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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고재로 창을 낸 곳 위에 
매달은 조각보
▲ 호미가 내부 한옥고재로 창을 낸 곳 위에 매달은 조각보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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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각보라 일컫는, 전통 규방공예의 맥을 이어가시면서 동시에 차(茶)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는 호미가(好美家)의 주인 권순미씨를 지난 12월 중순 만났다.

시부모님 병간호 하면서 접하게 된 바느질

- 권순미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선생님과 호미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해주세요.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60이 조금 넘었고요. 보시다시피 여자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바느질과 함께 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으로 은퇴한 남편과 함께 새로운 인생 2막을 개척하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2년 전, 이곳에다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호미가(好美家)의 작명 계기는 일반적인 상호가 싫어서 제 남편 이름인 박자 호자 현자의 가운데 좋을 호와 제 이름인 권순미의 끝자인 아름다울 미자를 사이좋게 하나씩 따서 남편과 함께 상의해 지은 겁니다. 한 마디로 좋고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입니다."

▲ 호미가에서 인터뷰 인사 말씀 하시는 권순미님
ⓒ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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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가, 이름이 참 소박하고 예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베스트 10에 뽑힌 광릉수목원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은 어떻게 구상하시게 된 건가요? 흔한 공방 같지가 않습니다. 공간 자체가 예술입니다.
"예전부터 내 평생에 공방 하나는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나도 이런 곳에 자리를 하나 마련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게 바느질을 배우는 수강생 한 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건강상의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로 급하게 이 집을 처분해야겠다고 하기에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로서는 용단을 내린 거고, 그때 남편이 반대하지 않고 흔쾌히 동의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 어떤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드신 건가요?
"우선 지리적으로 광릉 수목원을 끼고 있다는 것과 저 아래 큰 저수지가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어요. 더 이상 이런 기회는 내 생에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마디로 그냥 저지른 거지요. 결과적으로 참 잘한 것 같습니다."

- 규방공예와 커피,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서로가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외양은 시멘트 블록의 일반 창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절대로 무겁거나 칙칙하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사방으로 프로방스 스타일의 창을 낸 것과 한옥 고재와 민속용품을 이용한 인테리어 영향인 것 같은데 원래 사전 계획을 하고 추진하신 건가요?
"이사 오기 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주방 생활 소품으로 옛것을 사다 모으면서 그것을 취미로만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현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나름대로 연구했습니다. 하다 못해 꽃꽂이를 해도 옛날 제기를 밑에다 받쳐놓고 생활하고 그랬는데 이런 공간을 마련하고 보니 그런 게 더 잘 어울리는 겁니다. 물 만난 고기 같다고나 할까요?"

- 옛날 문짝에 함지박, 기름틀, 창호, 가래 등등 이런 물건은 언제 다 준비하신 겁니까?  하루 이틀에 걸쳐서 모을 수 있는 게 아닌 것들인데요.
"부족하나마 제가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시어른들이 쓰시던 모든 소품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조금씩 구입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떡판 위에 다양한 소품들
▲ 호미가 내부 떡판 위에 다양한 소품들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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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방공예를 하시게 된 계기를 좀 말씀해 주세요. 무엇이 선생님을 인고의 바느질 세계로 끌어들였나요?
"그것이 어떤 상황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일단 사람이라면 가족 중에 꼭 누구라기 보다는 남편도 될 수 있고 아들도 될 수 있고 부모님도 될 수가 있습니다. 공병(工兵)으로 근무하는 남편은 특성상 지방 근무를 많이 하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해외 유학을 간데다 시부모님은 거의 두 분이 의사소통도 뭇 하실 정도로 병환이 드셔서 제가 지켜드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파트 문을 잠그고 나가야지만 겨우 안심이 되고 무엇을 배울 수가 있는 상황이었는데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가 없고. 그래서 간병을 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찾다 보니까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느질이었습니다. 그 세계가 제게는 아주 엄청나고 거대하게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이 빨려들어가게 된 거죠."

- 일반적인 수강에 대한 계기는 보통 배움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하는 데 거기에 비해 선생님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신 게 아닌가요?
"네, 제게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냥 하나 둘, 책을 보면서 스스로 익혔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하시던 것을 기억을 되살려 따라 하다 보니 서툴기는 해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작품다운 작품이라고 칭찬해주시면서 주변에서 오히려 배우러 오겠다는 사람이 생겨 나중에 강의까지 하게 된 겁니다. 조금은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상처받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곳

▲ 인터뷰 인터뷰
ⓒ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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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방공예 외에도 요리 강좌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식을 별도로 판매도 하시나요?
"음식은 판매를 안 하고요. 사람들을 가르치다보니 직장인들은 밥을 굶고 오는 경우도 있고 또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문화가 뭘 좀 드시겠습니까하고 예의상 물어보잖아요? 그러다 배가 고파요 선생님 이러면 그 사람한테 밥을 줘야겠고 식사를 하고 오면 차를 줘야겠고 해서 음식을 하나 둘 해서 주니까 자기네들 입맛에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레시피를 물어보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그냥 알려주다가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수강생들이) 못 배울 것 같아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이용, 아카데미를 구성해서 정규 과정의 인원을 모은 다음에 꾸준히 몇 년을 해왔어요."

