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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터울 동생과 큰 아이가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다가 불쑥 나온 말. 

"엄마, 선생님이 잘 모르면 발표하지 말라고 하셨어."
"뭐? 정말? 그건... 아마도... 여러 번 발표하는 친구에게 하신 말 같은데? 잘 모르면서 여러 번 발표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기회가 안 가니까 그렇게 말하신 게 아닐까? 걔 여러 번 발표했지?"

아이 표정이 뭔가 수긍하는 분위기다. 다행이다. 괜히 아이 말만 듣고 흥분할 뻔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만약 바쁘다는 평계로 공개수업에 빠졌더라면, 이런 임기응변은 불가능했으리라.

올해로 두 번의 공개수업에 참여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부모 참여가 적어진다는데, 2학년 때도 1학년 때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수업 분위기도. 공개수업은 곧 발표수업이라 할 만한데, 아이는 수업 시간이 거의 끝날 때까지 한번도 손을 들고 발표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고 한번 웃어줄 뿐이었다.

발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이, 손 한번 들지 않았지만...

글 마키타 신지, 그림 하세가와 토모코, <틀려도 괜찮아> 겉표지.
 글 마키타 신지, 그림 하세가와 토모코, <틀려도 괜찮아> 겉표지.
ⓒ 토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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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신 매의 눈으로 다른 아이들을 지켜봤다. 여러 유형이 포착됐다. 선생님이 시켜줄 때까지 손을 번쩍 번쩍 드는 아이, 엄마 눈치 한번 살핀 뒤 손을 드는 아이, 무조건 손부터 드는 아이, 확실히 안다는 표정으로 자신감 넘치게 손을 드는 아이, 손은 쭈뼛쭈뼛 들었지만 야무지게 자기 생각을 말 하는 아이 등등. 아이들 얼굴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아이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같았다. 저렇게 시들어버리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이번 공개수업은 좀 기대했는데... 아이가 <틀려도 괜찮아>를 읽고 쓴 감상문을 봐서다.

'나는 발표가 싫었다. 왜냐하면 발표를 했는데 틀리는 게 싫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에는 발표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틀리는 걸 두려워 해서 발표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내용의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적은 게 얼마 전인데... 생각해보면 나도 학창 시절 발표력이 좋지 않았다.

'가슴은 쿵쾅쿵쾅 얼굴은 화끈화끈 일어선 순간 다 잊어버렸어. 뭐라고 말하긴 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나도 몰라, 슬그머니 앉아버렸지.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다리는 후들후들. 이렇게 말하면 좋았을 걸, 저렇게 말하면 좋았을 것. 나중에야 좋은 생각이 떠올라.'

책에서 묘사한 아이의 모습이 딱 나였다. 공개수업이 끝난 후 상심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고 "넌 왜 발표도 한 번 못하니?" 묻지 않은 이유다. 아이도 나와 같은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지목해서야 겨우 말할 기회를 얻은 딸에게, "쑥스러웠을 텐데 대답을 잘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목소리만 좀 더 컸으면 완벽했을 거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틀려도 괜찮아

마키타 신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유문조 옮김, 토토북(2006)


태그:#틀려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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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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