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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구제금융 개혁안 타결을 발표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기자회견.
 그리스 구제금융 개혁안 타결을 발표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기자회견.
ⓒ 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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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이 새 구제금융을 위해 극적으로 타결했다.

그리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에서 3차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건 추가 개혁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로써 그리스는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로부터 3년간 최대 860억 유로(약 108조 원)를 지원받는다.

유로존 정상회의가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터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뤘다"며 "그리스에 ESM 지원을 할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합의 내용과 형식에 만족한다"며 "이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다"고 강조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그리스는 지난 6개월간 커다란 어려움과 딜레마를 겪어야 했다"며 "이번 합의로 그렉시트에 대한 우려는 과거가 됐다"거 밝혔다.

그리스는 부가가치세 간소화, 연금체계 개혁, 국유자산 민영화 등 고강도 개혁 법안을 오는 15일까지 입법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부채 탕감은 끝내 거부되고 상환 기간을 유예하는 채무 경감만 받아냈다.

이로써 그리스는 지난 2010년 1차 구제금융 1100억 유로, 2012년 2차 구제금융에서 부채 탕감과 1300억 유로를 지원받은 데 이어 3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반전에 또 반전... 국민투표부터 협상 타결까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왼쪽)과 진 클라우드 정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015년 6월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왼쪽)과 진 클라우드 정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015년 6월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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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보름간 그리스 사태는 반전을 거듭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 6월 27일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직접 국민들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국민투표를 전격 선언했다.

사실상 총리직을 내건 치프라스의 '도박'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스 국민들은 긴축을 거부해달라는 치프라스 총리의 호소에 화답하며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반대표를 던졌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국민투표 직전 그리스 채무 경감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치프라스 총리가 완승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는 너무나 심각했다. 시중 은행은 현금이 부족해 기약 없이 문을 닫았다. 최대 채권국 독일은 그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그리스를 압박했다.

결국, 치프라스 총리는 구제금융을 받아내기 위해 채권단의 요구보다 더욱 강도 높은 개혁안을 제출했다. 거침없는 언행으로 채권단과 대립각을 세웠던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도 경질하며 몸을 낮췄다.

앞으로 2년간 120억 유로의 재정 삭감을 하겠다는 그리스의 고강도 개혁안에 일부 유로존 국가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구제금융은 쉽게 타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또다시 사태가 반전됐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그리스의 개혁안을 믿을 수 없다며 '퇴짜'를 놓은 것이다.

그리스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긍정론, 구체적인 약속과 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회의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유로존 정상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결국 이틀 동안 17시간 넘도록 이어진 유례 없는 마라톤 회의 끝에 유로존 정상들은 극적 타결에 성공했다.

상처뿐인 타결... '나치' 독일의 그리스 쿠데타?

비록 그리스의 디폴트와 그렉시트라는 파국을 겨우 막았지만, 아직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그리스는 앞으로 더욱 혹독한 긴축 정책을 견뎌야 한다. 치프라스 총리가 부채 탕감에 실패하고 오히려 고강도의 개혁안을 제출하자 그리스 국민들은 이럴 거면 왜 국민투표를 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 그리스와 유로존이 합의한 긴축 정책이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을 내놓고 있다. 영국 BBC는 "그리스가 약속한 개혁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의 맹주를 자처하던 독일도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다. 너무 가혹하게 그리스를 압박했다는 비난과 함께 사태 해결을 놓고 유로존의 내분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가 부채 탕감을 받으려면 5년간 유로화 사용을 중단하는 '한시적 그렉시트'를 제안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트위터에는 독일을 겨냥해 '이것은 쿠데타'(ThisIsACoup)라는 해시태그(#)가 급속도로 퍼졌고, EU 깃발의 별을 나치 문양으로 바꿔 합성한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것은 쿠데타'라는 해시태그는 아주 옳다"며 "(채권단의 긴축 요구는) 가혹을 넘어 그리스에 보복을 가하고 주권을 파괴하려는 의도"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유럽은 그리스에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면서 통합의 의미를 훼손하고 배신했다"며 "그리스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독일의 선의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유로존은 이 같은 해석을 경계했다.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것은 전형적인 약속이자 협정일뿐, 승자도 패자도 없다"며 "그리스가 굴욕을 당하지도, 유럽이 체면을 구긴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과연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느냐다. 이미 두 차례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그리스 경제는 오히려 후퇴했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실업률은 높고, 급기야 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자본까지 통제되고 있다.

공약을 어긴 치프라스 총리는 지지세력의 비난을 받으며 정권 붕괴의 위기에 놓였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3차 구제금융으로도 경제 회복에 실패한다면 그리스와 유럽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그리스, #구제금융, #그렉시트, #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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