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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제17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새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사이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6월 16일,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우에노 공원 연못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거닐었을 한 음악가가 떠오른다. 일제시대 때 '우에노 음악학원'에서 유학하신 분이다. 지금도 학교이름이 그대로 인지 그리고 학교가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텐데 과연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후일 그 음악가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본군 입대를 종용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다녔다고 한다. 해방이 된 후에도 그분은 음악계의 중진으로 활약했다. 친일의 잔재가 전 분야에 걸쳐 남아있다. 음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요코하마에 있는 '우리학교'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에서.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에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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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이곳 '우리학교'(조선학교) 중 하나인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로 향했다.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복도에 들어서자 '학교 방문을 환영한다'는 포스터가 여기 저기 눈에 들어온다.

환영 공연을 관람한 뒤 강당을 나서는데 한 여학생이 복도에서 나를 붙잡는다.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이었던 '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 제2회("사탄 짓 그만둬라"... 친정엄마의 의절 선언)를 복사해 손에 들고 있었다. 이를 내게 보여주며 말을 붙인다.

"신 선생님, '종북 몰이'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머니께서 '이제 더 이상 보지 말자'고 하셨다는데 그 대목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지금도 그러세요?"

학생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나는 얼른 이 학생을 안심시켰다.

"아녜요. 이제 곧 연재가 끝날텐데 친정 어머니 이야기나 나올 거예요. 이제는 오해를 다 푸셨어요. 미국 우리집에도 다녀가셨고요. 고마워요, 학생."

 아름다운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 하굣길에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아름다운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 하굣길에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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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여학생이 입고 있는 하얀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칭찬해줬다. 그러자 학생은 내게 "집에 갈 때는 일본 학생들의 폭력에 대비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간다"라고 대답한다. 분노와 함께 가슴이 아려온다.

그러나 지금 재일동포들의 '우리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 난관은 바로 재정 문제다. 왜냐하면 일본 정부가 고교 교육 무상화 제도에서 유독 '우리학교'만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재일동포들과 양심있는 일본인들이 합세해 함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엔에서도 논의 대상이 되고,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을 철회하라'고 권고도 하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교육을 정치와 연결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편협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이 대국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재일동포들의 '우리학교'는 이대로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우리학교'의 탄생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해방된 후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의 얼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학교를 세울 당시의 이야기들은 감동 그 자체다. 환갑잔치 비용을 내놓은 노인, 결혼 자금을 기부하며 결혼식을 미룬 젊은 연인들, 자그마한 내 집 장만을 위해 모아놓은 돈을 흔쾌히 쏟아놓은 부부까지…. 이렇게 세워진 학교가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코하마에서의 강연도 대성황이었다. 빈자리가 없다. 마치 리틀엔젤스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세계 각국을 돌며 공연했을 당시, 무대에서 바라본 객석에 빈자리가 있었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조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생각으로 공연한 그때의 마음이나 통일을 염원하며 강연을 하는 지금의 마음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일본에 만연한 '재일동포 차별'

호텔로 걸어가는 길에 남편이 일본 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찌노 아카리가 도테모 기레이네 요코하마 부루라이토 요코하마~."
"무슨 뜻이에요?"
"거리의 불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요코하마, 푸른빛 요코하마. 뭐 대충 그런 뜻일 거야. 소문에 의하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시다 아유미도 한국(조선)계 일본인이라는 것 같아. 그게 사실인지 이곳 동포들에게 물어봐야겠네."

