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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월 25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던 중 '여당 원내사령탑'을 언급하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 유승민을 겨냥한 정치적 공격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5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던 중 '여당 원내사령탑'을 언급하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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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정치권이 요동을 쳤다. 대통령이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집권 3년차, 지지율 30%대의 대통령, 그리고 임박한 총선. 과거 패턴을 보면 이 상황에서 대립과 갈등을 촉발한 공격은 늘 총선을 앞둔 여당에서 시작됐다. 공격을 받은 대통령은 결국 당을 떠났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지지율이 떨어진 역대 대통령은 모두 탈당을 했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공격도 새누리당에서 나왔어야 맞다. 반대였다. 6월 25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나선 박 대통령은 '여당의 원내사령탑'을 거명하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곧이어 자신이 과거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음을 상기시키며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 73번째 대통령 거부권이다. 거부권 행사 이후 절반 정도는 국회에서 재의결해 법률로 확정됐고, 반 정도는 철회 혹은 폐기됐다. 모든 대통령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처리한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당의 원내대표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입법권이 국회에 있듯이 그것에 대한 거부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것의 행사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 권리일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단지 거부권을 행사한 데 그치지 않고 '여당 원내사령탑'을 언급한 것은 고도의 계산된 발언이며, 대통령이 무척 다급해 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은 원내사령탑인 유승민 대표 혼자서 처리한 것도 아니다. 국회 표결결과 찬성 211표, 반대 22표, 기권 11표 등으로 처리된 사안이다.

현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박계'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비박계 쌍두마차다. 김무성 대표는 차기 대권의 유력 후보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난해 개헌론 논란과 최근 사드 배치,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서 보여줬듯이 박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군은 아니다. 이대로 몇 달의 시간이 흐른다면 비박계가 주도하는 차기 총선 공천이 이뤄질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이 아닌 것이다. 비박이 공천을 준 총선에서 소위 '친박'이 당선됐다 하더라도 그들이 계속 친박일까. 이 지점에서 박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 있다. 먼저, 비박계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이다. 지도부 교체가 여의치 않다면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신당창당이다. 이 시점에 박 대통령의 '유승민 비토 발언'이 등장했다.

현 시점에서 지도부 교체가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날인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날인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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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은 명백히 비박 지도부에 대한 교체 신호다. 친박들이 노골적으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 원내대표는 90도로 허리를 숙였고, 거듭해서 '대통령께 사죄'를 했다. 그는 대통령의 비토가 있은 지 며칠이 지난 이 순간까지도 "내가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필요하다면 더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그에 대한 사퇴 요구는 주류가 아니었다. 장장 5시간 동안 40명이 의사발언에 나섰다. 이들 모두 대통령이 화가 났다는 점은 명확히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 눈 한번 감고 '유승민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마디 하면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대통령과 친박 정치인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을텐데 많은 의원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현 상황에서 친위 쿠데타식으로 대통령이 나서서 집권여당의 지도부를 교체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만일 유 대표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그만둔다면 후임은 과연 누구일까? 이 대목에서 친박은 자신이 없다. 2014년에는 경선 없이 박수로 이완구가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2015년에는 '비박' 유승민과 '친박' 이주영이 진검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84대 65로 유승민의 여유있는 승리였다.

상황을 정리해 본다. 지난 25일 박 대통령이 '유승민 아웃'이라는 메시지를 최고 수위로 던졌다. 청와대와 친박 정치인들이 분주히 그 메시지 실현을 위해 뛰고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의원총회 결과 의원들이 적극적이지 않다. 의원들도 자신들이 협의해 처리한 건을 가지고 원내대표에 책임을 묻는 건 자가당착이 아니겠는가. 이대로 며칠이 더 지나면, 그 사이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몇 번 사과를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김무성 대표 표현대로 '잘 수습'될 것으로 예상된다.

버티는 유승민 - 확인된 레임덕

새누리당에서 '잘 수습' 되었다는 건 박 대통령에게는 최고 수위의 '레임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정치인 박근혜호의 영향력이 침몰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미 25일 박 대통령의 직접 발언이 있었고 며칠 지났는데도 사퇴하지 않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대통령의 위상을 보여준다.

새누리당 지도부 교체가 여의치 않은 경우, 상처입은 박 대통령을 얼굴로 하는 신당창당은 가능할까?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TK(대구경북) 신당을 의미할텐데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분노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유승민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일부 언론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만일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친박 등을 중심으로 신당을 추진한다면 보수세력으로선 정치적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유 원내대표를 향한 박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에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들은 친박 정치인들일 것이다. 지난 원내대표 경선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친박은 더 이상 새누리당의 주류가 아니다. 원내대표 경선을 다시 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이길 자신이 없다. 다시 한번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만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의 남은 카드는 무엇인가. 자신의 정치력을 동원했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렇다면 이제 공안총리를 잘 활용하는 일이 남아 있는가. 집권여당 원대대표를 상대로 한 정치적 친위쿠데타를 넘어, 검찰을 동원한 '여당발 사정정국'인가? 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척 궁색해 보인다.

더욱 암담한 것은 집권여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난 이 시점이(27일 기준)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로 31명이 사망했고, 전국은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박근혜, #유승민, #친위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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