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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스커플, 'Jamie&Scott'의 하루하루 이야기입니다. 미국인 남편과 함께 버지니아주 어딘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어요. 달달한 신혼 이야기도, 새로이 정착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생기 있게 살고 용기 있게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저희 둘의 날들을 지켜봐 주세요! - 기자 말

엄마가 사준 작은 화분들이 창틀에 놓여있다.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가 사준 작은 화분들이 창틀에 놓여있다. 엄마를 그리워한다.
ⓒ 이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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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가 3시간 전에 떠났네. 울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겠다는 내 다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어. 나야 다시 집에 돌아와서 쉬면 그만이지만 엄마는 꼬박 하루를 공항과 비행기에서 보내야 하는데. 괜히 울어서 엄마 마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 3주는 정말 행복했어. 이모들과 함께한 서부여행도, 또 우리집에서 함께 머문 시간들도. 3주면 나름 긴 시간인데도 6개월이나 기다렸던 날들이었기에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울 지경이었지.

엄마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사실 대학도 졸업하고 이 나이쯤 됐으면 더 멋진 딸이 되어 엄마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데 아직은 철 안 든 어리광쟁이야 나는. 근데 나는 그래도 엄마랑 정서적으로 더 가까울 수 있다면 그냥 계속 철 안 들고 이렇게 살래. 철들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직 무섭고 싫어.

오늘같이 이렇게 헤어짐이 힘든 날엔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만약에.. 다른 어떤 부모 자식들처럼, 엄마와 나도 적당히 사랑하면서도 적당히 거리 있고 또 적당히 서로에게 덤덤한 그리 애착이 깊지 않은 사이였다면 오늘 같은 날도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엄마도 조금은 더 마음이 가볍지 않았을까.

고3때 자퇴하고 대구에서 공부한다고 터미널에서 헤어질 때, 대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엄마가 날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다시 경주 내려갈 때, 그리고 종종 내가 경주에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 혹은 엄마가 서울에 올라왔다가 내려갈 때 매번 느꼈던 감정이야. 대학 들어가면서 엄마랑 떨어져 산 지도 8년 짼데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닌데 매번 이렇게 쉽지 않네.

6개월 만에 만난 엄마와 다시 이별

동네 공원에서의 엄마. 떠날날이 다가와 웃는 얼굴 뒤로 쓸쓸함이 보이는 것 같다.
 동네 공원에서의 엄마. 떠날날이 다가와 웃는 얼굴 뒤로 쓸쓸함이 보이는 것 같다.
ⓒ 이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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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도, 이모들도, 친구들도 항상 나한테 말해. 너무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너무 엄마 생각하지 말고 내 인생 잘 살라고. 아마 다들 엄마에게도 똑같은 얘길 하겠지? 내 걱정 너무 하지 말고 너무 생각하지도 말라고.

근데 그래도 나는 엄마가 내 엄마여서, 우리가 서로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이여서 좋아. 전생이고 뭐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엄마가 되고 엄마의 딸이 되었는지 나는 그냥 감사해. 내가 엄마한테 더 잘하고 더 잘해야지.

근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게 너무 미안해. 실컷 키워놨더니 지 인생 찾아서 몇 만 리 너머 미국으로로 와버렸잖아. 스캇(남편)이 뭐라고, 결혼이 뭐라고. 사실 지난 4월에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왔을 때도, 한 며칠 동안은 스캇이 미웠어 괜히. 내가 선택한 건데도. 아마 오늘부터 며칠간도 또 그런 마음이 들 거야. 어쩔 수 없이.

아까 엄마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오는데,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어. 엄마가 아직 테이블에 앉아 드라마 보면서 그림 그리고 책 보고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냉장고도 못 열어 보겠어. 엄마가 가득 채워준 음식들 보면 또 슬플 것 같아서. 엄마가 잤던 작은방도. 이젠 한동안 쓸 일이 없어서 문 닫아 놓으면 되는데 자꾸 엄마가 있었던 게 생각나서 그러질 못하겠어.

엄마가 꽉꽉 채워주고 간 냉장고. 아주아주 천천히 먹을거야, 천천히.
 엄마가 꽉꽉 채워주고 간 냉장고. 아주아주 천천히 먹을거야, 천천히.
ⓒ 이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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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좋아하던 향초, 엄마가 둘렀던 담요, 엄마가 사준 작은 화분들, 엄마가 삶아준 행주. 엄마가 청소해준 부엌, 복도 벽장 문까지 이 집 모든 곳에 엄마의 손길이 묻어 있어. 그래서 눈을 두는 곳 마다 자꾸 눈물이 나.

그래도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한국에서 결혼하고 살아도 어차피 서울 살면 자주 못 보는 건 당연한 거고. 사실 결혼까지 생각할 것도 없이 대학 다닐 때도 1, 2학년 때야 방학 때 경주 내려가서 지냈지만, 고학년 되고 취업 준비 하면서는 1년에 몇 번 보지도 못했잖아.

그때랑 비교하면 이번에 3주 같이 시간 보낸 건 1년치 한꺼번에 만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리 별다른 건 없다고 그러니 슬퍼할 것도 없다고 그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여야지. 엄마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둘 다 노력하자.

사실 이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엄마가 떠나기 전에 줄까도 생각했어. 근데 편지 읽으면 엄마가 비행기에서 울게 분명하니까. 엄마가 우는 거 싫어서 쓰지 않았어. 나도 집에 와서 좀 울다가 좀 정신 차리고 한숨 자려는데 도저히 잠이 안 와서 이렇게 여기에나마 끄적거려. 엄마가 한국 가면 이 편지를 볼 수 있도록.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도록.

사랑하는 엄마, 다시 만날 날까지 우리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하며 지내자. 아주아주 많이많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p.s.1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한국 가든 엄마가 미국 오든 그렇게 해서 같이 살자. 스캇은 언제든 처가살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 오늘도 공항에서 집에 오는데 몇 번이나 그런 얘길 하더라구.

p.s.2 그리고 엄만 최소 5년 동안, 자리잡기 전까진 한국 오지 말랬지만 난 갈 거야. 그리고 엄마아빠도 다시 초대할 거야. 다음 번에 오면 두세 달 쯤 있다가 가고 그렇게 해줘. 알았지? 그러니까 우리 곧 만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자민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오늘은 오늘생각>(http://jaykim237.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엄마, #편지, #행복,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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