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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표지
 <스티브 잡스>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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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하던 여성을 임신 시킨 스물세 살의 청년이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며 모른 체 하며 지냈다. 여자와 아이를 버린 것이다. 그는 다수의 동료들로부터 복잡하고 난해한 인물이며, 조작에 능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때로는 악마로 불리기도 했으며 주위 사람들을 절망과 분노에 빠져들게 하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물질적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연봉을 1달러만 받을 때도 있었지만, 뻔뻔하게도 어마어마한 양의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자서전 <스티브 잡스>에 소개된 잡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혁신적인 제품 세 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터치로 조작하는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두 번째는 혁신적인 휴대전화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통신 기기입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세 개의 기기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구현한 하나의 기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책 747쪽)

2007년 1월 아이폰 공개 프레젠테이션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아이폰은 2010년까지 무려 9000만대나 팔려나갔다.

세상에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은 스티브 잡스와 심심치 않게 주변 사람들을 못 살게 굴던 스티브 잡스는 분명 동일인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기업가나 사업가라고 불리지 않는다.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치 않았다. 태생적으로 권위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기이한 강렬함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는 이기적 반항심이나 극단적 카리스마로 발현되기도 했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비결

잡스의 업적은 어떻게 성취된 것일까?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의 진단과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 연설을 참고해 보자. 먼저 월터의 진단은 "첫째, 잡스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음악, 그림, 영상을 사랑하면서도 컴퓨터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둘째, 완벽주의자 잡스는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 콘텐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모든 측면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그에게는 단순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었다. 넷째, 그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비전에 모든 것을 걸 의지가 충만했다."(600) 애플에서 쫓겨나던 1985년 그는 보유하고 있던 애플 주식 650만주를 단 1주만 남기고 헐값에 매각해버린 직후, 새 회사 넥스트를 차린다. 주식 1주를 남긴 이유는 주주총회에 참석할 기회를 남겨두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잡스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 이야기 세 편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뿐입니다. 대단한 건 없습니다. 그냥 세 가지 이야기만 들려 드리겠습니다."(720) 첫 번째 이야기는 리드 대학교를 중퇴한 이야기였다. 두 번째는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이 결국에는 자신에게 득이 되었다는 이야기였고, 세 번째는 암 선고와 그것이 가져다 준 깨달음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책 721쪽)

인간 스티브 잡스

잡스는 기부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품을 구입할 때에는 컴퓨터나 전화기 내부에 들어가서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라도 최고를 고집했다. 그는 늘 이분법적으로 사고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어떤 대상이든 '최고' 아니면, '쓰레기'였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 등은 IT업계의 성공한 인물들이다. 이젠 직접 재단을 만들어 활발하게 기부활동을 펼친다. 세인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자서전을 읽다 보면 왠지 잡스가 더 위대하게 여겨진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들을 만들고 파는 데에는 그들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까. 일상에서 그는 까다로운 인간이었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보면 잡스는 완벽을 위해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앙탈을 부리고 울부짖고 싸웠을 뿐이었던 것 같다.

23살에 낳은 아이가 자신의 딸이 아닐 수도 있다며 친자확인 소송까지 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아이로 밝혀지자 양육비를 책임졌고 자신의 딸로 인정했으며 정기적인 만남도 가졌다.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의 생물학적인 아버지 역시도 스물세 살의 나이에 잡스를 버렸다고 한다. 잡스는 버림받음, 선택받음, 특별함 등과 같은 개념 사이에서 방황했을 것이 틀림없다. 젊은 시절 히피처럼 씻지도 않고 과일 특히 사과와 야채만 먹으면서 선불교와 명상에 깊이 심취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애플이 탄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결핍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에너지로서 말이다. 그의 출세작 매킨토시 또한 사과의 한 품종이다.

냅스터 등 불법 다운로드로 몸살을 앓고 있던 음반업계를 구조조정한 아이팟과 아이튠즈는 잡스가 개별 기기를 판매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는 예술가들의 저작권보호와 가치 있는 콘텐츠들을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도 열정이 있었다.

냉혹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던 스티브 잡스, 그런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클라우드라는 통합된 정보기기 솔루션을 못 만났을 수도 있고,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감동적인 애니매이션 영화들도 그렇게 일찍 감상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잡스가 바라 본 사회와 그 미래

제품이 곧 예술이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단순성 즉, 궁극의 정교함을 추구해야 한다며, 타협을 혐오한 잡스의 인재 선발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똑똑한 머리와 유머감각, 그리고 말솜씨 등의 세 가지라고 한다. 특히 지적인 사람에게 매우 호기심을 가졌다고 월터는 말한다. 그리고 그의 마케팅 철학은 공감, 집중, 인상이다. 그래서일까. 사회와 언론을 보는 눈도 날카로웠던 것 같다.

"오늘날의 주요 양대 진영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건설주의와 파괴주의지요. 당신은 파괴적인 사람들에게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폭스는 우리 사회에 해를 끼치는 엄청난 파괴력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당신의 유산이 될 겁니다."(797) 잡스가 루퍼트 머독에게 폭스 뉴스에 대한 견해를 밝힌 대목이다. 머독이 잡스를 좌익으로 생각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잡스가 예상한 21세기 유망산업은 바이오 부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들 리드 잡스는 의대생이 됐다. 잡스가 늘어난 인간의 평균수명이 야기할 의학 또는 생물학 관련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도바이오부문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IT업계의 라이벌,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와의 대결은 그 결과가 어떨까? 2000년 5월 애플의 시장가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0분의 1이었다. 2010년 5월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술 회사 마이크로소프트를 뛰어 넘었고 2011년 9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70퍼센트 더 가치 있는 회사가 되었다. 제품의 가치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잡스의 압도적 승리다.

덧붙이는 글 | <스티브 잡스 Steve Jobs>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2011년 10월 24일 펴냄



스티브 잡스 (보급판)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2015)


태그:#애플, #아이폰,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궁극의 정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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