- 프랜차이즈 형태의 전통 찻집 세팅을 비롯해서 참으로 다재다능하신데 굳이 하나만 선택하신다면 어느 걸 하시겠습니까?
"결국 저는 바느질입니다. 그 이유는 시부모님을 옆에서 지키면서 간병하게 된 이유도 그렇지만 진짜 여성으로서 늙어가는 아름다움을 바느질에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바느질을 하면서 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남과의 교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희열입니다."

호미가로 들어가는 외부
▲ 호미가 입구 호미가로 들어가는 외부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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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을 주로 찾아주시는 분들은 주로 공통점이 있습니까?
"공예에 관심 있는 매니아들이 주로 찾아오세요. 그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골이 되고 교류가 오래 이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문화적인 감성의 교류가 좀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 해요."

- 선생님 보러 오신 손님들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40대 중반 정도 되 보이는 여자 손님이셨는데 그분이 처음 저희 가게에 오셨을 때에는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가정 문제로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던 분이었는데 그 뒤로 가끔씩 들르실 때마다 얼굴이 점점 환하게 바뀌시는 거에요.

마음이 애잔해서 특별히 제가 항상 두 종류 이상의 차를 서비스로 주곤 했거든요. 이것도 좀 맛보시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 딴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차가 그녀의 미각을 건드리면서 뭔가 조화를 부렸나 하고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어쨌든 말수도 없던 분이 어느 날은 꽃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조각보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차에 대해서도 물어보시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웃다가 한동안 안 보이길래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아주 밝고 명랑한 얼굴로 바뀌어서 다시 찾아온 겁니다. 처음에는 누군가 했어요. 자기를 몰라보겠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천천히 보니 동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변했더군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 그분이 그렇게 변한 극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본인 말로는 이곳에 와서 차를 마실 때마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고 해요. 잃어버린 꿈을 퍼즐 맞추듯 하나씩 되살리게 되면서 점차 삶의 의욕을 되찾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다보니 문득 자신에 대한 사랑의 절실함을 깨달았데요. 더는 내가 이렇게 나를 방치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각성 같은 거 말입니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완전히 변해버린 거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호미가 내부를 장식한 한옥고재가 그 사람한테 깊은 안정감을 준 게 아닌가 해요. 그냥 나무가 아닌 한옥 고재에 치유의 능력이 있거든요. 지금도 이 고재들한테서는 송진이 흘러나옵니다. 그 송진을 만져보면 그 어떤 인공 향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힘이 있습니다. 추억에 꿈과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힘 말입니다! 이곳에 처음 오시는 많은 분들이 느끼는 표현하기 어려운 상쾌함은 바로 거기에 기인한 것 같아요.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무위자연을 닮은 호미가

장독대 옆의 호미가 간판과 건물 정면
▲ 호미가 외부 전경 장독대 옆의 호미가 간판과 건물 정면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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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경기북부라는 지역을 대변하는 성공적인 문화 사랑방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앞으로 '호미가'가 대대로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제 제 생각에는 가족이나 친척보다는 다른 사람 특히 제자 가운데서 이곳을 마음에 들어하고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면 나중에 제가 이 일을 못할 때는 상호간에 적절한 대화를 통해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호미가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너무 번잡하지 않고 너무 화려하지 않고 너무 현대적이지 않고 순수, 자연 그 다음에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침 옆에 있던 수강생 분에게 물었다) 어떻게 호미가와 인연을 맺으셨나요?
김미경 : "제가 수목원 길을 너무 좋아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카페와 손바느질이라는 입간판의 문구를 보고 무작정 들어왔는데 들어온 순간 공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옥 고재에서 나는 피톤치트의 응축된 향이 주는 안정감이라고나 할까요? 그것도 그렇고 바느질 기법은 옛날 전통을 따르면서 재료는 현대적인 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첫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 같은 조각보인데 그 쪽 분야의 공방을 하시는 분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호미가 선생님만의 조각보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다루는 소재는 거의 광목과 무명입니다. 예단을 할 때는 저도 비단을 쓰지만 양반가에서 만졌던 것만 재현하기에는 서민 쪽에서는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서민들이 다루었던 무명이나 광목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보자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물빨래를 하고 풀을 먹이고 다림질을 해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계속해서 할 거에요."

- 선생님한테 조각보의 개념은 결국 평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차별이 아닌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 그게 제가 조각보를 통해서 보고 배우고 깨달은 겁니다."

호미가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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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석



태그:#호미가, #권순미, #박호현, #김미경, #규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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