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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사용자, 공익위원 등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오는 23일부터 전원회의를 열어 2016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합니다. 사용자는 2015년 최저임금 5580원에서 동결을, 노동자들은 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긴 논의가 전망됩니다. 그 결정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지난 4월 24일, 민주노총 집회에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카트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고강도 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저임금의 고통까지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생존 그 자체'이다.
▲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지난 4월 24일, 민주노총 집회에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카트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고강도 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저임금의 고통까지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생존 그 자체'이다.
ⓒ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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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5700원의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2015년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나는 대형마트에서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다. 노동자위원 총 9명 중 여성, 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해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말인즉슨, 내가 결정하는 최저임금 금액이 바로 다음 해, 내 월급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대다수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을 대표하는 당사자로서 최저임금 논의에 참여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내가 참여하는 만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최저임금위원회를 준비하면서 실제 주변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 볼수록 어깨는 무거워졌다. 왜 최저임금이 인상되어야 하는지, 최저임금은 우리 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좀 더 깊숙이 알아보기 위해, 주변의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을 특히 많이 만나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 속에 내가 맞닥뜨린 것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절박성을 넘어선 아픔과 상처였다. 최저임금 인상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으로 꾸려야 했던 생활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가족 얘기를 힘겹게 꺼냈다. 특히 자신들이 책임져야 하는 자녀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면, 본인 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주변 모든 사람들까지 눈물 범벅이 되고는 했다.

"둘째가 치킨을 가장 좋아하는데, 치킨 한 마리 시킬 때마다 이것저것 따져봐야 했다. 최저임금이 정말 인상된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치킨을 사주고 싶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데 학원도 마음껏 보내줄 수가 없다. 아이들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인 것이 가장 미안하다."

"열심히 일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믿어왔는데... 천운을 타고 나지 않으면 가난은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최저임금을 받는 우리의 '가장'들

흔히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두고 "반찬값 벌러 가셨냐", "소일삼아 나온 것 아니냐"는 편견어린 말들을 내뱉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실제 마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40, 50대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임금으로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 가장들이었다. 외벌이 가장인 경우도 많고, 설령 맞벌이를 하고 있더라도 부부 모두가 최저임금을 받는(부부의 소득을 합쳐도 월 200만 원 남짓한 생활비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30만 원 미만 급여를 받는 저임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25%에 달한다. 이 말은 500~600만 명의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곧 자신의 월급이고, 한 가족의 밥줄이라는 뜻이다. 최저임금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최소 2인씩으로만 계산해도 대한민국에서 1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최저임금 문제는 IMF가 남기고 간 우리 사회 상처와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IMF 외환 위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는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가 증가했고 임금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소비도 급속히 침체되었다.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대목이다. 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듯, 최저임금 당사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된 단어는 'IMF의 상처'였다.

"동네 매출 일등인 피자가게를 운영하다 IMF로 망하고 부부가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중소기업 임원인 남편이 해고되고,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그래도 나라 살리자고 돌반지, 금이빨까지 내놓았는데..."

"40, 50대가 되어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숨쉬고 살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아줌마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문직 인정받던 미혼 시절의 경력은 아무 짝에 쓸모없었고, 제가 일할수 있는 곳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받는 일자리들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소박한 꿈이 짓밟히고 있는 현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의 당사자가 되어 있는 현실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최저임금 노동자가 되었을까?

나는 어쩌다가 시급 5700원 최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나

최저임금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4월 24일,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카트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필자도 행진 대열에 함께 했다. 앞줄 왼쪽이 필자.
▲ 최저임금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4월 24일,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카트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필자도 행진 대열에 함께 했다. 앞줄 왼쪽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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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최저임금보다 두 배나 많이 받는 노동자였다. 2007년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월급 190만 원, 상여금 400%'를 받는, 꽤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월급쟁이였다. 저축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 5일 근무, 오후 6시 칼퇴근. 점심시간이면 식사 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사들고 산보도 즐길 수 있는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따져보니 2007년 나의 시급은 무려 9000원에 달했다. 당시 법정 최저임금은 3480원. 고백하건대 그때는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관심도 없었다. 달마다 월급통장에는 190만~200만 원이 꼬박꼬박 찍혔으니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개인 사정으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둔 후, 결혼과 동시에 맞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30살에 기혼 여성, 이 두 가지 약점(왜 약점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은 나에게 별다른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결혼 후 처음 취직한 백화점 명품브랜드 매장에서는 한 달에 4일 쉬고, 5cm 넘는 굽 높은 구두를 신고 하루 10시간 이상 꼬박 서서 늘 바른 자세로 90도 인사를 해야 했다. '고객님의 그날 컨디션과 기분을 맞추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노동시간은 2배로 늘었지만 받을 수 있는 최대 월급은 160만 원, 인센티브 따위는 없었다.

