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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요즘 '아이들'이 아닌, 요즘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사람들 가운데 나 또한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난 책 읽기를 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10분 남짓 쉬는 시간이 되면 책을 읽었다. 나에게 독서란 놀이였고 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엔 지금에 비해 놀거리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나이가 지긋한 사람인 양 생각될 수 있지만 나는 30대 초반의 젊은 교사이다. 세대차이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어린 학생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릴 땐'이라는 수식어 아닌 수식어를 붙여가며 이야기하게 되는 큰 이유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급변하는 사회의 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예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 원인은 그중에서도 개인 모바일 기기의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까.

안개와 가을산 <디지털>뱀사골에서 인월가는 길. 가을 산이 수줍게 면사포를 쓰고 있다.
▲ 안개와 가을산 <디지털>뱀사골에서 인월가는 길. 가을 산이 수줍게 면사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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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조정래의 <아리랑>이란 책을 접했다. 누가 읽으라고 해서가 아니었다. 교사이자 작가이신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했던, 까만 바탕에 보랏빛의 강렬하고 힘찬 글씨체로 적힌 제목이 왠지 모르게 나의 손을 이끌었다. 그리고 첫 권을 앉은 자리에서 3시간 만에 읽어버렸다. 300쪽이 넘는 분량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빨리, 그리고 오래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살 때 사랑했던 디즈니 동화책에서부터 시작해서, 난해하여 이해도 되지 않는 책을 그저 활자를 읽는 재미로 꾸준히 훑었다. 그런데 한 달, 아니, 한 학기에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할 정도로 독서량이 줄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되고서 부터였다.

왜였을까. 스무 개가 넘어버린 과목들은 가혹한 학습량이 되어 교과 이외의 책에서 멀어지게 하였고 한 해가 가기 무섭게 나날이 발전했던 개인 컴퓨터의 발전은 그나마 여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금의 시간을 빼앗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또래 친구들이 엄청나게 좋아했던 오락실의 게임이나 PC게임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영상에 익숙해지지 않고 활자에 익숙한 삶을 살았던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편리함은 그 유용성을 초과하여 일종의 재미로써, 책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렸다.

현재는 어떠한가. 핸드폰이라고 하기보다 개인용 초소형 컴퓨터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모바일 기기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다닌다. 그리고 학생들이 그 기기를 사용하는 경향을 관찰해보면, 거의 7할 정도는 게임이다.

8시 20분, 아침 조회 시간에 학생들의 핸드폰을 걷는데, 7시 50분쯤 교실에 도착하는 학생들은 교실 불을 켜는 것도 잊은 채 어둠 속에서 본인의 얼굴로 핸드폰 화면의 빛을 하얗게 반사하며 홀린 표정으로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그 시간에 독서를 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학교 차원에서 스마트폰 및 인터넷 중독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생활기록부라는 외재적 동기를 부여해주어야만 울며 겨자 먹기로 독서를 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단풍 밑 아이들 <디지털>육모정에서 고기리로 올라가는 길. 잠시 내려 사진을 찍었다.
▲ 단풍 밑 아이들 <디지털>육모정에서 고기리로 올라가는 길. 잠시 내려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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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제는 학생들과 함께 떠났던 문학 기행에 대한 것인데 서론이 길다. 그 이유는 나를 비롯한 학생들이 책을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끼게 된 나름의 역사와 이유를 조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밝힌 이유들로 인해 실적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었던 2015학년도 1학기의 우리 반 독서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반등시킬까 하는 고민으로 즉흥적인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번에 다녀온 가을 문학기행이었다.

평소 스마트폰 대신 책을 손에 잡아보라는 잔소리는 우리 아이들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장장 연설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듣던 아이들은 이내 쉬는 시간이 되면 게임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여전히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핸드폰 게임에 마음을 팔았다. 나는 즉흥적으로 대단한 보상을 하나 생각했고, 한 학기 동안 읽은 책을 잘 정리해서 제출하는 학생 중 3명을 뽑아 문학관이나 작가의 생가 등을 견학하는 기행 계획을 세워서 1박 2일로 데려가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1박 2일의 계획 속에는 남성미와 낭만이 물씬 풍기는 야외 바비큐와 캠핑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되냐는둥 엄청난 포부를 비치는 아이도 있었다. 뿌듯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약속된 날 독서상황기록을 제출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허탈했다. 울분의 잔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고, 그 한 번의 기회는 같은 이유로 세 번의 기회가 되었다.

세 번이나 연장한 끝에 결국 입 짧은 아이 어른 수저로 밥 멕이듯 세 명을 뽑았다. 예상보다 늦게 결정된 참여 명단, 명절과 수학여행 등의 일정, 중간고사 등으로 인해 계속 미뤄진 행사는 가을이 겨울로 변모하기 직전의 시간까지 와버렸고 캠핑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우리 집을 오픈하기로 했다. 총각 선생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바비큐 대신 치킨을 먹기로 했고, 캠핑 대신 청소년 성장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기로 했다. 나름 괜찮은 대안이었다.

고민 끝에 '월플라워'라는 영화를 선택했다. '월플라워'는 졸업파티 등의 무도회 때 파트너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이 갖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었을 그의 친구들을 그린 이야기이다. 엠마 왓슨의 팬인 한 명의 학생을 빼고는 모두가 처음 보는 영화였다.

