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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늦은 오후, 여수의 절친으로부터 무조건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필시 좋은 맛거리를 선보이기 위한 초대일 것으로 직감하고 여수로 향하는데 날씨까지 포근하게 감싸준다. 도착하여 안내된 곳은 돌산의 유명한 생굴구이집. 돌산 금천마을에서 오랫동안 굴을 생산하던 강 사장이 운영하는 집이었다.

요즘처럼 쌀쌀한 계절에 먹는 생굴이 제일 맛있단다. 굴은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영양가 높은 해산물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해산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단다. 날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날 것으로 먹는 해산물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에서는 파티 자리에 굴이 반드시 있었다며 동석한 강 사장은 생굴 예찬에 여념이 없다.

 바다물 속에서 바로 따온 싱싱한 굴을 구이판 위에서 굿고 있다.
 바다물 속에서 바로 따온 싱싱한 굴을 구이판 위에서 굿고 있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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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이판에 구어낸 후 껍질을 까면 이렇게 먹음직스럽고 통통하게 구워진다.
 구이판에 구어낸 후 껍질을 까면 이렇게 먹음직스럽고 통통하게 구워진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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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굴에는 아연이 풍부한데 아연 성분이 남성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정자의 생성과 활동을 돕기 때문에 정력에 매우 좋단다. 또 배 타는 어부의 딸 얼굴은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 얼굴은 하얗다면서 피부미용에도 좋아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미인들도 즐겨 먹었다며 입담이 걸죽한 절친도 열심히 거든다.

생굴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다보니 내가 지금 보약을 먹고 있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싱싱한 생굴을 구워서 먹으니 바다 내음과 함께 스며드는 짭쪼롬하면서 고소함은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었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만나면 즐거운 친구와 최고의 영양식인 생굴을 안주삼아 먹으니 이것이 진짜 보약 아닐까?

 처음 먹어 본 생굴튀김인데 아삭아삭함 속에서 배어나오는 연한 갯내음 맛은 참신한 별미였다.
 처음 먹어 본 생굴튀김인데 아삭아삭함 속에서 배어나오는 연한 갯내음 맛은 참신한 별미였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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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굴을 넣어 끓인 이 죽은 지금까지 마셨던 술의 끝 맛을 달콤함으로 치환시켜 주며 기분을 상쾌하게 해줬다.
 생굴을 넣어 끓인 이 죽은 지금까지 마셨던 술의 끝 맛을 달콤함으로 치환시켜 주며 기분을 상쾌하게 해줬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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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구이를 거의 까먹을 무렵 생굴 튀김이 한사라 가득 나왔다. 거나하게 술기가 오른 강 사장 부인이 별식으로 내준 요리다. 아삭아삭함 속에서 배어나오는 연한 갯내음 맛은 별미였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날 때 쯤 내준 생굴을 넣어 끓인 죽은 지금까지 마셨던 술의 끝 맛을 달콤함으로 치환시켜 주었다.

 제2돌산대교로 '거북선대교'로 명명되었다.
 제2돌산대교로 '거북선대교'로 명명되었다.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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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를 털고 일어나 여수 밤바다로 향했다. 눈길을 주는 곳마다 밤바다이지만 눈 맛을 사로잡는 것은 휘황찬란하게 깜박거리고 있는 돌산대교의 조명 빛이다. 전국에서 최초로 다리 교각에 조명 빛을 설치하였는데 다른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해 가는 영광도 누린다면서 절친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설명한다.

이어서 제2돌산대교로 '거북선대교'가 눈길을 끈다. 대교 위로는 케이블카가 왕래하면서 빛의 궤적을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하멜 기념관'과 하멜등대를 설치해놓았다. 350년 전 일본으로 향하던 네델란드 상선이 태풍을 만나 표류하면서 제주도를 거쳐 이곳 여수에 와 7년 동안 생활하다 떠난 하멜과의 인연을 스토리텔링화 시켜 놓은 것이다. 이번에는 불현 듯 찾아 왔지만 다가오는 연말에 다시 와 구석구석 둘러 보고 향일암에서 떠오르는 새해를 맞고 싶다.

 거북선대교 밑에 세워 놓은 하멜등대
 거북선대교 밑에 세워 놓은 하멜등대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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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3년 1월에 네델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텍셀에서 출발하여 7월 바타비아(자카르타)를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8월 16일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표착하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64명중에서 36명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헨드릭 하멜이었다. 일행과 함께 여수에 오게 된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면서 7년의 세월을 보내고 1666년 9월 4일 밤 여수를 떠났는데 이곳이 하멜 일행이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출발지이다.
 1653년 1월에 네델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텍셀에서 출발하여 7월 바타비아(자카르타)를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8월 16일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표착하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64명중에서 36명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헨드릭 하멜이었다. 일행과 함께 여수에 오게 된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면서 7년의 세월을 보내고 1666년 9월 4일 밤 여수를 떠났는데 이곳이 하멜 일행이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출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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