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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월 23일) 점심 무렵 스마트폰이 바쁘게 울려댄다. 마을극단 밥상, 마을의 작은도서관 함께크는우리 운영위원회 등 강동구 지역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 <긴급속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들이 올라온다.

"권덕철 대책본부 총괄반장은 '6월 10∼11일 목차수내과, 15일 상일동 본이비인후과, 16일 강동신경외과를 방문하신 분은 다른 병원을 이용할 때 경유병원을 꼭 알리고 관할 보건소에도 방문 사실을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위의 글을 시작으로 포털에 올라온 뉴스,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보낸 긴급 문자, 통신문들이 스마트폰으로 배달되었다. 메르스 발병 이후 되도록 사람 많은 곳 외출을 삼가고 있지만, 한 달을 넘어서자 유행성 독감처럼 느껴지는 메르스 소식이라 건성으로 밀어 보았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날아온 소식들이 몇 십 개 쌓이자 비로소 정독을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동네 병원이 '경유 병원'?

모두가 다 강동구 병원들
▲ 메인 뉴스를 장식하는 강동구 소식 모두가 다 강동구 병원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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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경유 병원 목록을 보니 강동구 동남부가 길게 이어졌다. 강동구에서도 대단위 아파트 밀집 지역들이다. 그중 한 병원은 우리집 삼남매들의 중이염과 폐렴이 오래 가면 다니는 옆 동네 병원이었다. 갈 때마다 늘 환자들로 붐비고 대기시간이 꽤 긴 입소문 난 병원으로 강일동, 상일동, 고덕동, 명일동 사람들까지 단골이 많은 곳이다.

게다가 어제 저녁에도, 오늘 오전에도 아이들과 다녀온 도서관은 그 병원 몇 백 미터 옆으로  같은 시장 골목에 있다. 그 병원이 있는 건물엔 엘리베이터를 함께 사용하는 소아과, 안과, 약국이 있고, 지하철 입구와 재래시장이 건물 바로 옆이라 인근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 곳에 확진 환자가 경유한 것이다. 확진 판정 전이라 하지만 증상이 있어 다녀간 터라 동네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점심부터 걱정과 불안을 실어 나르던 단체 채팅방엔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와 가족 관계까지 알려졌다. "***아파트 ***동 앞에 구청 마크가 찍힌 봉고차가 왔다더라"는 목격담을 시작으로 확진자 집에 초등학생 손자가 있다는 소식까지 발 없는 말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하교 시간이 되자 인근 학교들의 가정통신문 전문과 확진자 경유 병원에 이어 경유 약국 이름까지 채팅방에 공유되었다. 까꿍이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에서도 문자가 왔다.

"<메르스 관련 > … (중략) … 2. 발열, 기침, 설사 등 의심증상이 있는 경우 임의로 의료기관 방문하지 마시고 강동구보건소(02-3425-8500)로 전화 후 협의하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지역단체채팅방은 메르스 소식으로 하루 종일 바빴다.
▲ 긴급속보 지역단체채팅방은 메르스 소식으로 하루 종일 바빴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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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메르스 확진자는 늘고 있었지만 며칠째 사망자 수는 제자리에 퇴원자는 조금씩 늘고 있어 메르스가 주춤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메르스가 코앞에까지 와버렸다. 회사에 있던 남편도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아이들이 다니던 병원이 거기 아니냐, 오늘 도서관에 갔느냐, 병원 옆 시장에 가지 않았느냐"며 거듭 문자를 보내왔다.

단체 채팅방은 저녁이 되어도 계속 소식이 올라왔다. 도서관 관장님은 메르스 때문에 6월 들어 도서관에 아이들이 오지 않아 걱정인데 더 큰일이라며 텅 빈 도서관에서 혼자 알콜 소독제로 아이들 손이 닿는 모든 곳을 닦고 있다고, 맞벌이 엄마는 등교한 지 1주일 만에 또 다시 휴교라며 당장 내일부터 아이들만 두고 어떻게 출근을 하냐고, 3주째 자율등원 하던 한 유치원 엄마는 조기방학 검토를 위한 긴급회의가 소집 중이라며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마을극단 채팅방도 걱정으로 넘쳐났다. 9월 마을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진행 중인데 아이들의 갑작스런 휴원으로 연습 불참자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라 메르스 사태 이후 아이들 건강 챙기기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동네 골목까지 메르스가 침투하자 참았던 화를 쏟아내기도 했다. 평소 정치적인 발언을 거의 하지 않던 엄마들까지도 국가를 향한 원망을 토해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파트 단체 방송이 흘러나온다.

"관리사무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아파트 다른 단지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하여 강동구청으로부터 내일 24일부터 30일까지 노인정 폐쇄조치를 받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구멍 뚫린 국가의 보호막...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메르스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놀이터에 나가고 싶다구!
▲ 아, 심심해, 심심해! 메르스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놀이터에 나가고 싶다구!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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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에 메실이 좋대, 막내야 많이 마시자
▲ 매실액기스를 넣은 녹즙 메르스에 메실이 좋대, 막내야 많이 마시자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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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주사도, 치료제도 없다는 메르스. 10대 이하 어린아이들은 감염률이 낮다고 하지만 성인보다 면역력이 약하고 가벼운 감기마저도 보호자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영유아를 셋이나 둔 부모입장에서 메르스는 걱정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지난해 봄, 재난 사고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의 무능에 치를 떨었다. 당시 학교도 안 가고 바다에서 배 탈 일도 거의 없는 어린 삼남매에게 해상안전교육까지 시키며 억장이 무너졌는데, 올해는 "창궐하는 역병"에 대처하는 개인위생에 대한 교육을 넘어 잔소리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답답하다며 쓰기 싫어하는 마스크를 30도가 넘는 땡볕에서 씌우기 위해선 폭풍 잔소리가 가동되어야 한다.