늦은 시간이었고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는 잔잔한 영화였지만 숨죽이고 보기에 충분히 마음에 와 닿는 영화였다. 청소년기를 훌쩍 넘긴 나에게도 몇 장면과 대사들이 깊숙이 들어왔다. 영화가 끝난 후 몇 가지 질문을 토대로 한 토론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져서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학교에서 나누지 못했던 값진 대화들이 오고갔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꺼내게 된 아이들은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했다.

오고간 대화들은 우리들만의 비밀로 부치기로 한다. 상담의 제1원칙이기도 하거니와 이날 나눈 대화들을 토대로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벅찬 시간을 보내게 되면 학생들의 손에서 스마트 폰이 잠시라도 놓아지게 될까? 물론 그랬다. 하지만 역시 물론 그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촉촉한 눈망울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이들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손에 들고 서로간의 소통을 스스로 단절시켰다. 정말 무서운 습관이다. 아이들의 동의를 얻고 핸드폰을 걷었다. 이거야 원, 수련회나 극기 훈련도 아닌데 핸드폰을 걷어야하는 상황이 스스로도 아리송했지만 1박2일 기행의 취지를 위해서라도 오프라인과 아날로그의 세상이 필요했다.

교장선생님의 결재를 얻은 원래 문서상의 계획은 2일째 아침 기상 시간이 6시였다. 가을 단풍이 절정인 시기에 아침을 먹고 넉넉히 집을 나서면 서울 한복판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교통 체증을 시골 한복판에서 만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주말 내내 비 소식이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뱀사골 산행 계획을 취소한 채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꾸물꾸물한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았지만 빗방울은 다리미 앞의 분무기보다도 얌전했다.

9시 가까이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남원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달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단 일찍 일어나볼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 정도 날씨라면 산행객이 꽤나 있을 것 같았고 오후에 집에 돌아가 다시 학원을 가야하는 학생들의 스케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행히 주말 일기예보가 워낙에 비 소식을 강하게 다루어준 덕택에 길은 한가했고 비가 조금씩 내리긴 했지만 가을의 정취를 방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물기를 먹은 나뭇잎들은 더욱 선명한 색깔을 선사했고 어지간해서는 서정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 현대의 십대들조차 감탄에 감탄을 더하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 시간을 지체한 상태로 왔기 때문에 천년송까지 계획했던 산행은 하지 못하고 뱀사골의 발목 정도만 오르고 내려왔지만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 탓에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남원여고 재직 시절 6년간 꾸준히 나의 단골집이었던 돈가스 집에서 아이들과 점심을 해결하고 사매면에 위치한 '혼불문학관'으로 향했다.

촉촉히 젖은 은행잎 <디지털>가을 벤치에 사람 대신 은행잎이 앉아있다.
▲ 촉촉히 젖은 은행잎 <디지털>가을 벤치에 사람 대신 은행잎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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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흔적 <필름>데크를 수놓은 빨간 단풍이 가을의 밝자국 같다.
▲ 가을 흔적 <필름>데크를 수놓은 빨간 단풍이 가을의 밝자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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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명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여류작가이다. 어릴 때부터 글솜씨가 남달랐다고 하며 난소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뜰 때까지 글쓰기에 대한 사명감과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고 한다. 명곡으로 꼽히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처럼 미완성이지만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남원에서 근무할 때에는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을 근무지를 전주로 옮기고 나서야 오게 되었다.

문학관을 잘 꾸며서인지, 그분의 글 인생이 감동적이어서인지 문학관 견학만으로도 혼불 열권을 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지난 밤 아이들과 함께 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혼불문학관을 다녀온 뒤 학교에 돌아가면 소설 혼불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문학관 견학을 인솔하기 위해서 짧게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최명희 작가의 모국어에 대한 연구와 사랑이 대단했다는 것과 함께, 혼불을 썼을 때 일일이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퇴고를 했다는 글을 읽었다. 소설이지만 음운의 율격을 생각해서 썼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혹자는 "혼불은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바로 판소리가 된다"라고 평가했나보다. 이러한 이유로, 적어도 이날 함께 그곳을 방문했던 아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혼불을 소리 내어 읽는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진행하고 싶다.

문학관에서 <디지털>혼불문학관에서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는 아이들.
▲ 문학관에서 <디지털>혼불문학관에서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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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관에서 <디지털>우산을 쓴 해맑은 아이들. 개구리 삼형제 같다.
▲ 혼불문학관에서 <디지털>우산을 쓴 해맑은 아이들. 개구리 삼형제 같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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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가을, 가뭄의 단비, 온 대지의 진득한 색깔들이 시종일관 우리와 함께했고 다시 전주로 돌아오는 길을 아쉽게 만들었다. 12인승 차나 한 대 빌려 아이들을 데리고서 이렇게 배움이 있는 여행을 길게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인문계 학교에서 굳어져가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서정적인 흐름을 선물하고 싶다. 스마트폰과의 거리, 20센티미터의 세계에 갇혀있는 아이들에게 이 넓고 무한한 세상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 이번 문학기행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 함께한 아이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낙엽 속 푸름 <필름>낙엽 사이에 싱그러움을 뽐내는 식물 하나가 마치 우리 아이들을 닮았다.
▲ 낙엽 속 푸름 <필름>낙엽 사이에 싱그러움을 뽐내는 식물 하나가 마치 우리 아이들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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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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