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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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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4년 8월 13일 전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병영문화혁신위원 등을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동안 쌓여온 뿌리 깊은 (군의) 적폐를 국가혁신과 국방혁신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다. 옳은 말이다. 분명 병영생활을 하는 우리 군인의 현실은 교도소 재소자의 그것만도 못하다.

적어도 오늘 우리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기강'을 잡기 위한 가혹 행위나 일방적인 폭행으로 죽어갔다는 소식은 없다.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착취하거나 권한을 남용하여 부조리한 일을 획책한다는 소식도 드물고, 재소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죽어갔다는 소식도 없다. 부당한 수형생활을 못 견뎌 재소자가 자살했다는 소식도 잦아든 지 오래다.

그러나 군대에선 아직도 이런 일이 속출한다. 누구나 알고 있던 부조리와 비리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와중에도 폭행과 부정부패 관련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하물며 대책을 마련한들 진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정말 적폐도 이런 적폐가 없다.

뿌리 깊은 적폐, 감옥보다 못한 군대?

그렇다면 대체 교도소와 군은 뭐가 달랐기에 오늘날 이런 차이를 보일까? 교도소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상황에 대한 상시적 감시를 받는다. 또, 교도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교도소 외부 기관에서 수사가 이루어져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된다. 교도관들 또한 폐쇄성을 탈피하고 스스로 인권의식을 가다듬으며 부조리를 차단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은 법과 제도의 변경을 통해 시작되고, 발전하고,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는 군의 전근대적 악습 또한 투명성 제고를 통한 민주적 감시의 강화 그리고 독립된 외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의 감시 및 조사와 처벌을 통해 상당 부분 나아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독재정치와 더불어 군부 엘리트들이 한동안 우리 사회의 강력한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동안에는 군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부담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어 군의 정치개입이 차단되었다는 지금에도 군과 군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미약하다.

단지 간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군내의 인권유린이나 폭행사건,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는 총기 난사사건, 진료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젊은 병사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만 순간적 관심과 비판이 끓어올랐을 뿐 그 본질에 대한 천착과 제도적 정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심각한데 여전히 별다른 변화가 없다.

군대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되게 운영되어야

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법에 의한 지배가 보장되는 정치적 공동체를 수호하는 데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고 한다. 그렇다면 군대 자신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되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이 무시되면, 군인은 결국 상관의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복종하는 노예나 기계가 되어 국가가 공인하는 폭력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현대사에서 우리 군이 저지른 여러 가지 어두운 사건들은 그러한 점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군이 헌법적 원리에 의하여 통제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시대착오적인 군 사법제도가 온존하는 한 군인 인권보장의 최소한을 지키려는 노력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민주화 시대와 구분되는 표징인 '군사독재' 시절의 적폐에 대하여 우리는 단 한 번도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이룬 바 없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군인은 마땅히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인권을 향유하는 존재임에 의심이 없어야 한다. 군인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창설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확인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폐지를 포함한 군사법제도의 개혁과 군인인권법의 제정은 필수적인 것이며, 국가배상 및 국가유공자 제도 또한 헌법적 차원에서 재정립되어야만 한다.

지휘관의 제왕적 지위를 보장하며 군내 각종 사고의 진실을 은폐하는 주범으로 부각되고 있는 우리 군사법원법의 역사를 보면, 관할관의 권한이 점점 축소되는 것과 함께 심판관의 역할도 축소되는 쪽으로 개정됐다.

한마디로 일반 형사재판에 가까운 쪽으로 천천히 변해왔다. 애초 지휘관 사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재판부를 구성하는 3인 가운데 2인이 일반장교인 심판관이었다. 이러한 구성이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군판사를 과반수로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 불과 1994년의 일이다.

무소불위의 사법권력을 행사하는 군 지휘부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서 일어나고 있다.
▲ 재판 참석한 '윤일병 사망사건' 가해 병사들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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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도 지휘관(관할관)은 강제수사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고 자신의 부하를 재판부에 포함해 재판의 성립에 관여한 다음 확인조치권을 통해 이미 선고된 판결의 내용까지 변경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관할관 및 심판관과 관련한 군사법원법의 규정을 보면, 군사법원의 행정사무는 법관이 아닌 관할관(管轄官)이 관장하며(제8조), 관할관은 국방부 장관 또는 군사법원이 설치되는 부대와 지역의 사령관, 장 또는 책임지휘관이 된다(제7조). 군판사는 각각 군 참모총장 또는 국방부 장관이 임명한다(제23조). 군사법원은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재판관은 관할관이 지정하며(제25조),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한다(제22조). 심판관은 장교 중에서 관할관 또는 군 참모총장이 임명한다(제24조).

