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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의 일주문
 수덕사의 일주문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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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의 쌀쌀한 날씨 속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덕숭산에 있는 한국불교 5대 총림중의 하나인 수덕사를 찾았습니다. 두 개의 돌기둥 위에 기와지붕을 얹고 서 있는 일주문은 바깥의 세속의 세계와 안의 부처님 세계를 구분 짓는 문입니다.

'덕숭산 수덕사(德崇山修德寺)'라고 쓴 현판은 손재형의 글씨이며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진리를 깨닫고 본심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본질에서 모든 우주 삼라만상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반야와 번뇌가 둘이 아니다.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덕사의 선미술관
 수덕사의 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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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일주문 옆에 있는 선 미술관은 2010년 3월 25일 총 사업비 16억을 들여 410제곱미터에 불교 최초의 미술관으로 세워졌습니다. 고암 이응로 화백의 작품 15점과 수덕여관에서 발견된 습작품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원담 스님, 석정 스님의 작품도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수덕여관 재정비시에 발견한 벽에 붙어 있던 이응로 화백의 그림을 찢어서 액자에 넣은 작품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미술관에 있는 작품 전시실
 선미술관에 있는 작품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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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미술관'에 걸려있는 이응로 화백의 그림과 고승들의 글씨를 보노라면 인걸은 온데간데없는데 그들이 남기고 간 자취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낍니다.

              선미술관 앞에 있는 바위
 선미술관 앞에 있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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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미술관 앞에 있는 바위에는 '예술은 인간의 영혼'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수덕여관 옆에 흐르는 계곡
 수덕여관 옆에 흐르는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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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낙엽이 져버린 작은 계곡 사이로 덕숭산자락에서 맑은 물이 흐릅니다. 가야산의 맥을 잇는 덕숭산에 자리 잡은 수덕사 경내에는 150명의 비구니와 50여 명의 비구 승려들이 수도정진하고 있습니다.
                      이응로화백 사적지 수덕여관
 이응로화백 사적지 수덕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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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수덕여관은 ㄷ자형의 구가옥으로 충남의 기념물 103호로 지정되었고 동양화가 고암 이응로 화백(1904~1989)이 1944년에 구입하여 6.25 때 전쟁 피난처로 사용하였던 곳입니다. 홍성이 고향인 이응로 화백이 나혜석을 자주 만나러 수덕여관에 왔다가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난 후에 사들였습니다. 이응로 화백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수덕사 부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 이후에 이응로 화백은 그의 제자 박인경과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이응로 화백 박귀희 부인께서 수덕여관을 운영하고 남편을 기다리며 살았던 곳입니다. 이응로 화백은 1969년 동백림사건으로 귀국하여 옥고를 치르고 잠시 이곳에 머물며 여관 옆에 있는 큰 너럭바위에 '삼라만상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화로 바위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서 마지막을 보내게 됩니다.

              수덕여관 내부 정경
 수덕여관 내부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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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을 건축한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약 70년 가까이 된 건물로 추정됩니다. 1939년경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이 세속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수덕사를 찾아와 수행 중이던 일엽(1896~1971) 스님을 만난 후에 해방무렵까지 5년간 수덕여관에서 머물렀던 곳입니다. 일엽 스님과 소꿉장난 친구였던 나혜석은 당신 수덕사 만공 스님에게 출가를 요청했으나 애욕이 너무 강해서 스님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만공 스님의 거절을 받은 후에 이곳에 머물며 젊은 예술인들과 교류하는 장소였습니다.

              수덕여관 뒷뜰에 있는 템플스테이 하우스
 수덕여관 뒷뜰에 있는 템플스테이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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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뒷뜰에 있는 템플 스테이입니다. 수덕여관은 또한 일엽 스님이 출가 전에 일본 명문가의 자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김태신(일당 스님)이 그의 어머니를 찾아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혜석은 마치 자식을 대하듯이 팔베개를 해주고 자신의 젖을 만지게 하는 등 모성애에 굶주린 일엽의 아들을 보살폈다고 합니다.

일당 스님이 14살에 수덕사에 찾아와 승려가 된 그의 어머니를 처음 만습니다. 어머니의 첫마디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부르라"였습니다. 일엽 스님은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라는 대중가요 '수덕사의 여승' 노래 실제 모델이었습니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하우스 가는길
 수덕사 템플스테이 하우스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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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의 주인이었던 동양화의 거장인 이응노 화백(1904~1989)과 박귀희, 박인경 여사의 사랑 그리고 한국 최초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학가 나혜석(1896~1948)이 머물렀던 수덕여관에서 예술과 인간 세상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류문인이자 승려 김일엽(1896~1971)과 그의 아들 일당 스님이 출가한 수덕사의 뜰을 거닐며 역사와 문인들의 근대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태그:#이응로화백, #수덕여관, #선 미술관, #일주문,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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