노동 강도를 버티지 못해, 한 달에 6번 쉴 수 있다는 일자리를 찾았다. 월 급여 150만 원에 퇴직금도 별도라고 소개 받은 일자리는 '대형마트 입점 업체'였다. 더 나아질 거란 기대도 잠시, 한 달 6번 휴무는커녕 심할 때는 연속 17일 근무를 하고, 한 달 내내 심야 근무로 밤 12시가 넘어 퇴근을 해야겠다.

당연히 남편과 나는 밥 한 끼 먹을 시간조차 없었고 집에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울다 잠드는 날이 허다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안쓰럽고 힘들게 지켜보다가 '일을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대신 자신이 야간에 대리운전 알바를 하며 투잡을 뛰겠다는 것이다. 그날, 신혼 단칸방에 주저 앉아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남편을 만류하고 내가 다시 찾은 직장은 홈플러스 계산원이었다. 다른 조건은 다 필요 없었다. 주 5일 근무만 할 수 있다면! 하루 8시간 근무만 초과하지 않는다면! 이 평범한 조건이 충족되는 일자리는 대형마트 직접고용 계약직 자리였다. 이렇게 나는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최저임금 노동자가 된 것이다.

사용자 측 인상안 '0원', "더 많은 업종에, 더 낮은 임금을 주자"라니

최저임금위원회의에서 사용자 측 위원들이 제기하는 주장 중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사용자 측은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제는 후진적이라고 한다. 다른 OECD국가는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지역별, 산업별로 차등 적용한다는 말씀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저임금 영향률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 최저임금은 최저의 하한선을 정해놓은 최소한의 보호 장치이지, 그것을 최고 임금으로 만들라는 취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너무나 후진적이게도, 최저임금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어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OECD국가들이 지역별, 산업별로 최저임금 기준이 다른 이유는 사용자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더 낮게 주기 위한  취지"가 아니라 "최저임금보다 지역과 산업이 더 높게 임금을 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용자들은 "더 낮게 임금을 주기 위한 업종을 따로 정하자"고 주장한다 "더 많은 업종에, 더 낮은 임금을 주자"는 주장은 어떤 OECD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맥락도 없고 철학도 없는 저급한 주장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개선, 한국 사회 소득불평등 완화에 관심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소비와 내수 진작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전 세계적 추세마저 거스르는 셈이다. 자본주의 메카 미국 사회마저 저임금노동자의 소득 향상만이 경제위기 탈출의 해법이라 호소하는 이 마당에 말이다. 올해의 최저임금 인상안으로 '0원'을 들고 온 사용자 측에 더 분노하게 되는 이유이다.

최저임금은 국민임금이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눈물 뼈빠지게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는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 지난 6월 15일 열린 최저임금 인상 호소 기자회견에서 한 대형마트 노동자가 생활상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최저임금 노동자의 눈물 뼈빠지게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는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 지난 6월 15일 열린 최저임금 인상 호소 기자회견에서 한 대형마트 노동자가 생활상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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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언론에 "한국의 근로자는 주당 66시간을 일해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결국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주 40시간 노동으로 빈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주 66시간 장시간 노동으로 빈곤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것인가'.

나는 주 40시간 노동을 얻는 대신 빈곤을 택했다. 그러나 그 주 40시간의 노동은 고강도 노동과 감정노동, 저임금의 삼중고를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노동이 '최저임금을 받아 마땅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최저임금을 받아 마땅한 일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해야 하는 곳이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일자리뿐인 것이다. 강도 높은 노동, 장시간 노동, 숙련된 노동임에도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를 보는 그 사회의 수준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기업 성장의 근간이 되는 노동의 가치를 우리 사회는 존중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지금의 최저임금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으며, 이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은 특수한 몇몇 노동업종, 노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의 임금이자, 그들의 삶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서, 최저임금 당사자로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서 말한다.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의 임금을 위해서.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홈플러스 노동조합 서울본부장으로, 민주노총 추천으로 2015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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