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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마을이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 교토에 자리한 우토로 마을은 일제가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 집단거주 구역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군 비행장 건설은 중단됐고, 그대로 방치됐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조선인 노동자도 우토로 마을과 함께 버려졌다.   

우토로 마을에 남았던 조선인 노동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온 후 일본에 남은 이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자이니치와 나치에게 쇼아(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에게 관심이 많다. 어떤 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경계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레 이목을 끈다.

이들을 일컬어 경계인이라 한다.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경계인을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한국인이라는 완벽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들의 존재가 이색적이어서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이니치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역사적으로는 충분한 연관이 있기에 특별하다. 특히 자이니치인 서경식의 책들, 쇼아 생존자이자 증언자인 프리모 레비를 다룬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나 '우리 미술'을 다룬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탐독하면서 관심은 증폭했다. 이번에 읽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란 책 역시 앞서 언급한 관심과 같은 맥락에 있다. 자이니치의 어제와 오늘이 무척 궁금했다.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니치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책표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책표지
ⓒ 북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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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이해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 자이니치의 국적과 관련된 이야기다. 자이니치는, 특히 자이니치 2세부터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를 사용하며 일본에서 일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인과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국적만 일본이 아닐 뿐 일본인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자이니치는 한국 국적이나 조선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국적을 택하는 자이니치도 있다. 하지만 미국 국적이나 타국 국적을 따지 못해서 안달인 우리와 달리, 자이니치는 한국 또는 조선 국적과 일본 국적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자신의 국적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이니치에게 국적은 일본에서 당한 배제와 차별을 표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단지 한국 또는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 즉 일본에 의해 가지게 된 것을 이유로) 배제와 차별을 당해왔는데, 현 국적을 쉽게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일본에서 당한 배제와 차별에 굴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이니치로서 이 같은 배제와 차별을 피해 스스로 특정한 공동체에 소속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경계인의 삶은 당연히 피로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의 안정감은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하지만 자이니치에서의 탈주는 보통 성공하지 못하고 끝난다.

"한국에서 유학하는 자이니치 가운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 자이니치인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완벽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다. 어중간한 자이니치의 삶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누구도 완벽한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본문 128쪽)

일그러진 민족주의의 폐해

"유학 당시 재미동포와 재중동포를 많이 만났다. … 중국에는 조선족 자치구와 학교들이 있다. 집에서도 조선어로 말한다. 미국의 코리아타운에 가 봐도 모두 한국어로 말한다. …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말을 못하게 된 자이니치만 한국인·조선인이라고 하고, 국적도 유지하고 있다. … 자이니치가 그러는 것은 코리안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이후 일본 사회의 문제다."(본문 75~76쪽)

자이니치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은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한다. 이는 일본제국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일본 사회의 문제다. 최근에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 약칭 '재특회'가 등장해 자이니치에게 물리적인 폭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여러 일본 극우 정치인의 망언은 덤이다.

이 같은 일그러진 민족주의는 한국에서도 횡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특히 제3세계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은연중에 차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민족을 강조하고 차별을 합리화하는 극우주의가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자이니치나 다른 소수 집단을 특정 집단에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는 없나

"자이니치는 일본 국적 취득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완전한 일본 사람으로는 일본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것이 국적입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자신만 알고 있는 아이덴티티의 증거입니다. 21세기에 왜 바보같이 국적 같은 것에 집착하느냐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본문 373~374쪽)

선택할 수 없다면 그대로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말은 참 쉽지만 일본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자이니치를 차별한다면 일본 사회도 자이니치를 차별할 것이다. 재특회는 끊임없이 날뛸 것이며, 자이니치는 일본 사회의 배제와 차별 속에서 자신의 어중간한 정체성 때문에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무한도전>으로 촉발된 우토로 마을 그리고 우리가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재일교포 등으로 부르는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이 민족주의로 환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가 모어(母語)이며, 일본인처럼 생활해온 사람들이다. 단지 국적만 일본이 아닐 뿐이다. 자이니치가 자이니치로 살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의 역사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일본제국 vs. 자이니치>(이범준 씀/ 북콤마/ 2015. 7/ 정가 18,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 대결의 역사 1945~2015

이범준 지음, 북콤마(2015)


태그:#자이니치, #재일조선인, #재특회, #무한도전, #우토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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