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혼자 살면 짐 쌀 일이 많다. 자기 집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 늘 거주가 불안하고, 특히 나처럼 하는 일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그런 처지가 되곤 한다. 혼자 이사할 때, 불편한 점은 이삿짐센터를 이용하기 애매하다는 점이다. 짐은 얼마 되지 않는데,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택배를 주로 이용한다.

전역 후에 나만의 공간을 처음 가졌을 때는,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이 어마어마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고향에서 모셔오고, 공간을 꾸미고 싶어  이것저것 많이 업어왔다. 당시에는 DVD와 책 모으기에도 심취해 있어서 짐이 상당히 많았다.

2년을 살다가 새로 잡은 직장 근처로 첫 번째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버려야 했다(주제넘게 조언을 하자면 나는 인생에서 한번 정도의 짐 싸기는 권장하는 바다. 자기에게 진짜 필요한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 소중했지만 잊혀졌던 물건은 없는지 살펴볼 기회가 된다).

새로 이사가는  곳은 처음에 살던 곳보다 훨씬 좁았고, 오래 있지 않을거라 생각했기에 내 짐은 처참하게 정리되었다. 책과 DVD는 주변인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은 헌책방에 헐값에 넘겨야 했다. 가구는 버리는 데도 돈이 든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많아, 모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쳐서는 돈 몇만 원을 주고는 침대며 티브이, 책상 등 다 가져갔다.

잘 입지 않는 옷들은 헌옷 수거함으로 직행했고, 잡다한 소품들은 대부분 버려지거나 쓸 만한 것들은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쓸모는 없지만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물건들은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니 내 짐은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게 되었고, 택배로 보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두 번째 짐 싸기는 훨씬 수월했지만,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고, 여전히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세 번째부터는 이 과정이 거의 사라졌다. 정말로 내 삶에는 필요한 물건만 남게 되었다. 배낭 한개와 박스 두개, 배낭은 메고 박스는 택배로 보낸다.

몇 번의 짐 싸기는 어느새 내 생활도 바꿔 버렸다. 일단 불필요한 사치가 완전히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수준을 넘어섰다.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어디서 잠시 빌릴 수 있는 곳이 없나 먼저 알아보게 되었다. 책과 음반, DVD를 사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학교 도서관과 인터넷은 나에게 차고 넘치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삶을 조금 이롭게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물건들(예를 들어 헤어드라이기, 화장실 깔개 등)은 쓰지 않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없이 살다보면 다 적응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아도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먼저 따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마음에 걸리던 선물 재활용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 일도 아닌 일상이 되었다.

내것에 대한 애착이 거의 사라져버리고, 노트북과 스마트폰과 한 두 벌의 옷 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물건들도 비싸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대체 불가능하기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까지 영역은 확장된다. 사람을 만나도 굳이 친구가 되지 않는다. 만나서 즐겁지 않은 사람들과는 점점 형식적인 안부도 묻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몇 번의 짐 싸기로 사실상 정리되어 버렸지만, 그것이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원한다면 언제든 택배로 주문하면 그만이다.

좋든 나쁘든,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태그:#짐싸기, #고시원, #젊음, #20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