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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교과서에는 왜곡된 역사적 사실이, 한국 교과서에서는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23년 9월 관동(関東) 대지진이 일어난 뒤 일본 국가와 국민들이 자행한 조선인학살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일본 타이쇼(大正)천황이 집권하던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혼란에 빠지자 동요하는 민심을 다잡기 위해 일본 국가가 조작한 유언비어로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즉, 조선인을 내란의 주범으로 삼은 유언비어를 경찰서와 언론, 군 송신망을 통해 전 일본각지에 조직적으로 유포한 뒤, 이를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하여 일본의 적(敵)으로 몰아 무고한 조선인들(6천여 명~2만여 명 추산)과 중국인들, 그리고 타이쇼 천황을 반대하는 일본 내 사회주의자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최근 이 사건과 관련된 문서가 사건 발생 90년이 되었던 2013년에 한국의 국가기록원을 통해 공개되었다. 그것은 한일협정을 앞두고 이승만 정부하에서 급하게 수집하여 작성되었던 관동조선인학살희생자명부였다. 이 명부 중 일부는 이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에도 한국의 첫 공식사료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명부를 통해 그동안 유족이라고 주장했던 고 김대원의 일가족들이 유족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국가에서 제작한 명부에는 없지만 사료를 통해 수집되었던 명부를 근거로 하여 제주도 인성리에 이른바 가메이도 일가족 학살사건의 유족들도 확인되었다.

전남 신안의 유족 김대원님은 오랫동안 정부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학살희생자의 유족임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학살희생자의 유족 故 김대원 전남 신안의 유족 김대원님은 오랫동안 정부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학살희생자의 유족임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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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유족의 확인은 국가차원의 조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명부가 나오기는 했지만 정부에서는 이 명부를 토대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유족을 찾고 학살사건의 책임소재를 밝히려는 후속조치가 아무 것도 없었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공동대표 이해학, 김종수)와 종교인, 학자, 법조인의 노력으로 진상조사기구설치를 골자로 한 '관동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안'이 2014년 여야 103명이 공동으로 발의(대표발의 유기홍)되었지만, 여타의 과거사법들과 함께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차원 진상조사와 유족찾기가 시작될 때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관동조선인학살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사건발생 100년이 되는 2023년까지 100회 전시회를 목표로 기획하고 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지역에서는 학살 희생자의 명단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유족찾기운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그 첫 전시회가 7월 20일부터 26일까지 경기도 성남시청 누리홀에서 열리고 있다.

한편,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온라인 자료관(http://www.1923kantou.net)을 오픈하고 사건관련 자료와 학살희생자명부를 공개하고 진상규명활동에 관한 소식 및 시민들의 참여공간을 만들었다.

역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도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관동조선인학살 기획전시회 향후 일정
7월8일(토) 경기도 용인
8월 14일~16일 일본 지역은 비공개
8월 26일~9월 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9월 14일~16일 강원도 원주

전국 순회전시회의 첫 출정으로 성남시 누리홀에서 열린 전시회
▲ 성남전시회 전국 순회전시회의 첫 출정으로 성남시 누리홀에서 열린 전시회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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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관동조선인학살사건,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온라인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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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관장 천안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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