘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 "응, 사~~. 많이."

약국에 들러 우황청심원 열 개 들이 한 케이스를 샀다. 집에 도착 후 저녁식사하고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집에서 출발하기전에 덕이는 우황청심원 한 알을 먹었다. 회관 도착 후 자리에 앉으면서 나는 덕이 옆에 앉았다. 덕이 차례가 돼 앞으로 나아가 연단에 올라 낭독을 시작했다.

순간 더운 날씨로 인하여 켜 놓은 회관엔 에어컨과 연단 옆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풍기 바람에 덕이가 낭독 중인 성경 페이지가 스르르 몇장 넘어갔다(낭독할 때에 오른손엔 성경을 들고 왼손을 차렷 자세로 내려놓고 한다).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이였다. 동영상을 촬영중이던 나는 순간 심장이 멋는 듯해 눈을 감았다. 내 머리에는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지'라며 눈 감은 채 내 손에 동영상은 그대로 들고 기다기고 기다리면서 '제발 낭독 성구 페이지를 잘 찾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덕이가 다시 이어서 낭독을 시작했다. 원래 낭독은 4분 30초안에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훈련을 하고 연단에 올라갔었으나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덕이의 낭독에 대하여 "성경 페이지가 선풍기 바람에 넘어갔었으나 침착하게 잘 찾아서 계속 낭독해주었고 목소리 음량도 적합하도록 잘해주었습니다, 이는 얼마나 연습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라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셨다.

낭독후 내 옆에 돌아와 앉은 덕이를 내 손으로 '잘했다'는 의미로 등을 쓰다듬어 주는데 덕이가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입고 있던 양복 겉까지 축축했다(낭독할 때는 4계절 모두 양복을 입는다).

'그랬구나 이 정도로 긴장을 했었구나' 싶었고 그럼에도 차분하게 끝까지 마무리한 덕이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모든 집회를 끝난후 집에 돌아와 함께 덕이가 낭독한 동영상을 보았더니 선풍기 바람에 넘어갔던 페이지를 다시 찾는 시간은 겨우 30초였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그때는 3시간 이상으로 여겨졌었다. 동영상을 함께 보고 난 후에 덕에게 물어보았다.

고모 : "고모가 볼 때 처음인데도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잘한 것 같아."
: (반응이 없다)
고모 : "아까 선풍기 바람에 성경이 몇장 넘어갈 때 순간 나는 숨이 멋는 줄 알았어."
: "나두~."
고모 : "덕이도?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차분하게 다시 찾아서 마무리까지 잘 낭독할 수 있었어?"
: "외웠어."
고모 : "외웠다구?"
: "응 밤마다 연습하다가 외웠어."
고모 : "아~ 그랬구나. 그래도 외우기가 쉽지 않은 분량이였는데?"
: "외웠어."
고모 : "연습하다 보니까 외워졌다는 거니?"
: "응"
고모 : "와우 그랬었구나~. 덕아, 대단해. 정말 잘했단다."
: (씨익~ 미소가 전부)

이렇게 나는 덕이가 발표하는 모든 내용을 동영상으로 담아 그것을 덕이와 함께 토론하곤 했다. 그로부터 5년이 된 오늘날에는 회중성원들이 발표할 때 마이크를 전달해주는 봉사를 하면서 매주 그 중에 다룰 성경을 각자 연구해온 것을 함께 토론하는 중에 덕이도 미리 예습과 연구해간 내용을  본인 말로 토론하고 있다.

덕이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한글을 몰라도 만화의 그림만 본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한 권씩은 직접 서점에 들러 사서 봤다. 나중에 한글을 알게 된 뒤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습관이 오늘의 발전 가능한 덕이가 된 밑거름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참으로 고마운 것은 무엇을 '해보자'고 권했을 때 '싫어' '안 할래'라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잘 따라와준 덕이의 곱고 온순한 심성이였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나는 그동안 주위사람들에게 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던 가정사를 본 연재기사로 쓸 용기를 내게 됐다. 그런 착한 덕이에게 그동안 잘 따라와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책으로 선물해 주려고... 사랑스럽고 멋진 남자 덕이.


태그:#변화의 가능, #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랑, #착한마음,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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