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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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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 스페인 북부 나바라 (Navarra) 주의 주도(州都)인 팜플로나(Pamplona)시에서는 9일간 열린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가 막을 내렸다. 이 축제에서 열리는 '소몰이' 행사는 전세계에서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있는 반면, 국제적인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스페인어로 '엔씨에로(Encierro)'라고 하는 소몰이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에도 등장한다.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오전 8시 그날 오후에 투우에 쓸 소 여섯 마리를 거리에 풀어 질주하게 만드는데, 이 소들 사이에서 흰 옷에 빨간 천을 두른 수천 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함께 달리는 행사다.

단순히 '소와 함께 달리는' 행사라면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반대 목소리가 높은 이유가 있다. 소에게 정신적인 혼란을 주기 위해 그 전날부터 암흑 속에 가둬 두는데,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소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앞도 안 보이는 데다 수많은 군중에 휩싸여 좁은 길을 달리면서 소가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러지거나 벽에 부딪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소를 모는 과정에서 술에 취한 군중들이 소를 발로 차거나 신문지를 만 것 등으로 때리고 놀리는 것도 놀이의 일부분이다.

군중들 중에도 부상자가 속출하기는 매한가지다. 1924년부터 총 15명이 축제에서 목숨을 잃었다. 올해에는 사망자는 없지만 열 다섯 명이 뿔에 찔려 부상을 당했다. 올해 7월 스페인 동부 알리칸테(Alicante)의 작은 도시의 축제에서는 44살의 프랑스 관광객이 소 뿔에 찔려 숨졌다.

용감한 스포츠? 연출된 동물학대?
산페르민 축제의 소몰이 장면. 소와 군중 모두 부상당하는 일이 속출한다. 위키피디아. ⓒ GUIA ILUSTRADA
소몰이에 끌려 나온 소들은 '플라자 데 토로(Plaze de Toro)' 원형 경기장으로 몰아넣어진다. 경기장에서 소들은 부상당한 몸으로 한참을 군중들에게 놀림 당하다가, 같은 날 오후 투우 경기에 사용된다.

투우는 스페인어로는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 직역하면 '소의 질주(running of bulls)' 정도로 불린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불파이팅(bullfighting)'이라고 한다. 로마 시대에 사람과 맹수의 싸움을 즐기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투우는 17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스페인, 포르투갈, 남프랑스 일부 지역과 멕시코, 콜럼비아, 에쿠아도르, 베네주엘라, 페루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남아있다.

전통적인 투우는 총 세 개의 무대로 구성되고, 무대마다 다른 종류의 투우사가 등장한다. 첫 번째 무대에는 말을 탄 '피카도르(Picador)'가 등장해 소의 목에 '피카(Pica)'라고 불리는 창을 내리 꽂는다. 소가 피를 잃으면서 힘이 빠지도록 하고, 목 근육의 힘을 약화시켜 남은 경기 동안 목을 잘 가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세 명의 '반데릴레로(Baderillero)'가 각각 두 개, 총 여섯 개의 알록달록한 작살을 소의 어깨에 꽂는다. 이쯤에서 소는 상당히 많은 양의 피를 잃게 되고 점점 탈진해 가며, 공포심에 날뛰게 된다.

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주역인 '마타도르(Matador)가 검과 '물레타(Muleta)'라고 하는 막대기에 감은 붉은 천을 들고 등장한다. 이 단계에서 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출혈과 자상, 골절 등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거의 미쳐버린 초죽음 상태다. 마타도르는 마치 스페인 전통 춤과도 같은 동작으로 소를 유인하고 몸을 교묘히 빼는 퍼포먼스로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장내의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마타도르가 소의 심장에 검을 찔러 죽이면서 경기가 끝난다.

