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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3일 브뤼셀에서 난민 대책을 논의한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마친 후 앙겔라 메르겔 독일 총리가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브뤼셀에서 난민 대책을 논의한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마친 후 앙겔라 메르겔 독일 총리가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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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리아와 이라크 등 중동 난민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한 독일의 행보에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이 쏠렸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초기에 "증세 없이 예산 조정을 통해 망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공언했고, 지난달에만 27만 명에 육박하는 난민들이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들에게 쓰일 예산은 현재 연간 대략 130억 유로로 예측된다.

독일 안팎에선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동시에 뜨겁다. 지난달 초 메르켈 총리가 "독일이 전체 난민 부담을 지지는 않을 것"이며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도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난민 분산 수용'에 대해 암시하면서 헝가리와 영국, 독일 기독사회당(CSU) 등 내외부에서 난민 수용에 대한 총리의 입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폭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난민 정책에 대해 반발 기류가 거세지자 지난달 말 독일 정부는 기존의 월 143유로 현금 대신 식품 구매권 등으로 대체해 지급하고, 시리아 등 내전 상태에 있는 국가의 난민을 이른바 '안전한 국가'들보다 우선해 많이 수용하기로 하는 등 억제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올해 유입 난민 숫자는 작년보다 4배 이상 늘어난 80만 명에 달하며 지방정부의 난민 관련 지원예산은 20억 유로로 작년보다 2배 가까이 확대된 상태다.

난민 문제는 정치, 경제를 넘어선 시민사회 영역의 문제이기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례없는 난민 유입 사태를 맞아 독일이 보여준 파격적인 태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독일이 당면한 경제적 문제, 즉 세계 2위 고령화 국가로서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본다.

또한, 어느 쪽에선 과거 나치 정권의 잘못을 반성하는 역사의식을 실천하려는 태도로, 다른 한쪽에선 관용 정신을 강조하는 교육 체계의 영향으로 본다. 독일이 먼저 주도권을 잡은 뒤 다른 회원국들에 난민 수용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난민 문제는 경제나 정치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제는 실리주의, 관용 정신은 인도주의라는 외교적인 부분과 연관되지만, 난민 문제는 독일에서 구성원을 이루고 살아가는 시민사회 영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핵심에는 종교가 자리한다.

종교의 핵심은 '믿음'을 기초로 한 '공동체의 구성'에 있다. 같은 가치 아래 다수가 모여들 때야 비로소 종교는 의미로 쓰이게 된다. 그 시점부터 종교는 관계, 규칙, 기준을 판가름하는 도덕적 판단의 척도이자 정체성의 기반으로써 작동하기 시작한다. 세속적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외부인'들과 분리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종교는 수많은 사람에게, 때로는 파괴적일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난민들에게 여타 유럽 국가들이 선뜻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이유는 유사성 없는 이슬람 문화와의 접촉이 그만큼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로바키아 총리 로버트 피코는 향후 2년간 '진짜 난민만, 그것도 기독교도만' 받겠다고 선언했고, 헝가리 총리 빅토 오반은 "크리스천의 유럽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 무슬림인) 난민을 거부한다"고도 말했다. 종교는 결코 관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인들이 보여준 종교의 '세속화'

주요 도시 중앙역에서 환영한다는 팻말을 든 채 마중을 나오고, 음식과 옷가지, 임시 숙소와 긴급 의료진을 마련해 난민들을 맞이한 독일인들의 적극적인 자세 저변에도 종교에 대한 태도가 자리한다. 그들은 단순히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난민을 비하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종교적 특수성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성급히 일반화하지 않는다.

언어적, 종교적, 인종적으로 판이한 난민의 유입은 독일인들에게 적잖은 문화 충격을 줄 것이다. 특히 서로 다른 종교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 결과 압도적 다수의 독일인이 난민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을 지지했으며 기업과 지역사회에서 난민 수용을 위한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됐다. 이 같은 실천이 가능한 까닭은 종교가 시민사회의 영역 안에 흡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종교가 이데올로기로써 하나의 국가와 맞물려 지배 담론으로 활용되는 쪽이 있을 수 있고, 종교가 공적 담론에서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 쪽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종교가 '순수한 교리'를 넘어서 세속적 세계에 개입한다는 점은 같지만, 양상에선 다르다. 독일은 후자의 경우다. 기독교 국가로서의 종교성을 국가의 공식적 태도로 삼지 않았다.

독일 국민의 과반은 개신교와 가톨릭이며, 독일의 휴일과 축제를 비롯한 문화는 대부분 기독교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합심해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종교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이 타 종교에 열린 자세를 취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관련 있을 것이다. 종교적 정체성을 인격적 정체성으로 확대해석해 유대인들에게 가공할 만한 차별과 폭력을 가했던 시기가 불과 70여 년 전이다. 독일인들이 난민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반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근본적인 태도를 바꾼 것에 가깝다. 속죄에 대한 책임감만 가졌다면 시민사회의 반응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도가 전 국민의 과반수라는 사실이 국가 지도자, 그리고 국민이 취한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경제, 정치 상황을 뛰어넘는 슬로바키아-헝가리와 독일의 또 다른 차이다.

독일의 열린 자세, 다른 유럽 국가들도 본받아야

물론 상황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치솟은 난민 수로 인한 수용시설 부족, 일부 극단적 극우 세력의 반대 시위 및 테러 협박, 자신을 IS 조직원이었다고 말한 시리아 난민에 대한 경찰 수사 등 독일 연방이민난민청(BAMF)은 쏟아지는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회 분열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 7월에 비해 하락했다.

난민 수용을 주저했던 프랑스는 이미 알제리 등 아랍권 난민 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에서 혜택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고수하며 프랑스 사회에 수용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독일에서도 프랑스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들을 환영하던 독일인들의 태도를 많은 난민은 쉬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독일 정부는 독일 헌법을 아랍어로 번역해 책자를 만든 뒤 난민들에게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정부 차원에서 헌법 '핵심조항' 20개의 번역 책자 1만 부를 제작한 까닭은 난민들이 문화적으로 독일 사회에 신속히 녹아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권력분할, 정교분리, 남녀평등, 표현의 자유 등은 현대 민주주의의 정치 원칙들이기도 하지만 종교, 그리고 종교를 바탕으로 한 사고방식과도 연관된다.

메르켈 총리의 판단, 그리고 독일 시민사회의 발 빠른 대응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도 실리주의와 인도주의를 넘어선 판단이 필요하다. 문화 충돌이 예상됨에도, 그리고 극단적 세력의 상시적 테러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열린 자세를 취했다. 독일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과거 없이도, 종교를 정체성과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 종교를 차별의 근거로 삼지 않는 태도는 지향될 수 있다.

다른 국가들이 극복하지 못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독일은 종교의 세속화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갈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독일인들의 행동은 충분히 도덕적이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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