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04 08:23최종 업데이트 17.06.07 10:38
'당신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꿈틀비행기 2호'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다녀왔습니다. 무엇이 덴마크를 행복 사회로 만들었는지, 8월 13일부터 22일까지 8박 9일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좋은(?) 경기였어!" 13일 '행복한 나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덴마크로 떠난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2호'가 17일 덴마크 코펜하겐 '토료세 슬롯츠 에프터스콜레(Tølløse Slots Efterskole)' 학생들과 축구 시합을 했다. 이제 막 초중등학교(폴케스콜레·Folkeskole·9학년 제도)를 졸업한, 이 팔팔한 덴마크 청춘들이 '평균나이 45세'인 꿈틀비행기 팀의 상대였다. 경기 결과는 3-1로 덴마크 학생들의 승. ⓒ 최유진


"악!"

덴마크 현지 축구 데뷔전은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다. 13일 '행복한 나라, 덴마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2호'를 탄 기자는 17일 토료세 슬롯츠 에프터스콜레(Tølløse Slots Efterskole)에서 출전한 축구 시합 직후 불행해졌다.


장시간 비행에 따른 피로감, 익숙치 않은 천연잔디 등의 악조건은 둘째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평균나이 45세'인 꿈틀비행기 팀의 상대가 이제 막 초중등학교(폴케스콜레·Folkeskole·9학년 제도)를 졸업한, 축구공만 보면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덴마크 학생들이란 것이었다.

어설픈 도전장은 결국 화를 불러일으켰다. 덴마크 학생 중 가장 날렵했던 선수와 공을 다투다 발목을 부딪힌 기자는 한동안 푸르른 덴마크 천연잔디에 등을 기댄 채, 비명을 내뱉어야 했다.

더 이상 못 뛰어... 경기 직후 기자의 지친 모습. ⓒ 최유진


"우리가 이겼어!" 경기 직후 덴마크 학생들이 축구화를 벗으며 웃고 있다. ⓒ 소중한


이왕 다친 김에, 병원 한 번 가보자

18일 아침, 오른쪽 발목이 부어올랐다. 이날 오전 '스반홀름 공동체마을(Svanholm Kollectivet)' 일정까지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점심식사 후 붓기와 통증이 심해졌다. 함께 꿈틀비행기에 오른 동료들도 기자의 발목을 보고 "많이 부었네.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라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불현 듯, 나흘 전(14일) 덴마크 코펜하겐 뉘하운(Nyhavn) 운하에서 만났던 프랑스 부부가 생각났다. 아내의 팔에 의료용 밴드가 채워져 있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남편은 "여행 도중 다쳐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말과 함께, 놀라운 정보를 소개했다.

"덴마크 병원은 외국인에게도 무료입니다."

무상의료, 개인 주치의 제도 등 덴마크의 선진화된 공공의료 정책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관련기사 : "부자 되려고 의사 한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 범주에 외국인도 들어간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어쨌든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자'는 심정으로, 다친 김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덴마크 의료 정책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이날 오후, 휴가 차 덴마크에 와 있던 토마스 리만(Thomas Lehmann) 주한 덴마크 대사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코펜하겐 교외의 프레데릭스보르그(Frederiksberg) 병원을 찾았다.

응급 진료소 앞 18일 찾은 코펜하겐 교외의 프레데릭스보르그(Frederiksberg) 병원 응급 진료소(Akutklinik) 앞. ⓒ 소중한


"엑스레이, 엠알아이도 무료?", "당연하지"

병원을 찾기 전, 약간의 절차가 필요했다. 기자는 개인 주치의가 없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먼저 '1813(덴마크 수도권 비상 의료 라인)'에 전화를 걸어 개인 신상과 부상 정도를 알려야 했다. 1813(누리집 바로가기)은 즉각 개인 주치의를 만날 수 없거나 골절 등 긴급한 부상을 입은 덴마크 수도권 주민이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기자와 같은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다(누리집엔 "생명을 위협할 만한 긴급 의료지원의 경우 응급 전화 112를 추천한다"고 나와 있다).

환자의 증상이 병원에 갈 만한 정도라고 판단되면, 1813 측은 임시 시민번호를 부여하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환자를 배정한다. 임시 시민번호 '2*0*8*0*S*1'(생년월일과 숫자, 영어 알파벳으로 구성)'을 받은 기자는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프레데릭스보르그 병원에 배정됐다.