보통군사법원은 군판사 2명과 심판관 1명이 재판관이 되고, 약식절차에서는 군판사 1명이 재판관이 된다(제26조). 고등군사법원은 군판사 3명이 재판관이 되는데, 관할관이 지정한 사건의 경우에는 심판관 2명이 추가된다(제27조). 군사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관할관이 확인조치를 하여야 한다.

관할관은 무죄, 면소(免訴), 공소기각(公訴棄却), 형의 면제, 형의 선고유예 또는 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제외한 판결을 확인하여야 하며, '형법' 제51조 각 호의 사항을 참작하여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제379조).

실로 대통령도 갖고 있지 않은 관할관만의 특이한 권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보호와 정의구현이라는 사법의 역할은 형해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군사법제도의 정당성은 물론이고 군에 대한 근본적 불신의 원인으로 자리하였다.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파견 군대를 위해 설립된 군사법원은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존재 여부가 다르다. 한국과 같이 '헌법'에 군사법원의 설립근거를 두었지만, 독일은 군사법원을 두지 않고 있다. 더 강력한 적(중국)과 인접한 대만의 경우에도 군사법원을 폐지했다.

반면에 전 세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군사법원이 가장 발달해 있다. 그런데도 지휘관의 사법절차 관여를 철저히 차단한다. 비교법적 관점에서 각국의 군 사법제도를 검토해보면 군 지휘관에게 사법권까지 부여하는 전통적인 군 사법 운용방식이 급격하게 와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우리와 같은 지휘관 군림의 군사재판 제도를 가진 나라는 없다. 지휘권의 행사에 사법권의 행사가 당연히 포함된다는 인식은 이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유지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현재 우리 군사재판의 85%를 차지하는 것은 일반 형사범이며, 군형법상의 특수범죄라는 것도 군무이탈, 상관 폭행 등 본질에서 일반 형사범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사건 수도 매우 적어 도무지 100개에 육박하는 군사법원이 별도로 존재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군사법제도는 항상 특별히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군사법제도가 사법권의 독립과 군인 및 국민의 인권보장에 이바지하는 제도로서가 아니라, 군대조직의 특수한 이해관계가 언제나 우선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군사법원법 제28조는 "재판관은 피고인보다 동급 이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의 경우에는 아예 재판부조차 구성할 수 없어 처벌을 못하게 된다. 이런 어이없는 결과를 고려하면, 실제 그 제도에 따라 혜택을 누리는 집단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고위 장교에 국한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헌병들이 재판정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 열리는 군사법원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헌병들이 재판정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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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를 더럽힌 주요 사건의 대부분은 군사법원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상시 계엄상태의 나라에서 군사법원은 형사재판에 관한 거의 모든 재판권을 독점하며 정적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기능에 충실하였다. 이토록 반민주적이고 전근대인 군사법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할 군사정부 시대의 유물일 뿐,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과거 우리 군은 헌법의 규율을 받는 국가기관의 하나로 인식되고 운용된 것이 아니라, 헌법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특수조직으로 치부되어 온 경향이 있다. 군 자신도 시민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자임하며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무력화하거나 자신에게 편리한 쪽으로만 활용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군은 사회의 민주화와 합리적 발전과정을 따라가지 못한 채 홀로 고립되고 말았다.

군 지휘관들 가운데에는 사법권을 지휘권의 한 내용으로 포함할 때 군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지휘권의 개념을 초법적인 것으로 전제하며 부하들의 위치를 항상 지휘관의 관리와 보호 아래 두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나아가 권력을 행사하는 지휘관의 무오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반박에 대하여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헌법은 분명 군사법원을 사법기관으로 인식하며 규정하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어느 행정기관장도 사법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대통령의 통수권 아래에 있는 군 지휘관들이 사법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너무도 극명한 모순이다.

현상이 이러하였고 그것이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사법의 역할에서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면, 이제는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만 한다. 하물며 '국민과 함께하는 튼튼한 국방'을 외치면서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만들려는 것을 국방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군 사법제도를 개혁하였거나 개혁하고자 하는 나라들이 군 사법제도의 설계에서 관심을 두는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군 사법제도를 사법부의 한 부분으로 통합함으로써 최고법원을 정점으로 한 '사법체계의 통일성 확보'라는 헌법적 요청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 사법 개혁을 통해 군인의 인권보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양자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거나 분리되어 생각 할 수 없는 연결적 개념이다.

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군사 영역에서의 입헌주의 관철"이 되며 군 사법제도의 개혁은 이러한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관할관 제도와 심판관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며 나아가 군사법원의 폐지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강욱 변호사는 법무법인 청맥 소속이며, 대한변협 인권위원과 국방부 수석검찰관을 역임했습니다. 이 기사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 인권, #군 사법제도, #군사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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