그동안 삼남매는 심한 감기가 아니면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판단해 얼마 전 세 아이 모두 감기 기운이 돌아 환자가 없는 시간대에 사람들이 비교적 적게 가는 신생 병원을 골라 바람처럼 진료를 받고 왔다.

개인위생 다음은 '면역력 향상 프로젝트'다. 유산균 외에는 건강보조제를 먹지 않았는데 메르스 예방에 바타민C가 좋다는 얘기에 코끼리 귀가 되어 부랴부랴 성인용, 유아용 비타민C를 각각 주문했다. 또 어떤 한의사가 매실 액기스가 좋다길래 슈퍼푸드로 불리는 야채, 과일들과 함께 매실액기스를 넣어 쥬스로 갈아 온 식구들에게 먹이고 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보다 '삼시 세끼 건강한 집밥 지어 먹이자'가 육아관인 난 지금까지 아이들 밥상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살았다. 그러나 매일 하는 밥이 가끔 지겨워지면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으로 외식도 하고,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쯤은 때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메르스 이후 세끼 밥 짓기에 유난한 정성을 들이고 있다. 불 앞에서 요리하기 더운 계절이 되었지만 끼니마다 한 시간씩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새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다.

여름이면 입맛이 없을 법도 한데 우리 집 아이들은 여름에 쑤욱 자라는 터라 다른 계절보다 먹성이 더 좋아져 하루 세끼에, 간식 두 번, 야채주스, 수제 요거트를 먹고도 수시로 먹을 것을 찾아댄다. 우유 1000ml는 이틀을 버티기 힘들고 어제 사온 바나나 한 송이는 달랑 두 개 남아있다.

놀이터도, 동네 산책도 거의 못하고 집 안에서 놀아야 하지만 셋이 어울려 놀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면역력은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야 강해진다는 믿음 아래 아이들을 씻겨 8시에 방에 들여보낸다. 삼남매는 "오늘도 메르스를 잘 피했어, 우리 안 죽었어, 다행이다, 그치?"라며 불 꺼진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세 살 복댕이도 메르스라는 단어를 알아듣는 듯하다.

현미를 섞은 갓지은 밥에, 진한 육수에 한우,무,숙주, 버섯을 넣고 푹 끓인 맑은 국과 무려 아홉 가지 야채가 들어간 잡채.
▲ 오늘도 집밥. 현미를 섞은 갓지은 밥에, 진한 육수에 한우,무,숙주, 버섯을 넣고 푹 끓인 맑은 국과 무려 아홉 가지 야채가 들어간 잡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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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물려줘야할텐데... 엄마는 걱정이다.
▲ 메르스를 물리치자! 너희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물려줘야할텐데... 엄마는 걱정이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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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로 많은 것이 정지되고 있다. 6월 둘째주를 지나면서 정지된 일상이 회복되려나 싶었는데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멈춰서는 움직임이다. 어린이집, 학교에 이어 노인정도 다시 문을 닫고, 줄줄이 취소되었던 지역의 크고 작은 공개강의와 장터가 7월 재개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는데 이런 논의마저 다시 취소 중이라 한다.

확진자, 격리자가 사는 곳은 하루아침에 우범지역으로 낙인찍히고 이들을 향한 마녀사냥도 무섭게 번지고 있다. 심지어 메르스 환자가 있는 병원이 직장이 아닌데도 병원 근무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잠시 보류해달라는 통보를 받은 이웃 엄마와 열이 나는 돌쟁이 아이를 받아주는 동네 병원이 없어 결국 확진자가 경유한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는 이야기는 씁쓸하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동네와 동네 사이의 길을 가로막고,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문까지 빗장을 걸어 잠그려 한다.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자의반 타의반 안으로 돌려 나와 내 가정을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주위를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잊고, 잃고 살았기에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우리가 간과한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걸까. 앞으로 이런 바이러스의 침공은 더 잦아질 것이고, 안타깝지만 허물어진 국가의 울타리는 복원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공연한 걱정은 면역력을 떨어뜨리니 굳세게 버티자'는 이웃 선생님의 문자에 마음을 추슬러보지만 잠든 세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는 손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6월 초, '메르스는 소나기 같은 것'이라며 현충일이 고비라 했는데 6.25를 지나도 여전할 것 같다. 오라는 비는 오지 않고 메르스 장마만 지난하다. 언제가 되면 마스크 따윈 집어던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동산에 놀러가고 마트에서 소시지 시식을 할 수 있을까... 일찍 자야 면역력이 늘 텐데 애 셋 딸린 아줌마는 공연하지만 공연하지 않을 것 같은 걱정에 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메르스,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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