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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변의 풍력발전기
 고속도로변의 풍력발전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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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내를 벗어난 우리는 E58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이 도로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연결해주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 길은 도나우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진다. 길 주변은 온통 평야고, 주변에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빈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55㎞로, 4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버스가 국경에서 잠시 정차한다.

그것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 자코가 고속도로 관리사무소로 간 사이 나는 버스를 내려 국경 주변의 모습을 살펴본다. 국경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슬로바키아의 공식 명칭은 슬로벤스카 공화국(Slovenská Republika)이다. 슬로바키아는 2004년부터 EU회원국이 되었고, 2007년부터 쉥엔조약(Schengen-Abkommen)에 가입,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이웃국가로의 국경통과가 자유로워졌다.

해바라기밭, 옥수수밭 너머로 보이는 풍력발전기
 해바라기밭, 옥수수밭 너머로 보이는 풍력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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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는 2009년부터 유로존에 들어와 유로를 공동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여행객들은 정말 자유롭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또 EU국가 중에서는 물가가 가장 싸 생활물가지수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맥주, 과자, 커피 등 생필품의 물가가 오스트리아의 2/3내지는 절반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제 고속도로를 벗어나 가까운 들판으로 간다.

그곳에는 밀, 옥수수, 해바라기들이 자라고 있다. 밀은 추수철이고, 옥수수도 한창 익어가고 있고, 해바라기는 열매를 맺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밀은 유럽 사람들의 주식이고, 옥수수는 사료로 쓰이며, 해바라기씨는 종자유(種子油)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밭 너머로 무수히 많은 풍차들이 돌아가고 있다. 밀밭과 해바라기 그리고 풍차, 고흐가 있었으면 멋진 그림을 그렸을 텐데.

두나이강에 이르자 보이는 브라티슬라바 성채

두나이강에 놓인 SNP다리: 다리 건너 왼쪽에 브라티슬라바 성채가, 오른쪽에 성 마틴교회가 보인다.
 두나이강에 놓인 SNP다리: 다리 건너 왼쪽에 브라티슬라바 성채가, 오른쪽에 성 마틴교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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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분쯤 후 버스기사가 돌아와 다시 차가 출발한다. 곧이어 E65고속도로와 만나는 분기점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브라티슬라바에 이르게 된다. 브라티슬라바는 두나이강(Dunaj)의 남북에 자리 잡고 있다. 강 남쪽이 신시가지고, 강 북쪽이 구시가지다. 두나이강에 놓인 SNP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인 강북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SNP는 Slovenského národného povstania의 약자로 '슬로바키아 민중봉기'를 의미한다.

슬로바키아 민중봉기는 독일군이 슬로바키아를 점령한 1944년 10월 29일 일어났다. 그러나 봉기는 실패로 끝났고 독일군이 물러가는 1945년 4월까지 빨치산 운동으로 이어졌다. 두나이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다리를 사람들은 이제 신교(새로운 다리: Nový most)라고 부른다. 그것은 이 다리가 1967~1972년 사이에 새로 놓여졌기 때문이다.

브라티슬라바성
 브라티슬라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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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는 슬로바키아 땅 두나이강에 놓인 5개의 다리 중 가장 통행량이 많고 유명하다. 다리에 가까이오자 저 높은 곳에 솟은 브라티슬라바 성채가 보인다. 높이 85m 절벽에 세워진 이 성채는 브라티슬라바 문장(紋章)에도 나온다. 이곳에 요새가 만들어진 것은 로마시대이다. 당시 두나이강이 로마와 북방민족의 경계였고, 북방 보이족(Boii)이 이곳을 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슬라브인들이 이곳 두나이강까지 진출해 모라비아제국을 세우고, 브라티슬라바를 수도로 삼았다. 그리고 10세기경에 돌로 성을 쌓아 현재 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1430년에는 중부유럽을 다스리던 지기스문트(Sigismund) 황제의 명으로 이곳에 고딕양식의 성이 지어졌다. 1650년에는 현재와 같이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고, 1740년 헝가리 왕이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성을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

두나이강: SNP다리와 유람선 선착장이 보인다.
 두나이강: SNP다리와 유람선 선착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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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하게도 1811년 성에 불이 나 성이 다 타버렸다. 그 후 140년 이상 성은 폐허로 남아있었다. 1953년 성을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려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1968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1993년 슬로바키아가 체코와 분리된 후부터 1996년까지 이 성채는 대통령궁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이 성은 박물관, 콘서트홀, 행사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나이강 북쪽의 구시가지로 들어가다

두나이 강변 리브네(Rybné) 광장, 차에서 내린 우리는 다시 한 번 성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눈을 강쪽으로 돌린다. 우리가 지나온 다리 밑으로 두나이강이 유유하게 흐른다. 사실 도나우강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도나우강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해 흑해까지 흘러가는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래서 이름도 도나우, 두나이, 두나, 두납, 두나레아 등으로 불린다.