규칙대로라면 심장에 칼을 꽂아 즉사시켜야 하지만, 반 톤이 넘는 덩치의 소가 단 칼에 죽는 일은 드물다. 보통 세 번, 네 번씩 폐와 심장을 칼로 난도질 당하는 동안 소는 어김없이 피를 토한다. 소가 쓰러져 경기가 종료된 다음에도 몸만 마비 상태일 뿐 의식이 남아있는 채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마타도르가 훌륭한 싸움을 했다는 의미로 청중의 반 이상이 흰 손수건을 흔들면 마타도르는 소의 귀를 칼로 잘라 상으로 갖게 되는데, 이 역시 의식이 붙어 있는 상태로 행해진다.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에게 존엄한 죽음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소는 뿔이 말에게 매달린 채로 짐짝처럼 경기장 내를 질질 끌려다니고, 이미 피를 보고 흥분한 관중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패배자'에게 종종 맥주캔이나 쓰레기를 던지며 야유를 보낸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
투우 경기가 끝난 후 소는 말에 매여 경기장을 끌려다닌다. 의식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위키피디아. ⓒ Tomas Caste
경기에 출전하기 전 소들을 깜깜한 상자 속에 하루에서 이틀을 꼼짝할 수 없도록 가두어 두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경기 전에는 소의 힘을 약화시켜 투우사의 인명피해를 막고 손쉽게 죽일 수 있도록 몸을 훼손하는 '조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행화된 지 오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간지각능력을 약화하기 위해 뿔을 갈아내거나, 목을 잘 쓸 수 없도록 목 힘줄을 자르는 것이다.

시야를 흐리게 하기 위해 눈에 바셀린을 바르고, 잘 듣지 못하도록 귀를 젖은 신문지로 틀어 막거나 콧구멍에 솜을 집어넣어 호흡을 제한하기도 한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리에 부식성 용액을 바르거나, 민감한 생식기에 바늘을 꽂아두어 움직임이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소의 성향에 따라 흥분제나 진정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즉, 투우 경기에 나오는 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코에서 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힘이 세고 폭력적인 야수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불안한 데다, 이미 당할 대로 당한 고문으로 아프고 지쳐있는, 극도로 겁에 질린 동물일 뿐이다.

깜깜한 곳에 갇혀 불안함에 떨던 소는 경기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 살기 위해 빛이 보이는 곳으로 온 힘을 다해 질주한다. 그러나 고통의 끝인 줄로만 알았던 불빛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은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고문과 자신의 죽음 앞에 환호하는 관중들이다.

투우사 혼자 맨손으로 건강한 소와 소위 '맞짱' 뜨는 것도 아니고, 창, 작살, 칼로 무장한 장정 여섯 명 대 이미 겁에 질리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소의 싸움이라니, 어쩌면 '싸움(Fight)'이라기 보다는 '학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카탈루니아, 2010년부터 '투우 금지'

'전통'이라는 주장과 '동물 학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투우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스페인 카탈루니아 의회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3년 5월 멕시코 소노라 시에서도 금지되었으며 2011년 에쿠아도르에서는 오락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2013년 10월 프랑스 녹색당은 소를 죽이는 투우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투우 경기의 숫자도 매년 감소 중이다. 스페인 문화부(Ministry of Culture)의 집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간 열리는 투우 경기의 횟수는 3650회에서 2290회로 감소했다. 계속되는 불황과 카탈루니아의 금지법 발효 등으로 최근에는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 국민들 대부분도 세금이 투우를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의 의뢰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퍼센트가 투우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고 답했고, 투우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전통'은 악습에 면죄부 주는 마법의 단어 아니다
산페르민 축제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투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 PETA UK
'전통이냐, 동물 학대냐'의 논란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진정한 '전통'의 의미다. 수백 년, 수십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해서 모두 '전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투우와 비교할 수 있는 예로는 영국에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행해지던 '곰 미끼놀이(베어 베이팅,Bear-baiting)'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 스포츠는 곰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훈련된 개들이 공격해 뜯어먹게 하는 것을 군중들이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1835년 동물학대금지법이 영국의회를 통과하면서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아마 요즘 세상에 영국에서 '전통'이었기 때문에 베어베이팅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전통'은 살아있는 생명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폭력을 가하는 행위에 전부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가는 시대의 상식에서 벗어난 과거의 관습은 '예전에는 그랬었지'하며 역사책 속으로 떠나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인류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대대손손 물려 줄 가치가 인정되는 문화 만이 노력과 비용을 들여 계승할 가치가 있는 진짜 문화이고 전통이 아닐까.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투우 , #스페인 , #산페르민 , #동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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