병원 응급 진료소(Akutklinik)에 도착해 임시 시민번호를 제출했다. 병원 직원이 다소 어색한 발음으로 기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접수가 잘 됐구나'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원에게 "진료를 위해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료비가 외국에게도 무료인가"라고 물었다. "물론이다"라는 답을 듣고도, 노파심이 가시지 않아 "엑스레이(X-ray)나, 엠알아이(MRI)를 찍어도?"라고 되물었다. 직원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는 촌각을 다툴 만한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접수 순서에 따라 약 50분을 기다린 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간단한 진찰과 함께 엑스레이를 찍었다. 인대가 늘어났다(Distorsion af ankel, 염좌)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발목 움직임을 제한하는 밴드도 받았다. 이 모든 게 '공짜'였다.

"덴마크인 아무도 아깝다 생각하지 않을 것"

코펜하겐 비상 의료 라인 '1813' 18일 찾은 코펜하겐 교외의 프레데릭스보르그(Frederiksberg) 병원 응급 진료소(Akutklinik) 앞에 1813(덴마크 수도권 비상 의료 라인)'과 관련된 홍보물이 놓여 있다. ⓒ 소중한


앞서 설명했듯, 덴마크는 무상의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덴마크 국민은 치과, 성형, 미용 목적의 의료비를 제외하곤, 암·희귀질병 치료까지 평생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기자와 같이 아주 짧은 기간 덴마크에 머무는 여행객에게도 병원비를 받지 않는다(치과, 성형, 미용 목적, 암·희귀질병 등 제외). 더불어 개인 주치의 제도는 덴마크 국민은 물론, 단기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에게도 주어지는 권리다.

이는 덴마크 국민이 내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세금 때문에 가능하다. 세계 경제지표 전문 사이트 트레이딩 이코노믹스(Trading Economics)에 따르면, 덴마크 국민 개인 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55.6%(2014년 12월 기준)으로 한국보다 약 18% 가량 높다. 고소득자의 경우 수익의 65%를 세금으로 내는 사람도 있다.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궁금해졌다. 자신이 낸 세금, 그것도 고율의 세금으로 인해 외국인들까지 공짜로 병원에 다니는 이 상황을 덴마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병원 관계자는 "자신이 (병원이나, 덴마크 국민을) 대표해 말할 수 없는 처지"라면서도 "(외국인들에게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하는 것과 관련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덴마크 국민) 아무도 그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함께 진료를 기다리던 애스트리드 로드 핸슨(Astrid Rode Hansen·33·여)씨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팔이 부러져 통원 치료를 받고 있던 그는 "덴마크에 머물고 있으면 누가 됐든 우리(덴마크인)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에서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택시기사 킴 핸슨(Kim Hansen·58·남)씨도 "당신이 계속 아플 것도 아닌데, 여행 온 사람들을 위해 덴마크가 그 정도는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병원 신세... 17일 덴마크 코펜하겐 '토료세 슬롯츠 에프터스콜레(Tølløse Slots Efterskole)' 학생들과 축구 시합을 하다 다친 기자가 18일 코펜하겐 교외의 프레데릭스보르그(Frederiksberg) 병원을 찾아 진료실에 앉아 있다. 무상의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덴마크에선 외국인에게도 병원비를 받지 않는다. ⓒ 최유진


세금 믿는 사회, "당신도 우리처럼 세금 내면..."

덴마크는 단지 착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까. 그들이 관대한 것은 그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기자는 덴마크인에게서 '세금에 대한 신뢰'를 발견했다.

덴마크 국민은 수익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지만, 무상으로 의료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들은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무료로 다니며, 심지어 독립한 대학생의 경우 한국 돈으로 약 12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이는 덴마크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 권리는 우리나라 헌법에도 적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Government at a Glance 2015)'에 따르면, 2014년 덴마크 국민의 의료와 교육 시스템 만족도는 각각 85%(OECD 국가 중 6위, OECD 평균 71%, 한국 70%로 22위), 75%(OECD 국가 중 11위, OECD 평균 66%, 한국 53%로 30위)를 기록했다. '내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신뢰가 "덴마크 땅에 있는 사람이 아프면, 그 사람이 누구든 덴마크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로 이어진 것이다.

택시기사 킴 핸슨씨는 기자와 헤어지며 "덴마크인은 외국에 나가 다쳐 병원에 가더라도, 그 치료비를 정부로부터 모두 지원받는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당신 나라도 우리처럼 세금을 내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귀뜸했다.

아…. 멀쩡한 보도블럭이 연말마다 뒤집히는 장면을 봐 온 입장에서, 덴마크 택시기사의 조언은 그야말로 딴 나라 이야기였다.

한국 이름 적힌 덴마크 진료기록부 7일 덴마크 코펜하겐 '토료세 슬롯츠 에프터스콜레(Tølløse Slots Efterskole)' 학생들과 축구 시합을 하다 다친 기자가 18일 코펜하겐 교외의 프레데릭스보르그(Frederiksberg)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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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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