일본의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 중 일본 이름을 쓰고 있지만 실은 재일동포들인 경우가 꽤 있다는 말을 미국에 살고있는 재일동포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에 의하면, 민족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출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 연예인이 되거나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심하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3세, 4세임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이 없음은 물론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 게다가 많은 일본의 유수 기업들은 재일동포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으로 귀화한다고 해도 '신일본인'이라는 기록이 3대에 걸쳐 남는다고 한다. 이 시대에 과연 이런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나마 다행히 겉모습으로는 전혀 구분이 되지 않으니 망정이지, 만약 생김새마저 달랐다면 재일동포들이 겪었을 고통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의 제도적 차별은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차별은 엄청난 인권유린이다. 이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운운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반드시 국제적으로 여론화해야 할 대상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앞으로 재일동포를 향한 일본의 차별에 대항해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조선학교에서 만난 '금도끼와 은도끼'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잠을 설쳤다. 미국을 떠난 이래 3일 동안 10시간도 자지 못한 것 같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있다. 왼팔 마비 증세도 더 심해진다. 식욕도 없어 커피 한 잔 마시고 진통제를 먹으니 속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강연장을 메우고, 눈물을 글썽이는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는다. 게다가 일본 일정을 마치면 평양에 가 수양딸 설경이를 만나 푹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이 정도는 견딜만 하다.

오늘(6월 17일)은 신칸센을 타고 '천년 고도' 교토로 간다. 이곳에서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도착하자 마자 '우리학교'를 방문하고 저녁에는 강연을 한다.

 '금도끼와 은도끼'를 읽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의 모습.
 '금도끼와 은도끼'를 읽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의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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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과정과 초등학교 과정이 있는 '교토조선초급학교'. 이 학교는 산기슭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도 새로 지어 시설도 최고급이다. 학교로 오는 차 안에서 언뜻 봤던 일본 학교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최상이다. 몇 개로 나누어져 있던 학교를 통합해 이곳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학교를 세우기까지 이곳 동포들이 쏟아부은 정열과 노력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선생님이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교실에 들어가니 칠판 위에 '금도끼와 은도끼'가 쓰여 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 오며 눈물이 핑 돈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학생 곁을 지나치며 한 학생 한 학생 머리를 쓰다듬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선생님과 말없이 눈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악마의 자비'를 봤다

안내를 맡은 분께서 강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절 구경을 하자고 한다. '키요미수데라'라는 절인데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 하나란다. 한자로 표기된 절 이름을 우리말로 읽자면, '청수사'다. '맑은 물이 흐르는 절'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절벽 위에 세워진 절 치고는 그 규모가 꽤 크다는 것 외에 그리 특이할 만한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내겐 절 자체보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가가 더 인상적이었다. 교토의 특산물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남녀들이 걸어갔다.

절 근처에는 '토요꾸니 신사'가 있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수장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화려하고도 으리으리한 사당이다. 차창을 통해 입구만을 바라보며 지나쳤다. 그 신사를 조금 지나쳐오니 '이총'이라는 곳이 있다. 귀 '이(耳)'에 무덤 '총(塚)'. 즉 '귀무덤'이라는 곳이다. 바로 우리 조상들의 귀와 코가 매장돼 있는 무덤이다. 나는 그곳에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조상들의 귀와 코가 매장돼 있는 교토의 귀무덤.
 우리 조상들의 귀와 코가 매장돼 있는 교토의 귀무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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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정유재란을 일으킨 왜구들은 전과의 증거물로 우리 조상들의 목을 베어 갔다고 한다. 점차 그 양이 너무 많아지자 머리 대신 귀와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가져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는데 그 수가 무려 10만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이렇게 가져온 '전과물'을 '공양의 예'(?)를 갖춘 뒤 이곳에 묻었다니...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려는 악마의 자비인가.

1시간 정도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객석이 이미 거의 다 차 있다. 조국통일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염원이 그대로 전달된다. '귀무덤'을 생각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강연을 시작했다.

도쿄·요코하마와 마찬가지로 이곳 교토에서도 강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무슨 이유인지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거리의 풍경이 서울과 비슷한데도 이렇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터벅거리는 남편의 발걸음 소리도 내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교토 강연 현장. 강연 시작 전부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교토 강연 현장. 강연 시작 전부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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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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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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