기아자동차 광고판
 기아자동차 광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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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 브라티슬라바는 강의 중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강폭이 아주 넓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수량이 많고 수심이 비교적 깊어 유람선과 화물선이 운행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판스카(Panská) 거리로 간다. 그런데 길을 건너다보니 기아자동차 광고가 보인다. 씨드(Ceed)와 스포티지 차량 옆에 Made in SlovaKIA라는 글자가 보인다. 슬로바키아에서 기아가 만드는 자동차란 뜻이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곳 슬로바키아 질리나(Žilina)시에는 연 30만대 생산규모를 가진 기아자동차 공장이 가동중이라고 한다.

판스카 거리에서 처음 만난 문화유산은 성 마틴 성당(Dóm sv. Martina)이다. 이 성당은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 만들어진 고딕식 성당이다. 1563년부터 1830년까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명을 받은 헝가리왕의 대관식 장소였다. 그래서 85m 높이의 성당 첨탑 꼭대기에 십자가가 아닌 왕관이 설치되어 있다. 성 마틴 성당은 구시가지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시를 방어하는 건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성 마틴 성당
 성 마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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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폭 30m, 길이 70m, 높이 16m의 고딕식 건물이지만,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을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증개축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 성당이 성 마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734년 도너(Georg Raphael Donner)가 만든 성 마틴 조각이 중심제대 옆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 조각에서 성 마틴은 뒷발로 선 말을 탄 채 거지에게 몸을 숙여 자신의 외투를 잘라 주고 있다고 한다.

마틴 성당의 바깥벽에는 창문 형태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이 동화적이기도 하고 현대적이기도 하다. 틀림없이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성당 앞마당에는 청동으로 만든 현대적인 조각이 있다. 판스카 길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점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들의 식탁과 창문에는 꽃을 배치해 분위기를 돋우었다. 골목 사이로 성채도 보이고 성 미카엘문(Michalská brána)도 보인다.

성 미카엘문
 성 미카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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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카엘문은 브라티슬라바의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다. 14세기 말에 사각형탑 형태로 만들어졌고, 시계가 부착되어 있는 상부 팔각형탑은 1511~1517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16세기말에 양파모양의 청동지붕을 얹었다. 현재는 전체적으로 바로크 양식인데, 그것은 1753~1758년 재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엘러(Peter Eller)가 설계한 미카엘 성인의 조각상이 설치되었고, 그 때문에 미카엘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탑의 높이는 51m다.

브라티슬라바의 상징조형물 3인방

멋쟁이 나치
 멋쟁이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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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스카 길을 지나 중앙광장에 이르면 브라티슬라바의 상징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만나는 것이 멋쟁이 나치(Schöne Náci)다. 그는 중앙광장 옆 마이어(Mayer) 카페 앞에서, 연미복에 실크햇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엷은 미소로 인사한다. 그는 이그나츠 라마르(Ignác Lamár: 1897~1967)라는 시민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제과점 도제를 시작으로, 무대 보조, 구두장이, 짐꾼 등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늘 가난했지만 점잖은 신사로, 조용하며 멋쟁이였다고 한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조각가 멜리사(Juraja Meliša)다. 도심에서 두 번째 만나는 조형물이 벤치 위에 팔꿈치를 얹고 이야기를 엿듣는 나폴레옹이다. 사람들은 그 벤치에 앉아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이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나폴레옹일 것이다. 그러나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군지 자료를 찾아도 알 수가 없다.

노동자 추밀
 노동자 추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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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광장에서 조금 벗어난 라우린스카(Laurinská)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세 번째 조형물이 추밀(Čumil)이다. 추밀은 노동자로 맨홀을 빠져나오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훌릭(Viktor Hulík)에 의해 1997년 만들어졌다. 이 조형물을 보는 사람들은 추밀 주변에 엎드리거나 앉아 사진을 찍는다. 추밀은 아마 브라티슬라바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조형물일 것이다.

추밀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그래선지 마침 폴란드에서 온 기타리스트들이 음악을 연주할 준비를 한다. 그들은 우리 군복 같은 얼룩무늬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다. 그 중 한 친구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튜닝 개념으로 소품을 간단히 연주한다. 곡목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는 스페인 민요 로망스(La Romance)를 연주한다. 아내와 나는 3분 정도 그 연주를 듣고 다시 중앙광장으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 서유럽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재를 20회로 끝내고, 중부유럽 4국 연재를 시작한다. 중부유럽 4국은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다. 이들 국가 대표적인 도시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해 11회 정도 연재할 계획이다.



태그:#브라티슬라바, #두나이강과 SNP다리, #브라티슬라바 성채, #성 마틴 성당, #상징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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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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